시월, 오늘, 밤이 가기전까지 ‘잊혀진 계절’은 자동재생중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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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31   |  발행일 2014-10-31 제33면   |  수정 2014-10-31
대한민국은 오늘 ‘10월의 마지막 밤을∼♪♬’ 신드롬
20141031

애창곡.

그게 없는 사람은 없다. 애창곡은 서민에겐 최고의 ‘위안’이다. 그 애창곡이 ‘통속’할수록 유행가로 변해 대중과 더 단짝이 된다.

유행가는 묻지마 ‘사랑노래’. 그것도 불발의 러브스토리. ‘지상에 성공한 사랑밖에 없다면 더 이상 예술도 없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동백아가씨’를 부른 이미자처럼 한 시절 서민의 심금을 울리는 톱가수가 있다. 그런 애창곡도 유행주기가 있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낮달처럼 열기가 숙진다. 그냥 추억의 유행가로 남는다. 그런데 어떤 곡은 어떤 계절만 되면 유독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사랑을 받는다.

특히 매년 10월이 되면 전국 방송국 음악프로가 경쟁적으로 소개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
발표된 지 올해로 32년째

해마다 특정일에만
불티나게
방송되는 노래는
아마 이 곡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사랑에 한두 번 상처를 입은 팬들은 시월의 마지막 밤이 바로 자신의 밤이라면서 ‘방점’을 찍어놓는다.

그 노래가 발표된 건 1982년. 갈수록 그 인기가 더해만 간다. 7080 부부는 밸런타인·화이트데이, 아니 결혼기념·생일보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라이브카페는 물론 백화점, 놀이공원, 리조트,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도 시월의 마지막 밤 특수를 누리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고 있다. 본지 주말섹션 위클리포유 필진 모임도 31일 밤을 그냥 보내기 뭣해 수성구 범어동 수(繡) 박물관에서 대연학당 이응문 훈장한테 아호(雅號)를 받은 사람들의 친목모임인 ‘호탕회’ 회원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겸한 파티를 벌인다.


◆잊혀진 계절…X파일 속으로

가수 이용의 데뷔 무대는 1981년 5월28일~6월1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국풍(國風)81’.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방송공사가 주관한 큰행사로 축제 주제는 ‘전국 대학생 민속 국악 큰잔치’. 이용은 그 한 파트인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바람이려오’로 대상을 차지하며 일약 국민가수로 급부상한다. 원래 이 행사는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 자신에 대한 세상의 야멸친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고도의 문화정책의 일환이었다.

이용의 위세는 다음해 더 치솟는다. 잊혀진 계절은 같은 해 발표돼 대박이 난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까지 음악차트 1위에서 낙마시킨다. 조용필은 80~86년 최고인기상을 받았지만 82년만은 이용의 파워에 밀렸다.

이 곡이 발표된 지 올해로 벌써 32년째.

특정 시즌이나 계절을 노래하여 애창되는 곡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매년 ‘특정일’에만 불티나게 방송되는 곡을 찾기는 어렵다. 아마 잊혀진 계절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2005년 10월31일 음악방송모니터링 업체인 챠트코리아의 자료를 보자. 그날 잊혀진 계절은 총 88회 방송된 것으로 집계됐다. 2006년 10월31일은 103회, 2007년은 131회로 42회 방송돼 2위를 차지한 원더걸스의 ‘텔미’까지 밀어냈다.

뿐만 아니라 2005년부터는 ‘잊혀진 계절 리메이크 붐’이 터진다.

나훈아, 조영남은 물론 서영은, 김범수, 화요비 등의 리메이크 버전이 매년 같은 날 50회 이상이 선곡되어 왔다. 특히 아이돌그룹 ‘동방신기’ 4집에 수록된 영웅재중 버전의 잊혀진 계절은 신세대에까지 이용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배우 겸 가수인 아이유까지 지난해 7월 KBS2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 잊혀진 계절을 불렀고 7월인데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오른다. 기성세대와 신세대 모두의 잊혀진 계절로 등극한 셈.

한때 이용은 ‘잊혀진 가수’였다. 조용필의 자리를 위협했던 이용은 얼마 뒤 불미스러운 일로 85년 한국을 떠난다. 2003년까지 낭인의 세월을 보낸다. 노래를 부른 이는 한국에 없었지만 매해 시월의 마지막 밤이면 라디오에선 어김없이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왔다. 2003년 8집으로 재기의 발판을 잡기 전까지 그는 ‘방송불가 가수’로 밤무대를 전전한다. 88년 4월 아버지로부터 중대한 유언을 듣게 된다. ‘다시 가요계에 컴백해서 명예를 회복하라’였다. 2003년 신곡 ‘후회’가 방송 1위 곡에 올랐고 2004~2005년 MBC라디오 2시만세 ‘꽁노래방’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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