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투와이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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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14   |  발행일 2014-11-14 제42면   |  수정 2014-11-14
슬프고 아름다운 사라예보의 추억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투와이스 본’

마가렛 마잔티니의 베스트셀러 ‘세상 속으로(VENUTO AL MONDO)’를 그녀의 남편 세르지오 카스텔리토 감독이 연출해 영상에 옮긴 ‘투와이스 본(Twice Born)’에는 세계사의 비극을 멜로의 숨결로 포개안는 이슬람도시 ‘사라예보’의 비장한 절규가 넘쳐 흐른다.

1984년 동계올림픽 준비로 분주한 유고연방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이탈리아인 문학도 젬마(페넬로페 크루즈)는 발칸반도의 운명적 수난사를 다룬 ‘드리나강의 다리’ 작가 이보 안드리치에 관한 논문자료 수집차 이곳을 찾게 된다. 젬마는 여기서 현지 가이드 고히코(아드난 해스커빅)를 통해 미국인 사진작가 디에고(에밀 허시)를 알게 되고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부부가 된 이들 앞에 ‘젬마의 불임’이란 난제가 가로막게 되자 젬마와 디에고는 그들을 맺어준 도시 사라예보(내전 중에 있는)를 다시 찾아 전쟁 속에서 사랑을 소진시켜 나간다. 그러면서 전쟁의 속악성에 그들의 사랑을 저당 잡힌다.

세월이 흘러 이탈리아에 정착한 젬마는 디에고의 사진전이 열린다는 고히코의 전화를 받고 아들 피에트로(피에트로 카스텔리토)와 함께 다시 사라예보를 찾는다. 그리고 사라예보의 속살에 감춰진, 전쟁의 상흔보다 더 쓰라렸던 비련의 족적을 추적해 나간다. 그 끝자락엔 아들 피에트로의 출생의 비밀(Twice Born이 의미하는)이 처연하게 걸려있다.

3년 전 들렀던 사라예보의 밤 풍경은 너무나 고혹적이었다. 유럽의 심장에 우뚝 솟은 모스크의 첨탑 위로 달빛이 으스러지고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를 쓰러뜨려 세계 제1차 대전의 빌미가 되었던 라틴다리 위론 노란색 3번 트램이 셀로판지를 두른 장난감 기차처럼 자태를 뽐내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다리 아래 밀라츠카강에는 달빛 머금은 송어떼의 군무가 일사불란하였고, 전쟁박물관 외벽에 걸린 LG에어컨 실외기에선 염제에 지친 세상의 거친 숨결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 황홀한 정경에 취해 트램에 무임승차했던 필자는 검표원에게 걸려 내쫓긴 뒤, 30배의 벌금을 물고서야 다음 차를 탈 수 있었다.

필자가 내쫓겼던 바로 그 3번 트램 안에서 젬마는 사라예보 처녀 아스카(사데트 악소이)에게 디에고와의 사랑의 결실(대리모)을 제의한다. 그래서 사라예보는 정녕 슬프고 아름답다.

경일대 인문사회계열 자율전공학과 교수 sijeongjun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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