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성의 북한일기 .16] 고난의 행군시절엔 생활력이 없는 학자층이 가장 많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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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8   |  발행일 2014-11-28 제34면   |  수정 2014-11-28
[조문성의 북한일기 .16] 고난의 행군시절엔 생활력이 없는 학자층이 가장 많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1998년 4월9일

L씨는 공사 현장에서 경비 일을 맡고 계시는 분이다. 아들이 다섯 있는데 모두 군대에 나갔다고 한다. 본인은 옛날 군에서 연대장급이었고, 보위부장도 지냈다고 한다. 6·25전쟁 때 포항전투에 참전했는데 부상을 입어 후퇴할 때 패잔병 30여명과 함께 산을 타면서 북으로 향했다. 부상이 심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군인은 동료에게 총으로 쏘아죽이고 가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의 뜻에 따라 처리하고 대충 묻어놓고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개인 행동을 했고 본인은 혼자서 어렵게 북으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아들 중 1명은 군 생활 10년을 마치고 평양 방송국 국장을 하고 있는데 생활곤란이 이루 말할 수 없단다. 30층 아파트 11층에 살고 있는데 전기와 수돗물도 나오지 않고 기름도 없어 밥을 해먹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식량과 돈도 부족해 사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물도 11층을 오르내리며 길어서 먹어야 한다. 대변은 비닐봉지에 넣었다가 아침 출근길에 내다버린다고 한다.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인가 한다. 아들이 현지에 나가서 기사를 쓰고 할 때는 농촌으로 가 식량을 조금씩 얻어 와서 지금보다는 그래도 좋았다고 한다. 땔감이 없어서 책장을 찢어 화로로 밥을 해먹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시절에는 교수와 학자가 가장 많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생활력이 없다는 것이다.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도 못하고 남에게 거짓말 할 줄도 모르며, 산에 가서 나물을 해 올 줄도 모른다고 한다. 게다가 장마당에 가서 장사도 할 줄 모르고, 도둑질은 더더욱 할 줄 모르니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쪽에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강냉이밥 한 끼만 먹어도 당장 도망가리라고 한다. 공장에서 데모하는 직공들을 보니 좋은 옷에 잘 먹어서 얼굴에 살이 쪄있더라고 하면서 남쪽 TV를 본 소감을 말한다. 그는 70년도 당학교 입학식 훈시 때 수령님의 위신에 관한 한 허리띠를 백 번 천 번을 졸라매라 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이 외국에 선전을 하느라고 돈을 다 써버려 오늘날 이렇게 고생을 한다고 하면서 체제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말하는 분의 진심이 무엇이며 남쪽 사람인 나에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조금 당황스럽다. 나를 어렵게 할 분은 아닌 것 같지만 듣고만 있었다. 2~3년 농사가 잘되지 않아 고난의 행군이 나타난 것이 아니란다. 지금의 북한 사정을 보는 눈이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1998년 4월11일 토요일 맑음

함흥에서 왔다는 꼬마가 나타났다. 어디서 잠을 자느냐는 물음에 아파트 복도에서 웅크리고 잠을 잔다고 한다. 밤공기가 차가운데 이럴 수가 있나. 새벽부터 숙사 주위를 서성이면서 내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행색이 아주 초라한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꼬마를 쫓는다. 숙사 주변 아파트와 주민들이 우리에게 감시의 눈길을 쏟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사탕과 과자를 꼬마에게 주는 것도 여간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청진24시공대 건설원들 작업복이 말이 아니다. 모두 70명쯤 된다. 작업복을 한 벌씩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1998년 4월12일 일요일 흐림

함께 생활하던 동료들이 떠나고 혼자 남았다. 주일을 맞았다.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최근 이곳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이다.

“입은 먹는데 당에서 말하는 대로 말하고/ 귀는 듣는데 당에서 말하는 것만 듣고/ 눈은 보는데 자기 것만 보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식량사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50년을 한 사람의 신격화를 위해 허비한 정열과 금전의 소산물이다. 2~3년 천재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변화의 바람을 타고 이곳에서도 외부, 특히 한국의 소식을 접하고 있음이다. 전 연변과학기술대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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