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줌인] 유기견 보호소 화재, 그 후…

  • 노진실,최나리 인턴,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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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10 07:28  |  수정 2015-01-10 09:55  |  발행일 2015-01-10 제6면
절망의 저 눈빛…‘살아남은 犬의 슬픔’
견사 두 동 전소 30여마리 희생
구조된 개는 한파에도 한뎃잠
‘사설’이라 지자체 지원도 안돼
폐쇄땐 안락사 위기…도움 절실
20150110
대구시 동구 도학동의 사설 유기견 보호시설 ‘한나네 보호소’가 화재로 소실된 지 20여일이 흘렀지만 거처할 곳을 마련하지 못해 유기견들이 노상에서 추위에 떨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am.com

핏불테리어종 강아지 ‘호순이’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서글펐다. 같이 태어난 형제는 다 죽고 호순이 혼자 살아남았지만, 누구 하나 호순이를 키울 사람이 없었다.

유독 체구가 작고 허약한 호순이는 갈 곳이 없어 울산에서 멀리 떨어진 대구의 유기견 보호소인 ‘한나네보호소’(동구 도학동)로 오게 됐다.

그런 호순이를 한나네보호소 주인 신상희씨(49)는 각별히 챙겼다. 매일 따뜻한 방안에서 데리고 자면서 살뜰히 보살폈다. 그러나 호순이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18일 보호소를 덮친 화마(火魔)에 목숨을 잃고 만 것.

당시 보호소 주인 신씨와 몸이 약한 노령·장애견이 함께 머물고 있던 건물에 난 불은 춥고 건조한 날씨에 순식간에 번졌다. 놀란 신씨가 개들을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견사 두 동이 전소되면서 250여마리 중 30여마리의 개가 생을 마감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다른 개와 고양이도 크고 작은 화상을 입게 됐다. 신씨도 얼굴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화재 이후 한나네보호소는 많은 것이 변했다. 화재로 견사가 타버리면서 실내에서 지내던 유기견들은 마당에서 지내고 있다. 연일 계속된 한파 속에서 추위를 막아주는 것은 전국 각지의 후원자들이 보내준 이불가지가 전부다.

더욱이 신씨는 그동안 자비를 털어 보호소를 운영해왔지만, 화재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화재 수습과 유기견 사료비, 병원비 등에 큰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은 신씨에게나 살아남은 개들에게나 가장 혹독한 계절이 되고 있다.

신씨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유기견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보호소를 폐쇄하면 남아있는 유기견들은 안락사를 당하거나 또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힘들어도 보호소를 어떻게든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견사를 다시 짓는 데만 1천만~2천만원이 들어간다. 화재가 알려지면서 후원과 봉사자 방문이 많아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도 시들해졌다”며 “남은 유기견들 사료비나 병원비라도 지원을 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사설 보호소가 지원을 받으려면 법인을 설립해 ‘동물보호센터’의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 영세한 규모의 사설보호소의 경우 이런 기준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대구시 관계자는 “사설보호소는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지원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힘들지만 남은 유기견을 계속 보호할 작정이다. 신씨는 “포기를 하면 유기견들이 안락사를 당하거나, 갈 곳이 없어지게 된다. 어렵지만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최나리 인턴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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