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청도소싸움경기장 사람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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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16   |  발행일 2015-01-16 제36면   |  수정 2015-01-30
“예기치 못한 승리 심장이 터질 듯…그 맛에 소싸움장 못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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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만2천개의 관람석을 보유한 전국 최대 규모의 청도소싸움경기장. 청도는 전국대회에서 기량을 검증받은 싸움소만 출전할 수 있는 그야말로 ‘프로’들의 무대다. 현재 이곳에선 주말마다 싸움소와 소를 둘러싼 다양한 직업군의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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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싸움소 ‘꼴통’을 돌보고 있는 이동우 조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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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경기가 있는 주말이면 전산방송팀에서는 소리없는 그들만의 싸움이 펼쳐진다.


태풍, 무조건, 전진, 억척, 무쇠, 돌진, 급행, 때리고, 투혼, 강타, 핵폭탄, 기적, 역전, 승리, 대박! 주욱 이어 부르면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틱한 경기를 보는 듯한 이름들. 때로는 소 주인의 염원을 담아, 때로는 소의 타고난 기질을 보고 이름이 지어지는 소들은 이제 각 이름에 걸맞은 싸움을 펼쳐야 한다. 이곳엔 그런 소가 무려 641마리나 있다. 매 주말이면 이들 사이에 숨가쁘고 짜릿한 24경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싸움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고로 ‘백락(伯樂)이 있어 명마(名馬)가 존재한다’고 했거늘, 최고의 싸움소 역시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소싸움의 경기 휘슬이 울려퍼지고 모두가 싸움소를 주시하고 있을 때, 경기장 밖에는 자신만의 승부를 펼치는 이들이 있다.

'소 박사' 조교사도 경기 앞두고는 피마르는 긴장
우권발매·경기시간 관리 컴퓨터 시스템 담당자는
"오류걱정…자다가도 벌떡"…경기 전날 절대금주


1. 돈 못 버는 가장, 연애 못하는 총각이라도 나는 소가 좋다!

“얘가 신금이고 얘가 꼴통이에요.”

오전 9시, 오늘 두 마리의 싸움소를 끌고 출전하는 이동우 조교사(경력 10년)가 소들의 경기장 적응 훈련을 위해 우사 앞에 섰다.

783㎏의 신금이는 2013년도에 총 12번의 경기에서 무려 11번을 승리하여 승률 92%를 자랑하는 최고의 싸움소. 그런데 체중 830kg으로 제법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체급 ‘갑’의 꼴통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이마가 까진 상태다.

“지난번 완주에서 열린 전국민속소싸움대회가 치열했거든요. 순위에 들진 못했지만 정말 잘 싸웠어요.”

막강상대였던 싸움소 ‘일창’과의 대결에서 꼴통은 15분의 사투 끝에 모두의 예측을 깨고 승리를 거머쥐어 이변을 일으켰다.

“모두가 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깨고 딱 승리를 했을 때 그 기분은…. 그런 게 소싸움의 묘미죠! 그것 때문에 소싸움장을 못 떠나는 것 같아요.”

사실 지난해 청도소싸움장은 청도공영사업공사와 한국우사회 사이에 경기장 사용료 등의 의견 차이 때문에 약 10개월간 개장을 하지 못했다.

“생활이 안 되거든요. 집에 애가 셋이고 처자식이 있는데. 그래도 소싸움이 좋아서 다른 일을 못하겠더라니까.”

상황은 유부남이나 총각이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나이 26세에 소싸움경력이 20년이라는 타고난 승부사 김민재 조교사는 잘생긴 외모와 조교사로서의 뛰어난 명성과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솔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이면 번번이 소가 ‘잘나가던’ 연애의 발목을 잡는다.

“언젠가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소가 좋으냐, 여자친구가 좋으냐고 하길래 소가 좋다고 했죠. 그게 사실이니까. 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후에 헤어졌어요.”

가슴 아픈 연애담을 들려주다가도 싸움소가 지나가자 김민재 조교사는 연애 따위 아랑곳없다는 듯이 다시 싸움소 설명에 열을 낸다.

소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는 그도 경기를 앞두고는 매번,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고 했다.

“잘하는 소를 몰고 가서 이기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건 당연한 거고, 정말 심장이 뛰는 건, 모두가 안 된다고 한 소를 끌고 들어갈 때거든요. 남들은 다 안 된다고 봤지만 저는 그 소를 알거든요. 그걸 열심히 조련해서 결국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보여줬을 때, 승리했을 때, 그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죠.”

경기를 앞두고 피가 마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라… . 여느 직장인 중에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데 조교사 말고도 이곳 청도소싸움경기장엔 그런 사람들이 또 있다.

2. 해설·전산방송팀 등 소싸움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또 하나의 승부

“여기는 은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돈이 걸린 경기다 보니까 1원의 오차나 실수도 용납이 안돼요.”

다른 회사에서 전산업무를 보다 청도소싸움경기장이 개장할 때 이곳 전산팀으로 왔다는 황성철씨(청도공영사업공사 전산팀)는 우권 발권 금액과 싸움소들의 승률, 배당금 등의 각종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요. 전산 오류를 막기 위해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아, 잠깐만요. 지금 예민한 시간이라.”

오전 11시, 우권 발매가 시작됐다. 모니터 화면에는 베팅 금액에 따른 배당률이 실시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똑같은 컴퓨터가 3대예요. 이게 하나 잘못되면 바로 다음 컴퓨터….”

발매 시스템을 설명하던 전산팀 이동진씨(경력 3년)도 일순 말을 멈추고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발매 창구와 관람석, 경기장의 소란스러움과 대비되어 더욱더 낯선 정적이 감도는 공간. 그 순간, 방송팀도 초긴장 상태다.

“이게 일반 방송국과 시스템은 비슷한데, 소싸움 경기의 특성상 우권 발매 시간이나 경기 시간 등을 정확하게 지켜야 하거든요. 소싸움이다 보니까 각종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도 빨라야 하고, 또 돈이 걸린 중계다 보니까 사고에 민감해요.”

김중표씨(경력 10년, 한국우사회 방송팀)가 설명을 해주는 사이, 마침내 경기가 시작됐다.

“아, 태풍! 이름 그대로 태풍처럼 돌진합니다. 어제의 승리 기세를 몰아, 여지없이 공격하는데요.”

소싸움 해설만 26년을 해왔다는 소싸움 해설사 차정학씨의 감칠맛 나는 해설이 더해지면서 경기장엔 긴장감과 박진감이 더해진다.

경기 시간은 5분씩 총 6라운드.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기장에는 탄식과 환호가 터지고, 그와 동시에 정보를 입력하는 전산팀의 손놀림은 더욱 신중해진다.

모두가 숨을 죽인 그 시간, 그런데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서있는 사람은 누굴까?

“저기,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계속 가만히 서 계시기만 하잖아요. 어떤 일을 맡은 거예요?”

기어이 궁금증을 못 참고 질문을 던졌다.

“저는 결과를 잘 입력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역할입니다. 키보드를 잘못 누르면 1, 2등이 바뀌는 거니까요. 정말 단순한 일이지만, 이게 승패를 좌우하는 큰 사고로 이어지니까요. 물론 경기 전후에는 전반적인 전산 업무를 보고요.”

박선국씨(경력 3년, 청도공영사업공사 전산팀)는 그래서 경기 전날에는 술도 마시지 않는 것이 이 팀의 불문율이라며 웃었다.

경기장의 모래판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혈투를 벌이는 싸움소. 그리고 누구보다 고요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는 경기장 사람들! 이제, 1월31일이면 청도소싸움의 ‘2015년 시즌’이 새롭게 시작된다. 주말마다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것이다. 한 차례의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고요하게 정돈되는 경기장. 그곳에서 그들은 주말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두근두근 심장을 뛰게 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글=이은임 방송작가 sophia9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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