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성의 북한일기 .22] “전국민이 농사철 농촌지원사업 하는데…” 장마당 사흘간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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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27   |  발행일 2015-02-27 제34면   |  수정 2015-02-27
[조문성의 북한일기 .22] “전국민이 농사철 농촌지원사업 하는데…” 장마당 사흘간 폐쇄

◆1998년 5월15일 금요일

장마당 입구 큰길 양쪽 갓길에 많은 사람이 붐빈다. 무슨 일일까 생각하면서 그냥 지나치다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장마당을 사흘간 폐쇄한단다. 전 국민이 농사철을 맞아 농촌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때는 장사꾼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에서 강제로 쫓겨나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물건을 더 팔려고 큰 길로 나온 것이다.

지금은 옥수수 파종이 한창이다. 어딜 가나 주민, 학생, 군인이 온 들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아이는 한 달 작정으로 농촌지원을 나갔는데 선생님에게 술과 고기 등을 바치고 사나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단다. 돈의 위력은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도 실감한다.

우리 회사 직원으로 식당 아주머니를 도와 일하는 K양이 친구들에게 “앞으로 돈이 있으면 식당을 차리겠다”고 말한 것 때문에 지난번 보위부에 불려갔다 해명을 잘 해서 그냥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민심의 밑바닥은 시장경제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이러한 흐름의 정신부터 막으려 하는 것 같다. K양은 나에게 친절하고 아양도 잘 떤다. K양이 유치원 공사장 중국 시공대 J사장의 아들 M과 하룻밤 동침하는 대가로 인민폐 100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K양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M이라는 녀석이 중국(조선족 동포) 여자에게 접근하면서 과시해 한 말이라는 소문이다. 요즘 K양이 아프다는 핑계로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감옥이라도 간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지금까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모든 것을 수령님 은덕으로 찬양하면서 어떤 힘든 일도 수령님의 교시 한마디로 대신하면서 살아왔다. 그들에게 나진의 경제 특구 지정은 바깥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었고, 돈의 위력을 실감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알게 모르게 남쪽 한국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중국 보따리 상인의 입을 통해 알고 있는 것 같다. 고난의 행군을 강요당하면서 살아가는 북조선 사람들에게는 한 푼의 돈도 절실한 형편이 아닌가. 더구나 나진 인민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럴진대 K양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다른 어려운 사람도 한두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이곳 나진은 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곳이다. 평양이나 청진에서 생활하는 공무원 한 달 월급은 기껏해야 200원(조선 화폐)이다. 그 돈으로는 여기에서 점심 한 끼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다. 그나마 월급도 제때 나오지 않고 몇 달씩 밀린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현실에서 누가 K양에게 돌을 던지랴.

◆1998년 5월18일 월요일

“앓지 않았습니까?”

나진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하는 첫 인사다.

어떤 연유에서 유래된 인사말인지 궁금하다. 24건설 시공대가 유치원 건물 기초를 1.5m 낮게 앉혀서 식당과 연결되는 계단이 이상하게 된 것도 무척 속이 상한데, 함북 도시설계사업소에서 그린 지붕 설계도에는 보온·방수를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말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우리에게 보온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지 않은가”하면서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다.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의 행동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곳이 어디인가. 도로 포장 작업이 이채롭다. 길 옆 빈터에 드럼통을 절반 잘라서 돌 위에 걸쳐 놓고, 장작으로 불을 때서 콜타르를 녹인다. 녹은 콜타르에 모래를 반죽해 구멍이 난 도로를 메운다. 그렇게 해서라도 도로를 손질 하니 차가 다니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

전 연변과학기술대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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