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인생 37년…윤환섭 보노제과제빵학원장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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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7   |  발행일 2015-03-27 제36면   |  수정 2015-03-27
“빵 수명은 4시간입니다…하루가 지나면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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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환섭 제과기능장이 제과기능사인 부인 윤미옥씨와 함께 타르트와 마카롱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아래 사진은 윤 제과기능장이 지난 8일 대구시 달서구 본리어린이공원에서 열린 소외계층을 위한 행사에 참석해 재능기부를 하러 온 청소년에게 떡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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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환섭 보노제과제빵학원장(53)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다. 올해로 빵을 구운 지 37년째, 대한민국 제과기능장인 그는 2000년 처음 기능장에 도전해 7전8기가 아닌, 17전18기로 2011년 기능장이 됐다. 제과기능장 역사상 전무후무다. 그 이유가 뭘까.

“기능장 시험이 어려워서 떨어진 건 아니고요. 협회의 잘못된 관행과 관습에 대해 서슴없이 비판하다 찍혀서 그렇게 됐죠. 하하하.”

윤 기능장은 지난해 대구시 수성구 범어2동에 타롱타롱이란 가게를 냈다. 제과기능사인 부인 윤미옥씨가 운영하는 가게에선 커피와 음료, 타르트(과일파이의 일종)와 마카롱(프랑스 고급 과자)을 판다. 타롱타롱이란 이름도 ‘타’자와 ‘롱’자에서 따왔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18세부터 빵가게 일해
17전18기 제과기능장
소외된 사람들 위해
제과제빵기술 전수 등
다양한 봉사활동 펼쳐


제빵기계 국산화 의욕
천연균 배양기계 개발
국산 유기농 밀가루에
천연재료 끝까지 고집
아들도 대이어
대구의‘제빵왕 김탁구’


“재미있잖아요. 보노제과제빵학원의 ‘보노’라는 이름도 사실 ‘뭘 보노’의 약자입니다. 보통 빵집 같은 경우엔 프랑스어를 선호하는데 굳이 외래어를 빌려쓰기보다 재미있는 우리말을 썼지요.”

‘타롱타롱’을 사이에 두고 인근에 외국계 빵프랜차이즈점 두 곳이 있다. 하지만 토종브랜드로 굳건히 동네빵집을 고수하고 있다.

“11년전 이곳에서 ‘티&베이커리’란 이름으로 빵집을 냈다가 쫄딱 망했어요. ‘홈베이킹’ 시설투자는 했는데 수강생이 없었죠. 이 지역이 대단지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가라서 노년층이 많이 거주한다는 점 때문도 있겠지요. 당시만 해도 홈베이킹이란 개념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요즘은 홈베이킹이 대세인데, 전 너무 일찍 시작했던 겁니다.”

윤 원장은 1979년 제빵업계에 입문해 흥망성쇠를 수도 없이 체험했다. 어릴 때부터도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했다.

“충북 제천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형님이 키우다시피했어요. 직업군인이었던 형님을 따라 제천, 원주, 남원, 양구, 홍천, 전주를 전전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열일곱 살부터 대구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만 전학을 여섯 번 다녔다. 가난했던 집안 형편으로 중학교만 졸업하고 대구 3공단에 있는 섬유기계 공장에 취직했다.

“선반 일을 했는데 월급이 1만5천원이었던 게 기억납니다. 형이 서울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저 혼자 대구에 남게 됐는데 숙식 가능한 직장이 필요했죠. 그래서 취직한 게 덕인당이라는 빵집이었습니다. 거기서 1년을 일했습니다. 밀가루 포대를 깔고 창고나 가게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난방도 안 됐죠. 요즘 같으면 하루도 못 견딜 겁니다.”

당시 대구에선 10여곳의 빵가게가 성업 중이었다.

“덕인당을 비롯해 수영당, 일선당, 만미당, 금자당, 황제당 등이 시내에 있었죠. 뉴욕제과와 런던제과, 뉴델제과는 나중에 나왔습니다. 6·25전쟁 통에 피란민들이 대구에 많아 먹을 게 변변찮던 시절 빵이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이 대구에서 인기를 끌었지요. 요즘도 밀가루 음식 소비량은 대구가 전국에서 최고지요.”

그는 덕인당을 나와 현대중공업 영빈관과 현대호텔의 전신인 외국인 숙소 주방으로 스카우트된다.

“규율이 엄격했어요. 독립하고 싶어서 대구로 와 동구시장 앞 인도에서 포장마차를 열고 어묵과 핫도그, 찹쌀도넛을 팔았어요. 장사가 정말 잘 됐는데 88올림픽을 앞두고 길을 정비한다며 철거 당하는 바람에 영남호텔 제과장으로 갔다 공주당으로 옮겼죠.”

그러던 차에 올림픽 이후 대구에 뷔페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그는 뷔페 디저트에 빵과 과자가 들어가는 것을 알고 두류시장 인근에 ‘로얄제과’라는 가게를 연 뒤 중·소뷔페식당에 디저트 과자를 만들어 납품했다.

“92년 가게를 원대동으로 옮겨 ‘몽짜 베이커리’로 이름을 바꿨는데 패착이었어요. 또다시 망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이후 그는 지인의 도움으로 케이크박스 회사의 기술상무로 입사했다.

“일본출장을 자주 갔습니다. 앙코빵, 소보로빵, 크림빵만 만들다 일본에서 제과제빵 신기술을 많이 습득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세미나도 열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제과기능장시험에 도전했다. 빵가게를 여는 것보다 교육에 눈을 돌린 것도 이즈음이다.

“대한제과제빵학원에서 교육담당 부장을 했지요. 그러다 수성구로 오게 됐습니다. 11년전 티&베이커리가 망하고 잠시 백두기획이란 이벤트회사를 하다 영업이 안 돼 다시 찐빵 가게, 칼국수 가게를 했습니다.”

그의 유목민적 기질은 끝이 없다. 다시 술집을 열었다.

“‘선녀와 나무꾼’이란 막걸리집을 했습니다. 손님들이 아내한테는 선녀라 하고 저보고는 ‘어이, 나무꾼’이라 하기에 열받아 때려치웠습니다. 원래부터 제가 갈 길도 아니었지요.”

그는 2007년 칠성동에서 보노제과제빵학원을 개소한다. 그때 고졸검정고시를 끝내고 올해 한국호텔직업전문학교 전문학사과정도 마쳤다. 그 전부터 그랬지만 그는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수성구새마을협의회에 소속돼 봉사활동을 13년째 했어요. 그런데 관변단체가 정치적으로 좀 독립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수봉사단체가 돼야 함에도 구청보조단체로 전락했습니다. 아마 지원을 받아 그럴 겁니다. 미혼모시설인 혜림원에서 미혼모를 대상으로 제과제빵기술도 가르쳐 줬는데 어느날 육영학사(사회복지법인)에서 전화가 왔어요. 빵을 좀 제공할 수 없냐고 하기에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시라, 그러면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아이들에게 빵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지요.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밖에도 대구지역 기능장 모임인 숙련협회 이사로, 청소년재능기부봉사단 이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부터는 매달 셋째주 월요일 대구시 중구 ‘요셉의 집’에 빵을 100여개 들고가 간식을 제공하고 ‘밥퍼봉사’를 한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인색하게 살기는 싫어요. 죽으면 돈 다 가져가는 것 아니잖아요. 적선(積善)은 사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저는 하도 많이 망해봐서 잘 알아요. 돈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아요. 저한텐 기술이 있으니까요. 이제 친구들은 정년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 오히려 느긋하죠. 하하하. 빵과 과자는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제빵기계도 직접 설계해 국산으로 대체할 겁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천연균 배양기계를 보여주었다.

“외국 것은 3천만원 정도이고 국내산 기계도 1천200만원인데 전 200만원에 만들었지요. 건포도, 사과 같은 것을 40℃에서 24시간 발효시켜 천연유산균을 만드는 기계입니다.”

그의 아들 역시 대를 이어 제과제빵에 도전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국 최연소 케이크 디자인 자격증을 따서 지역 방송에 ‘대구의 제빵왕 김탁구’로 소개돼 아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빵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빵가게를 열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격이 싸다고 정크푸드를 먹으면 되겠습니까? 전 끝까지 첨가제나 방부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 밀가루에 천연재료를 고집할 겁니다. 빵의 수명은 4시간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지요. 그래서 50% 할인해 팔거나 오래된 빵은 아예 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빵 가격을 내려야지요. 그런데 프랜차이즈는 보통 사흘까지 갑니다. 우리 가게 빵이 비싼 것도 다 그 이유이지요. 11년 전 망한 곳에 지난해 11월11일 다시 개소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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