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수성구 수성1가 레스토랑 ‘자니 스토리’김정환 오너 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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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1   |  발행일 2015-05-01 제41면   |  수정 2015-05-01
시드니의 세계적 레스토랑 ‘테츠야’서 ‘콩피’ 담당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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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스토리의 메뉴는 기교와 맛보다는 식재료의 진정성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 스테이크는 진공저온조리법인 수비드 방식으로 요리한다. 스페인산 소시지인 초리조가 들어간 새우 스파게티는 뉴요커 같은 풍미를 간직하고 있다. 단호박과 자색고구마를 이용한 무첨가제 아이스크림은 흡사 과일 셔벗 같다.


콩피: 돼지·거위·오리 등 육류를 원래 자기 기름으로 50℃에서 천천히 익힌 음식

해군장교의 길 접고 호주 요리유학
경험 하나하나 쌓아 ‘테츠야’ 입성

지난 1월 귀국…레스토랑 문 열어
한·중·일·양식의 경계 허물기 시도

고기맛 살리려 양념·향신료 최소화
수비드 방식의 스테이크가 인상적
새우 스파게티는 뉴요커 같은 느낌

해군 장교의 꿈을 버리고 오너셰프가 됐다는 한 사내의 얘기를 들었다. 그 레스토랑의 상호는 ‘자니 스토리(Johnny Story)’. 대구시 수성구 수성2가 롬바드 아파트 상가에 있다. 김정환 오너셰프(33)의 별명은 ‘자니’. 정환을 빨리 발음하면 자니로 들려 별명으로 정했다. 어릴 때부터 아침 요리프로 등을 잘 챙겼다. 초등 6학년 때 누나에게 얼치기 볶음밥을 만들어줬다. 볶음밥에 포도주스를 뿌렸다. 누나가 보더니 대뜸 “너 요리학교에 나가라”고 했다. 하지만 공부를 너무 잘했다. 요리본능은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버린다. 협성고 2학년 시절, 해군사관학교 설명회를 접하곤 해군장교의 꿈을 갖는다. 한국해양대(현 해사수송과학부) 항해과에 들어간다. 4년을 다니고 해군 ROTC를 수료하고 소위로 임관한다. 동해 1함대의 원주함 갑판사관이 된다. 그냥 모범생으로 부모가 희망하는 길로 순항한다. 항해사로 갈 작정이었지만 점차 군생활이 무기력해지고 미래지향적인 동기유발도 되지 않는다.


◆ 인생 반전을 위한 호주 워킹 홀리데이

전역과 함께 호주로 1년 일정의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 서호주에 있는 퍼스(Perth)에 9개월 머물렀다. 매일 집에서 요리하며 요리책, 인터넷 요리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당시 한국 친구를 위해 스테이크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친구가 레스토랑에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귀국하자마자 학생비자로 바꿔 호주로 다시 요리유학을 떠난다. 그때 발견한 책이 ‘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중앙북스 간)’. 상위 1%를 매혹시킨 미슐랭가이드 스타셰프 6인의 성공 비즈니스 노하우가 담겨 있었다.

일본인 오너셰프 ‘와쿠다 데쓰야’의 성공 스토리에 감동했다. 워킹 홀리데이를 와서 1989년 시드니에 자그마한 레스토랑인 ‘테츠야’를 차려 세계적으로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서비스 업종 관련 전문대에 입학해 요리와 호텔경영학을 1년씩 공부한다. 레스토랑 아뮤즈(Amuse)를 노크해 주경야독했다. 요리는 언감생심, 주방보조부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재료를 준비했다. 5명의 멤버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거기서 전문성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셰프는 그냥 요리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예술적 면은 물론 경영적인 면까지 두루 능통해야 한다고 믿었죠.”

셰프가 탐독하고 있던 식재료 백과사전 같 은 알란 데이비드슨의 ‘FOOD(1999년 간행)’부터 구입해서 공부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난생 처음 자기가 하고 싶은 영역을 스스로 찾아 공부했기 때문이다.

◆ 국제적 레스토랑인 테츠야 입성

아뮤즈를 나와 시티게이트(Citigate)호텔 주방 요리사로 취직한다. 전문적인 메뉴보다 음식을 둘러싼 이런저런 유관업무를 익힐 수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걸 거기서 검증도 해보고 실연도 해볼 수 있었다. 3년 후 시티게이트호텔이 없어지고 그 호텔 총지배인이 서호주 와이너리 중심부에 있는 풀만(Pullman) 리조트로 옮긴다. 그도 그곳으로 이적한다. 스위스 출신의 총주방장 스벤(Sven)에게 영감을 많이 받는다. 스벤은 좋은 재료 찾기에 올인한다. 재료별 최고 산지 리스트를 알고 있다. 좀 비싸도 제대로 된 음식을 위해 쾌척한다.

거기는 레시피를 완전 공개한다. 누가 만들어도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요리라인을 표준화한 것이다. 총주방장은 “너무 많은 걸 넣어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보기좋게 만들려고 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연이어 포 포인트(Four Point) 바이 쉐라톤 호텔 부주방장이 된다. 여기서는 조직관리를 배운다. 그의 밑에 12명의 조리사가 있었다. 요리는 물론 인간관계, 품질 관리, 서비스, 인원 관리, 스케줄표 짜기 등을 챙겨야만 했다.

어느 날 그가 꿈꾸던 테츠야 레스토랑 구인 광고를 접한다. 테츠야는 예약 안 하면 음식을 못 먹는다. 예약해도 길게는 1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 영화배우 톰 크루즈 등 세계적 명사가 방문했다.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에 들어간다. 포 포인트에서 퇴근해 비행기를 타고 밤새워 인터뷰를 하러 갔다.

“너는 요리를 왜 하려고 하지?”

그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고향에서 내가 호주에서 배우고 느낀 요리를 내놓는 게 꿈입니다.”

조건부로 합격한다. 근무조건은 지옥이었다. 근무시간 평균 15시간. 쉬는 시간도 없었다. 그곳에는 15명의 조리사가 있다. 주방보조는 5명. 하루 120명을 서빙할 수 있다. 1인분 20만원선. 메뉴도 정해져 있다. 평일은 점심은 없고 디너만 있다.

그곳의 대표적 메뉴는 바다송어로 만든 ‘오션 트라우트 콩피’. 콩피(Confit)는 돼지, 거위, 오리 등 육류를 원래 자기 기름으로 50℃에서 천천히 익힌 음식이다. 송어 위에는 말린 다시마 가루를 고명처럼 올린다.

이 레스토랑은 메뉴별 전담 셰프가 있다. 그는 콩피를 담당했다. 송어만 준비하는 데 6시간 걸린다. 테츠야에서 배운 건 셰프로서의 자세다.

◆ 자니의 메뉴 스토리

지난 1월에 귀국했다. 그는 남들이 좋아하는 걸 따라 하기보다 창의적인 요리에 목숨을 건다. 한식·중식·일식·양식의 경계를 파괴하고 싶었다. 오픈할 때 부모가 엄청 반대했다. 식당업이 너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만5천원짜리 코스메뉴를 시켰다.

가장 인상적인 건 ‘수비드(Sousvide) 방식’의 스테이크였다. 수비드는 70년 중반 프랑스에서 개발된 조리법으로 ‘진공저온조리법(저온중탕)’을 뜻한다. 영어로는 ‘Under Vacuum’.

수비드 조리법은 음식 재료를 내열성 비닐 팩에 진공포장하여 저온에서 장시간 동안 균등하게 조리한 것이다. 안심과 채끝이 오면 100g씩 진공포장한다. 수비드 기구에서 2~3시간 62℃ 온수에서 익힌다.

“62℃는 스테이크의 가장 맛있는 온도라고 봅니다. 단백질이 가장 안정화될 수 있는 온도도 62℃라고 생각해요.”

자니의 스테이크는 참으로 꾸밈이 없다. 양념과 향신료도 최소화한다. 한점 씹어봤다. 육즙이 참 야물다. 독에서 적당히 숙성된 묵은지의 식감이다. 간도 소금과 후추로만 하고 로즈마리 등 허브는 일절 넣지 않는다. 쇠고기 진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서양 와사비를 갈아서 위에 뿌린다. 머시 포테이토도 우유에 삶아 으깼다. 두릅을 피클로 만들어냈다.

무설탕 요거트, 사과, 꿀, 계피, 블루베리, 키위 등이 들어간 오트밀 수프가 전채로 나왔다. 이어 할루미치즈샐러드가 등장했다. 드레싱을 만들 때 호두오일, 엑스트라버진오일, 꿀, 레몬즙, 블루베리식초, 겨자 등으로 만드는데 단맛은 블루베리식초로 만들고 짠맛은 신맛이 짠맛을 커버할 수 있어 레몬즙을 활용한다.

스페인산 소시지인 초리조와 말린 토마토, 산미나리 씨앗이 안배된 닭육수 소스로 만든 새우 스파게티는 뉴요커 같은 풍미가 감돈다.

아보카도 크림 파스타는 질척거리지 않고 느끼하지도 않다. 아보카도를 넣어 소스를 초록색으로 만들고 그 위에 상큼한 샐러드를 넣어 느끼한 맛을 잡아주면서 훈재연어까지 더했다. 디저트는 단호박, 자색고구마를 이용한 무첨가물 힐링 아이스크림. 고구마를 쪄서 채에 갈아낸다. 거기에 크림과 꿀만 넣어 냉동실에 넣고 얼려둔 것이다. 레시피 라인이 자니 스토리 버전이랄 정도로 독특하다.

고향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자니. 당분간 대구 식도락가의 고정관념과도 싸워야 할 것이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마지막 주문은 밤 9시까지. 수비드 스테이크는 예약 필수. 수성구 수성동2가 1-3 (053)745-505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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