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 후 양형의견 내…선고에 반영 안되지만 ‘공정재판’ 참여 뿌듯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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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0 07:28  |  수정 2015-05-20 07:28  |  발행일 2015-05-20 제4면
‘그림자 배심원’체험해 보니
20150520
19일 대구법원 4층 중회의실에서 법원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참관할 ‘그림자(방청석) 배심원’에게 이날 재판진행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지법 제공>


살인미수혐의 50대 피고인
범행 고의성 여부가 쟁점

난상토론 끝에 내린 평결
재판부 판단과 거의 비슷

‘일일판사’役 소중한 경험

19일 오전 10시30분 대구법원 4층 중회의실. 기자를 포함한 6명의 ‘그림자(방청석) 배심원’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열릴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보고 자신의 양형 의견을 제시할 임무를 띠고 있다. 법원 측이 사전에 그림자배심원에게 사건 개요와 재판 진행절차를 안내하기 위해 마련했다.

대구법원에서 그림자배심원 제도는 2012년부터 시행됐다. 배심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보다 많은 시민에게 재판참여 기회를 제공하자는 게 취지다.

법정에서 재판부 왼쪽에 마련된 배심원석에는 무작위로 선발된 50명 중에서 선정된 배심원 8명(1명은 예비배심원)이 앉는 반면, 그림자 배심원은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본다.

그림자 배심원과 정식 배심원의 차이는 간단하다. 정식 배심원이 내린 유무죄 판결과 양형의견은 재판부 선고에 반영되지만, 그림자 배심원의 의견은 선고 이후에 재판부에 전달된다. 한마디로 해당 사건선고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셈이다. 법원은 정식 배심원과 그림자 배심원의 의견 차이를 보고 재판부의 향후 선고에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그림자 배심원은 상대적으로 부담은 적었지만 재판에 임하는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오전 11시 대구법원 11호 법정에 그림자 배심원이 들어가 방청석에 앉았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손봉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은 함께 술을 마시다 홧김에 지인의 머리를 길이 38㎝의 둔기(쇠재질)로 3차례 내리쳐 살해하려 한 사건이었다. 주요 쟁점은 살인미수로 그친 이 사건에서 피고인 권모씨(51)가 살인의 고의성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는지 여부다. 두 차례 가격 후 의식불명인 피해자(42)를 재차 가격했다는 검찰의 혐의입증 과정도 중요 관심사였다.

재판은 공소사실 공표, 증인 신문, 피고인 신문, 검찰 구형, 최후 변론, 피고인 최후진술 순으로 진행됐다. 정오쯤 휴정된 재판은 오후 1시에 속개됐고 이후 1시간40분 동안 검사 측과 변호인 간의 치열한 법리공방전이 벌어졌다. 검찰은 살인미수혐의로 기소된 권씨에 대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잠시 휴정 후 오후 3시부터 한 시간가량 그림자 배심원은 다시 중회의실에 집결해 모의 평의 및 평결을 했다. 지도법관인 이창민 대구지법 공보판사가 회의를 지켜봤다. 그림자 배심원은 난상토론 끝에 권씨의 혐의에 대해 유죄로 결론 내렸다. 양형의견은 감경 및 가중 요소를 반영해 2년6월에서 4년6월까지 다양했다. 기자는 징역 4년을 제시했다. 논의 끝에 그림자 배심원의 종합 양형의견은 징역 3년6월을, 검찰의 전자장치부착명령에 대해선 기각 쪽으로 결론을 모았다.

논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사건을 너무 포괄적으로 보지 말고 범행 당시 상황에 특히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도법관의 설명에 배심원은 당황했다. 다소 초점이 빗나간 것이다. 더욱이 살인미수혐의에 적용한 양형요소만 무려 30가지였다. 그림자 배심원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하지만 일단 결론이 나자 그림자 배심원의 관심은 자신의 양형의견이 정식 배심원 및 재판부의 판단과는 어떤 차이가 날지에 대한 것으로 옮겨졌다.

이윽고 오후 6시20분 선고가 났다. 재판부는 권씨의 살인미수혐의를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전자장치부착명령은 기각했다. 정식 배심원은 7명 전원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했고, 양형의견은 징역 2~5년이었다.

재판부는 “권씨가 범행에 사용한 도구는 크기나 재질, 무게 등을 보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넉넉히 인정된다. 특히 두 차례 가격한 뒤 항거불능 상태에서도 또 다시 급소가 모인 머리를 때렸다”고 했다. 이어 “다만 범행 후 119에 자진신고해 구호조치를 취했고, 우발적 범행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살인의 고의는 크지 않다고 판단한 기자 생각은 다소 재판부 의견과 어긋났지만 양형의견은 정확히 맞혔다. 정식 배심원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기자를 포함해 이날 8시간 동안 일일판사 역할을 한 그림자 배심원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득했다.

조해현 대구지법원장은 “그림자 배심원은 재판에 공정을 기하고, 시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그림자 배심원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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