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밀양 백운산 호박소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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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13   |  발행일 2015-11-13 제38면   |  수정 2015-11-13
바위절구를 판 물…영겁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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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를 닮은 호박소.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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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소 계곡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이름난 피서지였던 계곡은 2020년까지 출입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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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소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계곡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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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백연사. 계곡 초입에 위치한 작은 절집으로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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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골 케이블카. 국내 최장의 케이블카로 고지에 오르면 영남 알프스가 한눈에 펼쳐진다.


한국 명수 100선 선정
전설에는 바닥 없지만
수심 5m 물놀이 금지

영남 알프스, 굉장하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면 밀양 산내면으로 들어선 것이다. 언제 이렇게 가을이 깊어졌나. 태산준령으로 둘러싸인 너른 들 속을 앞선 길 쫓아 들어서니 천지 사방이 울긋불긋하다. 두꺼운 구름은 빠르게 이동하며 간간이 말간 하늘을 여는데, 빛 내리는 곳마다 더욱 눈부신 단풍이다.

◆ 산내면 호박소 가는 길

산내면은 예부터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부르던 땅이다. 해발 1천m를 전후로 하는 웅대한 산이 둘러 서있고 그 사이를 재약산과 가지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 흐른다. 물줄기 따라 하나의 길이 통하니 그 모양이 호리병 같다는 얘기다. 물 좋고, 반석 좋고, 토지가 비옥하다 하여 삼락의 가경이라 부르기도 했다. 마을은 물길을 따라 자리 잡고 태산의 기운에 기대 사과를 키운다. 산 아래는 모두 사과밭이고, 길 가는 줄줄이 사과 좌판이다. 달콤한 향내가 진동한다. 산들의 가을만큼 사람의 가을도 깊다.

길은 호리병의 밑동에 닿아 석남고개를 넘는다. 서늘한 얼음골을 지나며 바짝 다가오는 산들의 기운에 흠칫한다. 그리고 잠시 후 엉성하게 쓰인 호박소 이정표를 본다. 넓은 주차장은 한산하다. 식당도 고요하다. 꼿꼿이 직립한 나무들이 길을 인도한다. 숲에는 지난여름 사람들로 흥성했을 탁자가 어제의 비에 젖은 채 버려진 모양새로 놓여 있다.

짧은 직선의 길 끄트머리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절집이 있다. 백운산 백연사라 새겨진 표지석이 입구에 서 있다. 법당 하나 살림집 하나가 전부다. 누군가는 열심히 마당을 쓸고 샛노란 가을 잎들은 쉬지 않고 진다. 돌담길 모퉁이를 돌자 손 글씨로 적힌 백연사 안내판을 만난다. 주지 백운 스님은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로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바로 앞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다. 여기서부터 호박소까지 0.1㎞.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오천평 바위, 왼쪽으로 계곡 따라 오르면 호박소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가는 것이 조금 더 호박소에 근접하는 길이다. 바람이 차다. 우수수 떨어지는 잎들이 계속 내 어깨와 머리를 스친다. ‘은총 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호박소까지 나무 데크길이 잘 이어져 있다. 여름내 피서객으로 가득했던 계곡은 지금 진 잎들의 차지다. 하얀 화강암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잎을 쓸어내지만 역시 가을 잎들은 쉬지 않고 진다.

◆ 백운산 호박소, 절구를 닮았다

작은 폭포가 연달아 떨어지고, 계곡을 따르던 길이 작은 전망대에서 멈추면 호박소다. 호박은 확의 방언인데, 돌절구를 뜻한다. 동부 영남에서 가장 높은 가지산에서 발원한 물이 백운산을 타고 내려와 여기 커다란 반석 위에 떨어지기를 수십만 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호박소다. 밀양 8경중 하나고,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호박소는 우리나라에서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는 포트홀(pothole) 중에서 규모가 큰 것에 속하며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가진 것 중 하나라고 한다.

호박소는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끝이 닿지 않을 만큼 깊고,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호박소는 오랜 가뭄이 계속될 때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소(祈雨所)였다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에 ‘가뭄에 범의 머리를 넣으면 물이 뿜어 나와서 곧 비가 되는데, 연못 속에 더러운 것이 들어오면 그것을 씻어 내기 위해 조화를 부리기 때문이다’라고 전한다.

이무기가 살고 있는 깊은 호박소. 실제로는 5m 정도의 수심으로 물놀이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매년 이를 무시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지금은 호박소 계곡 전체가 출입 금지되어 있다. 금지 기간은 2020년 6월30일까지다. 데크 로드도 호박소 출입을 막기 위해 올해 설치한 것이라 한다. 5년간 계곡은 휴식에 들어갈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어느 날 말간 얼굴로 깨어날 때까지 우리는 그 평화로운 수면을 살금살금 지켜볼 수 있다.

◆ 얼음골 하늘을 나는 케이블카

석남고개 초입, 얼음골 계곡이 왁자하다. 영남 알프스를 단숨에 오를 수 있는 케이블카 때문이다. 대형 버스가 줄을 잇고 길은 긴 주차장이다. 케이블카의 선로 길이는 1.8㎞, 국내 최장거리로 오르는 내내 아찔하게 펼쳐지는 산을 만끽할 수 있다. 해발 1천20m에 자리한 상부 역사에 닿으면 하늘뿐인 세상에 산책로가 이어진다. 280m의 하늘사랑길이다. 전망대인 녹산대에 도착하면 천황산과 재약산, 백호바위를 중심으로 한 백운산과 그 뒤에 좌우로 자리한 운문산과 가지산이 펼쳐진다. 천황산, 재약산, 백운산, 사자평 등으로 등산로도 나 있다. 요즘 얼음골 케이블카는 뜨겁다. 2~3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 산을 타고 천천히 날아오르는 하얀 케이블카를 바라보며 언젠가, 한번쯤이란 생각을 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 IC로 나가 울산 언양 방향 24번 국도로 간다. 가지산도립공원 얼음골을 지나 조금 가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고 조금 더 직진해 가면 호박소다. 호박소 주차장은 무료이며, 주차장에서 호박소까지 거리는 10여분 내외다. 케이블카 요금은 대인 1만2천원이고, 소인, 경로자 등은 9천원이다. 왕복티켓만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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