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화가’로 3년 만에 스크린 복귀 배수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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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3 08:14  |  수정 2015-11-23 10:37  |  발행일 2015-11-23 제24면
“깡·끈기·독기 품고…연습생 시절처럼 판소리에 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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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지는 “도리화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내 얘기 같아 가슴이 뜨거워졌다”며 “이번 영화를 찍고 배우로서의 꿈도 커졌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마음껏 울어라. 울다 보면 웃게 될 거야. 그게 판소리라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듯 애달프게 들려오는 판소리 심청전에 눈물을 쏟아내던 어린 (진)채선에게 동리정사의 수장 신재효(류승룡)는 다가와 위로하듯 말을 건넨다. 이후 신재효의 아름다운 소리에 이끌려 그의 뒤를 밟던 채선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한다. “소녀, 소리꾼이 되고 싶습니다.”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에 ‘도리화가’는 금기를 넘어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이 되었던 진채선(배수지)과 그녀의 스승 신재효의 이야기를 담는다.

‘건축학개론’(2012)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배수지의 스크린 복귀작이기도 하다. 녹록지 않은 캐릭터를 선택한 배우로서의 의지와 고민이 읽히는 한편으로, 관객의 냉엄한 평가를 기다려야 하는 배우의 숙명과 다시 마주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선 어떤 긴장감도, 부담감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밝은 웃음과 미소만이 가득하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너무 하고 싶었어요.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고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죠.” 특히 그녀의 얼굴에서 남다른 자신감이 느껴진 건 채선이 힘들게 소리 연습을 하는 과정이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시절 경험했던 자신의 감정과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이 공감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실존했던 인물이고 판소리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컸다. “하지만 ‘도리화가’는 채선이가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예요. 판소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채선이처럼 소리를 하고 싶어하는 열망, 열심히 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작품에 임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배수지는 배우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돌아왔다.

시대 금기 깬 조선 첫 女소리꾼役
악보 없어 듣고 또 들으며 맹연습
존경섞인 사랑 미묘한 감정 표현

연기 재미 알게 돼…욕심도 생겨
차기작은 능글맞고 지질한 PD役

-판소리를 해보니 어떤가.

“당연히 쉽게 생각하고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몰랐던 부분도 많다 보니 힘들었다. 소리를 내는 방법부터 끝마무리를 하는 것까지 노래할 때와는 확연히 다르고 체력소모도 그만큼 많다. 딱히 악보도 없다. 박애리 명창에게 사사했는데 선생님과 마주보면서 그분의 지시를 따랐고, 악보가 없으니까 머릿속에 음을 그리면서 연습을 했다. 그런데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되고 할 때마다 음도 달라졌다. 그래서 수업내용을 매번 녹음해놓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듣는 과정을 거쳤다. 나중에 보면 초반에 녹음한 것과 최근 녹음한 것과의 차이가 많다.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더 좋은 판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채선은 스승인 신재효에 대해 복합적 감정을 드러낸다. 어떤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나.

“채선은 어릴적 부모님을 잃었다. 신재효는 그런 채선에게 아버지같고 유일하게 그녀의 능력을 인정해준 사람이다. 때문에 당연히 스승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있을 거고, 동시에 사랑의 감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런 복합적 감정을 쉽사리 내비치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신재효도 마찬가지다. 후반부에 그런 점들이 많이 부각됐는데 이 감정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류승룡은 극 중 신재효처럼 연기 선배이자 스승이라 할 수 있는데.

“정말 스승님처럼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한번은 연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해서 차에서 주무시고 계신 선배님을 일부러 깨운 적이 있다. 그런데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리고는 ‘열심히 하는 것 같아 감동을 받았다’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내주셨다. 그렇게 날 챙겨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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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계속 배워볼 생각은 있나.

“배우고 싶다고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리듬감과 발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연기적으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소리를 진짜 하고 싶어하는 채선의 열망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습할 때도 얼굴을 엄청 일그러뜨렸고, 당차고 겁없는 인물로 느껴지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신재효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잘 드러났으면 했다.”

-채선은 판소리에 관한 한 깡과 끈기 그리고 독기를 품고 있다. 실제의 당신은 어떤가.

“비슷하다. 그런데 예전에는 더 심했다. 그런 감정들이 지금껏 나를 지탱해온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연습생 시절이 힘든 편이었나.

“혹독하고 힘들지만 하기 나름이다. 끝까지 살아남고 싶으면 스스로 열심히 해야 한다. 그만큼 자기 의지가 크게 반영이 되는 편인데 이 과정에서 누군가 압박을 주거나 채찍질을 해주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내가 일부러라도 혼자 훈련을 많이 했던 건 그런 의지와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인가.

“좀 그런 편이다. 연습생 시절 때 써놓은 일기를 보면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예를 들어 ‘혼자 연습실에 남아 있기’ ‘제일 먼저 오고 제일 늦게 가기’ 등 무서울 정도로 계획과 목표가 뚜렷했다.”

-대중은 가수가 아닌 배우로도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 연기는 재미있나.

“초반에는 재미를 못 느꼈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컸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재미있다. 촬영 후 모니터를 보면 항상 아쉬워서 ‘다음엔 잘 해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 자체가 연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연기적 재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성을 표출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많다. 배우로서의 꿈도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제니퍼 로렌스가 맡았던 역할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녀가 춤추는 장면에서 연기적 영감을 많이 받았는데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지 않아서 어설픈 티가 팍팍 났지만, 오히려 그녀의 감정을 더 분명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정말 예쁘고 멋져 보였다. 나도 그녀처럼 뻔하지 않은 신선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 내년에 출연할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맡게 될 능글맞고 지질한 다큐멘터리 PD 역할이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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