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주역’과 마음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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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02 07:49  |  수정 2016-05-02 07:49  |  발행일 2016-05-02 제17면

‘주역’을 마음공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주역을 구성하는 64괘 384효를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면적인 작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주역’은 우리 마음의 가장 일반적인 속성을 ‘피부 밑 자아’, 즉 에고(ego)라고 말한다. ‘주역’의 64괘 중 천수송(天水訟)괘, 산화비(山火賁)괘, 지화명이(地火明夷)괘가 에고로서의 마음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에고란 내 마음과 몸을 분리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동일시하는 의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고는 실체가 없는 자신의 존재를 생각이나 감정들의 다툼을 통해 입증하려 한다. 이런 에고의 책략에 휘둘리게 되면 평생을 끊임없는 생각과 감정의 다툼 속에서 삶을 낭비하게 된다. 천수송괘에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들의 다툼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 다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방법은 한 마디로 작사모시(作事謀始)이다. 즉 생각과 감정의 다툼이 생기면 그 시작을 돌이켜보라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겪는 모든 극단적인 생각과 감정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원한 관계나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쟁도 사실은 모두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에고의 책략에 의해 생각과 감정이 중단 없이 이어지면서 눈덩이처럼 커져 버렸던 것이다. 작사모시는 ‘중용(中庸)’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이 처음 나타날 때 그 기미를 살피라는 말과도 통한다.

산화비(山火賁)괘는 꾸밈의 도를 나타낸다. 우리는 자신의 외모, 학력, 직업, 건강, 재산, 지식 등으로 자신을 꾸민다. 그러나 이는 역시 에고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아무리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는 사람도 자기보다 더 잘생긴 사람을 만나면 위축되기 마련이다. 학력이나 직업, 건강, 재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과 동일시해서는 결코 완전한 충만감을 맛볼 수 없다.

융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페르소나는 가면을 말한다. 융에 따르면 자신을 더 화려하게 꾸미면 꾸밀수록 더 많고 더 강한 그림자를 만들게 된다. 가면이 남에게 과시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라면, 그림자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이다. 이런 공허한 꾸밈에 대해 비괘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백비(白賁), 즉 ‘희게 꾸미면 허물이 없다’는 최종 해결책을 제시한다. 희게 꾸민다는 것은 꾸미지 않는 것이다. 꾸미지 않을 때 우리의 본성은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즉 스스로 꾸미려는 노력을 모두 버릴 때 결코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충만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화명이(地火明夷)괘는 특히 부정적인 감정, 즉 분노, 짜증, 괴로움, 두려움, 슬픔 등의 감정이 올라올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괘이다. 명이괘는 ‘어둠의 도’를 말한다. 즉 자신이 경험하기 싫은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명이괘의 교훈은 괘사에 나오는 ‘용회이명(用晦而明)’이다. 용회이명이란 어둠을 이용해서 밝아지는 것이다. 즉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과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이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어둠을 이용해서 밝아지는 방법은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의식화’와 같은 원리다. 융은 의식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림자와 아니마, 아니무스를 의식화함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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