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양산 대석리 홍룡사 홍룡폭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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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7   |  발행일 2016-06-17 제37면   |  수정 2016-06-17
절집 곁 폭포 보는 순간…속세의 묵은 때·잡음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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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룡폭포와 관음전. 아래 소에서 천룡이 무지개를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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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룡사 산신각. 앞 계단을 오르면 관음전이 있는 상부폭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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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봉안한 무설전. 대웅전 뒤쪽에 단 높여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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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홍정. 대석리에 살던 이재영과 권순도가 1918년 세운 것을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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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룡폭포의 상부에 있는 약사여래불.


대석리 마을에서 처음 보는 것은 어지럽고 너저분한 밭이다. 길 굽자 그 밭들의 잔영이 파스텔 톤이다. 마을 저수지의 푸른 둑 사면에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본다. 가슴이 심각하게 뛴다. 한동안 심심한 산길이다. 심드렁하다. 갑자기 무성한 편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상쾌하게 입 꼬리가 올라간다. 이 짧은 시간에도 마음은 널을 뛴다. 아, 그래서 산사에 들었노라고, 믿자.

무지개다리 건너 산신각 오른쪽 오르면
절벽에 둘러싸인 관음전과 홍룡폭포
천룡이 무지개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

원효·의상이 관세음 친견했단 낙수사
홍롱사로 불리다 홍룡사 된 연유 모호
단 높여 자리한 무설전과 가홍정 눈길

◆홍룡사 홍룡폭포

계곡에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큰 법당으로 향하는 반야교와 폭포로 향하는 무지개다리. 어느 쪽이든 세속을 벗어나는 길이다. 먼저 소리 내어 말 걸어오는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수량이 적어 그 소리 소곤소곤하다. 무지개 마루에서 저 높은 곳을 보니 나뭇가지를 헤치고 부처님 한분 앉아 계신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물줄기 굽어보며.

다리 건너 정면으로 산신각이 자리한다. 벼랑을 꼭 붙잡고 폭포를 향해 발돋움하는 듯하다. 그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폭포의 상부에 닿는다. 푸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 관음전과 폭포가 서로를 향해 살짝 몸을 틀어 바라본다. 관음전에는 백의관음과 폭포에 현현한다는 낭견관음을 모시고 있다. 폭포의 오른쪽에는 약사불이 약간 쌀쌀한 눈빛으로 정좌해 계신다.

폭포 아래 소에는 옛날 천룡이 살았다는데, 무지개를 타고 승천했다 하여 홍룡(虹龍)폭포라 부른다. 원래는 ‘홍롱(虹瀧)’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낙수의 물보라 속에 무지개가 뜬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홍룡으로 정착했다. 이리 저리 몸을 비틀며 길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이 용과 닮았다.

계단을 내려와 무지개다리를 스쳐 지나 대웅전 경역으로 통하는 문을 통과한다. 돌아보니 수정문(守正門)이란 이름이 걸려 있다. 대웅전 마당 앞에는 대숲이 벼랑을 막고 서있다. 어른 팔뚝만 한 대나무들이 창병(槍兵)부대 같다.

대지는 좁은데 어쩐지 넓어 보인다. 대웅전과 선방, 종각, 요사채 등이 앞서고, 배면의 가운데에 무설전이 자리한다. 성큼 단을 높이고 담을 둘러 용을 새긴 중문을 두었다. 무설전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홍룡사는 관음보살만 세 분 모시고 있는 셈이다.

◆낙수사 혹은 홍롱사

홍룡사는 천성산의 서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한다. 원효가 중국에서 온 제자 천명을 가르쳤다는 89개의 암자 중 하나가 이곳이었다. 처음에는 원효의 제자들이 폭포에 몸을 씻은 후 화엄경 설법을 들었다고 해서 낙수사(落水寺)라 불렀다 한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여기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도 있다.

홍룡사는 조선 선조 대까지만 해도 영남 제일의 선원이었고 천불전, 관음전, 나한전 등을 갖춘 천성산 제일의 대가람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수백 년 동안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10년대에 통도사의 법화(法華) 스님이 중창했다. 대웅전이 그때 세워진 목조 건축물이며 나머지는 1970년대에 중건된 것이다. 낙수사가 언제 홍롱사가 되었는지, 홍롱사가 언제 홍룡사가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낙수사는 ‘승고승전’에 기록으로 남아 있고, 홍롱사는 일주문과 선방의 현판에 새겨져 있다.

◆가홍정, 이재영과 권순도

홍룡사 앞, 두 개의 다리를 목전에 두고 세속의 땅에 정자가 하나 서 있다. 가홍정(駕虹亭)이다. 모습은 우람한데 돌아앉은 모양새는 무람하다. 대석리에 살던 이재영과 권순도가 1918년 함께 세운 것이라 한다. 그러나 처음의 것은 사라지고 현재의 것은 2011년에 시에서 새로 지은 것이다.

권순도에게는 사연이 있다. 부산항이 열렸던 19세기 말의 이야기다. 부산 세관장 헌트의 관사에 권순도는 허드레꾼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열아홉이었던 헌트의 외동딸 리즈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다 붙잡혀 헤어지게 된다.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떠난 리즈는 그해 아들을 낳았다 한다.

리즈는 매달 권순도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들의 소식과 큰 돈을 함께. 권순도는 그 돈으로 포목상을 열어 큰 부자가 된다. 그리고 이재영과 함께 가홍정을 지어 보통학교 아이들이 소풍을 올 적마다 배불리 먹였다 한다. 시간이 흘러 8·15 광복 직후 하와이에서 열린 한국인 동포 모임에 영국인 장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제 어머니는 영국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부산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인 여러분, 행운이 있길 빕니다.”

가홍정을 본다. 멍에(駕)와 무지개(虹)가 나란하다. 화엄경은 말한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홀로인 것이 없고, 모두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고.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양산 IC로 나가 통도사 방면 35번 국도를 타고 간다. 고려제강 양산공장 옆길로 우회전해 들어가 대석리 마을 저수지 지나면 홍룡사, 홍룡폭포로 가는 외길이다. 1.5㎞ 정도 가면 공영 주차장이 있고, 800m 정도 더 가면 산문 앞에도 주차장이 있다. 주차와 입장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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