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인성교육을 더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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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0 08:07  |  수정 2016-06-20 08:07  |  발행일 2016-06-20 제15면
[행복한 교육] 인성교육을 더 하라고?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흉흉하다. 매일 터지는 사건사고에 자꾸 한숨이 는다. 흉흉함은 불안으로 파고든다. ‘여혐’ 운운하면 딸 가진 엄마로서 불안하고, 군대 폭력 하면 아들 가진 엄마로서 불안하고, 학생이 자살하면 교사로서 불안하고, 청년 실업 앞에서는 기성 세대로서 불안하고, 아파트값과 저성장 앞에서는 소비자로서 불안하고, 당리당략의 정치 앞에서는 시민으로서 불안하고, 테러 소식 앞에서는 지구인으로서 불안하다. 내가 위치하는 삶의 맥락마다 불안할 거리가 쌓여 있어 내 삶은 편치 않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화풀이 대상을 찾는 우리 사회의 불안은 수시로 학교를 트집 잡는다. ‘선생들이 뭐하나? 애들 인성 교육 안 시키고 뭐하나? 공부만 시키지 말고 인성을 먼저 가르쳐라. 학생들에게 인성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의 인성을 먼저 테스트하고, 교사의 인성교육역량을 키워라. 인성 교육을 확대해라.’ 이런 말을 들으면 인성이 덜 된 나 같은 교사는 또 열이 난다. 그러나 진짜 열불 나는 일은 이런 소리가 아니라 교육계 내부의 대처방안이다.

인성을 걱정하는 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학교 현장에서는 인성 관련 공문이 늘어난다. 교사와 학생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인성교육 연수의 제목이 하나둘 늘어가고, 학교마다 인성 교육 브랜드를 만들라 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보고하라 한다. 그러다 보니 면대면 이야기를 하던 자율시간과 담임 시간이 인성 강사(?)의 강연과 모니터의 연수로 팔려나간다. 인성이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키우고자 하는 인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합의와 고민의 시간이 사라지고 행사와 통계와 보고서로서의 인성 교육 업무만 늘어가고 있다.

그런 공문을 보다 보면 의문이 든다. ‘그럼 그동안 학교 교육에서는 인성을 저버리고 있었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교육을 하지 않고 무엇을 하였다는 말인가? 그 많은 수업과 동아리 활동, 체험활동, 학생활동은 다 인성과 무관한 것이었던가?’

인성 교육이 따로 존재하려면 그 반대 급부로서의 지식 교육이라는 말이 존재해야 하고, 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 만나는 인성 말고 별도의 인성이 따로 존재해야 한다. 만약 이런 논리라면 가정에서도 밥상머리에서 작심하고 인성을 강조해야 할 것이며, 인성을 위한 별도의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객관식 문제를 풀듯 인성 지식을 묻고, 키를 재듯 얼마나 자랐는가 인성을 측량해야 할 것이다.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이나 품질 향상 3년 프로젝트처럼 시간을 정해주고 달성 목표를 제시하는 현실 앞에서 인성은 자꾸 냉소와 풍자의 대상으로 바뀌어간다. 교사와 학생 모두 지쳐간다.

아이들은 오늘도 학교에 온다. 선생들은 아이들과 매일 만난다. 그래서 학교에는 매일 사람과 사람의 교육이 살아 있다. 인성 교육이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교육이 있을 뿐이다. ‘1+1’을 가르칠 때도 교육이 있고, 그릇된 행동을 지적하고 혼을 낼 때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함께 사탕을 먹으며 왁자하게 웃을 때도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을 얼굴과 얼굴로, 몸 대 몸으로 만나듯, 교육청과 교사도 그렇게 만나고 싶다. 더 이상 지시일변도의 공문과 성과보고서 제출이라는 종이로 만나고 싶지 않다. 교사들도 좀 인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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