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거짓말 솔직히 고백한 문기 이야기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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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7 07:56  |  수정 2016-06-27 07:56  |  발행일 2016-06-27 제18면
갈등에 개입하기보단 스스로 해결하는 힘 길러줘야
20160627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여 마음 속에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나요?”

“선생님, 어두운 이야기 말고 밝은 이야기하면 안 돼요?”

‘갈등’. 아이들은 생각만 해도 힘들고 마음에 부담감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어쩌다 툭 던진 거짓이나 잘못이 줄줄이 엉킬 때가 있습니다. 맑고 밝게 살고 싶지만 칡과 등처럼 꼬여 어디서 풀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갈등 속에 괴로워하며, 길고질긴 고통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풀었을 때의 후련함을 소설가 현덕의 ‘하늘은 맑건만’의 주인공 문기를 통해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계속되는 거짓말…해소엔 용기 필요
어른이 개입하면 확대되는 경우 흔해



문기는 삼촌 집에 얹혀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숙모의 심부름으로 지전 한 장을 받아 고기를 사러 갑니다. 그런데 고깃집 주인이 1원을 10원짜리인 줄로 착각하여 거스름돈을 9원 이상 줍니다. 문기는 고민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 수만이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랬더니 수만이는 일단 숙모에게 잔돈만 줘보고 아무 말 없으면 그냥 나오라고 꾀를 냈는데 때마침 숙모는 잔돈만 확인합니다.

문기가 수만이에게 가 둘은 그동안 사고 싶었던 것들을 사기로 합니다. 평상시에 가지고 싶었던 공, 만년필, 쌍안경, 만화책을 사고 활동사진도 구경하고 군것질도 실컷 합니다. 그리고 환등기를 사서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줄 계획까지 짭니다.

그런데 삼촌이 공과 쌍안경을 발견하고 문기에게 캐묻자 삼촌에게 수만이가 줬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삼촌의 꾸중과 훈계를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문기는 쌍안경과 공을 버리고 남은 돈은 고깃집 안마당에 던져버립니다. 그제서야 속이 후련해진 문기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수만이를 만나 돈을 버렸다고 하자 오히려 환등기를 살 돈을 내놓으라며, 안 그러면 도둑질을 소문내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끙끙거리며 고민을 하던문기는 숙모의 돈을 훔쳐 수만에게 건넸고, 숙모는 돈이 없어진 것을 심부름하는 점순이의 짓으로 오해합니다. 집에서 쫓겨난 점순이의 울음소리에 문기는 밤새 뜬눈으로 지새웁니다.

그날 도덕 시간에 정직에 대해서 배우고나자 더욱 마음이 뜨끔하여 맑은 하늘조차 마음껏 올려다볼 용기가 없습니다. 사실을 고백하려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나옵니다. 삼촌과 숙모가 두려워지고, 무엇보다 점순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 생각에 빠져 걷다가 삼거리에서 문기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 위이고, 근심스러워하는 삼촌의 얼굴을 보자 문기는 마땅한 벌을 받았다며 사실을 삼촌에게 털어놓습니다. 그제서야 거짓말처럼 어둡고 컴컴했던 마음이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지고 맑은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고 합니다.

겁 없이 물건을 살 때 문기는 신났겠지만 삼촌의 꾸중을 듣고 점순이의 울음소리에 밤새 괴로워하는 것은 내면의 양심이 자신의 행동을 화들짝 깨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번의 시도에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문기도 교통사고가 났을 때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의 양심이 벌써 그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려고 노력도 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지 않았습니다. 교통사고의 벌을 받고, 자신을 걱정하는 삼촌의 얼굴을 보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제껏 하늘은 맑건만 그것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던 어둡고 컴컴했던 양심, 죄를 털어놓고서야 비로소 맑은 하늘을 볼 자유를 얻습니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문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 인간관계, 도덕적 가치로 인해 내적, 외적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합니다. 살면서 생기는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문기처럼 용기가 필요합니다. 며칠 동안 힘들어하며 고민했지만 결국 혼자서 용기를 내고 사실대로 말함으로써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

아이들의 삶에 뒤엉킨 갈등을 스스로 풀어내는 힘을 길러주고, 과정을 스스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주 사소한 갈등에 때로 어른들이 개입하면 그것이 더 커지는 경우를 현장에서 많이 경험합니다. 아이들이 때로 힘겨워하고 아파하고 때로 연이은 실수로 갈등의 계곡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힘겨운 터널에서 첨벙거리며 거짓의 수렁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고, 참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주고,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잘못을 하고 그것을 털어놓지 못해 끙끙거리는 아이들 속의 ‘문기’를 조용히 불러내어 스스로 사실을 털어놓고 마음 편히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시원한 자유를 주지 않겠습니까.

혹시 우리 아이들 표정 속에 갈등으로 인해 어두워진 면이 있다면 엉킨 실타래를 풀 듯이 한 올 한 올 갈등을 풀어가도록 그의 내면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조금 기다려주면 어떨까요. 원미옥<대구 구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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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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