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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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1   |  발행일 2016-07-01 제43면   |  수정 2016-07-01
‘무선징악(無善懲惡)’ 구도 속 기상천외 코믹 누아르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전문직 캐릭터 연기의 달인, 김명민이 똥밭에서 뒹구는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영화가 대중의 눈썰미에 영합하는 가장 교활한 예술 장르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입소문을 좇아 휴일 극장을 메운 관객들은 ‘무선징악(無善懲惡)’의 구도 속에 펼쳐지는 기상천외의 코믹 누아르에 넋을 놓고 깔깔대고 있었다.

복마전처럼 얽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아기자기한 틀 속에서 까발리며 리얼리티를 제고하는 동시에,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와 안타고니스트(적대자)의 극명한 대결구도를 조성해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현대소설과 고소설의 기법을 절묘히 버무리는 꼼수를 유감없이 원용하고 있다. 그러나 심청이나 흥부처럼 절대선의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으니 권선징악(勸善懲惡) 아닌 무선징악의 세태극이라 불려야 할 듯하다.

동료 형사 양용수(박혁권)의 모함으로 경찰을 사직하고 검사 출신 변호사 김판수(성동일)의 사무장이 되어야 했던 최필재(김명민)가 결백을 주장하는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범 권순태(김상호)에게 끌려든 건 애초에 용수에 대한 복수 때문이다. 허나 순태를 범인으로 몬 용수의 배후를 파는 과정에서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이 얽혀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는 타락한 사건 브로커였던 필재를 정의의 람보로 변하게 한다. 필재의 팔자에도 없던 변신엔 순태의 중학생 딸 동현(김향기)의 존재가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전과자 아버지를 공유한 동병상련의 심정이 필재의 잠재의식을 아프게 자극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진 않는다.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영리한 해법을 모색한다. 청승맞게 신세타령 할 새가 어디 있냐며 갑질하는 금수저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냅다 지른다. 재벌의 해결사로 염라대왕 직책을 대행하는 박소장(김뇌하), 대해그룹 장학생 출신으로 검찰권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장검사(최병모), 권력의 사주를 받아 순태를 질식시키는 교도관 차교위(오민석), 돈의 노예가 되어 같은 수인에게 칼을 휘두르는 ‘빨간 명찰’(이문식), 이 모든 꼭두각시 악당 뒤에 똬리를 틀고 앉은 악의 축은 바로 대해그룹 창업주의 외동딸이며 실질적인 주인인 ‘여사님’(김영애)이시다.

대놓고 흙수저를 멸시하고 이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치부하며 인간 등급의 변별성을 강변하는 여사님에게 필재가 팔뚝을 걷어붙일 때 관객은 환호한다. 까칠하기 이를 데 없고 존경할 만한 인물은 더더욱 아니건만 날 때린 얄미운 놈을 패주니 고맙고 기특하기만 하다. 이런 관객들의 대리만족에 이바지하기 위해 필재는 똥밭을 뒹굴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악당들을 척결한다. 황당한 설정을 욕하면서도 이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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