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품격을 정하는 건, 神도 과학도 아닌 휴머니즘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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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7   |  발행일 2016-08-27 제16면   |  수정 2016-08-27
삶의 품격에 대하여
인공지능이 인간 이기고
종교로 인한 테러 빈번한
대혼돈의 시대 생존 전략
공유된 인간적 가치 기반
각자의 개별성 존중해야
20160827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동서고금의 사상사를 통틀어 가장 궁극적인 질문이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여기에 응답하고자 했고, 문학과 예술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서양 근대의 인문주의는 이를 ‘휴머니즘’이라는 말로 지칭했다. 이는 삶의 가치를 종교를 통해 구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가능성을 신뢰하여 현세에서 찾고자 하는 지성사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기독교의 유일신 개념은 서양 세계의 윤리와 문화 및 예술을 형성한 중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근대의 세속 사회가 도래했음에도 신은 유전자(밈)인 양 각인되어 남아 있다. 이것은 리처드 도킨스가 21세기에 ‘만들어진 신’을 출간해 무신론을 주장하는 데서도 방증되는 바이다. 오래도록 세계의 질서를 설명했던 종교와 이 종교의 설명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과학의 주도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가.

영국의 철학자이자 열성적 휴머니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와 과학 담론을 거론하며, 이 시대의 의미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그는 현대 과학의 성취를 수용하면서도 삶의 신비로운 측면과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20160827
리처드 노먼 지음/ 석기용 옮김/ 돌베개/ 320쪽/ 1만5천원

휴머니즘은 종교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인간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휴머니즘의 역사를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진화론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창조과학’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신론 주장이 종교라는 인간의 오랜 문화적 전통까지 와해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학이 종교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과학이 삶의 문제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저자가 제안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은 종교의 인간학적 의미를 박탈하고 과학의 지위를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저자의 휴머니즘론은 종교와 과학이 대결하는 국면에서 삶의 의미에 관한 철학의 물음으로, 훌륭한 삶에 관한 윤리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종교 문제로 인한 테러가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고, 한편으론 과학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대전환의 시대에 다시 인간은 무엇이고, 삶의 의미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다. 저자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권위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그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나름의 방법론인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한다.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인문주의적 전통과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과학주의 및 회의주의 사이에서 저자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가지 견해를 모두 경청할 필요가 있으며,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 수 있는 것은 ‘의식’을 지녔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인간은 의식으로 스스로 정신상태를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다. 의식은 매순간 경험을 종합해 고유한 기억을 만들고, 이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점검할 능력을 가진 인간은 ‘신의 명령’이나 종교적 권위에 기대지 않고 ‘공유된 인간적 가치’에 기반해 삶의 윤리를 만들 수 있다.

공유된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삶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이 저자가 제안하는 휴머니즘이다. 따라서 의미 있는 삶이나 삶의 품격이란 유일무이한 자기 삶의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공유된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기에 다른 이들도 공감할 수 있으며, 자기만의 구체적 경험을 통해 실현되므로 유일무이한 독자성을 가진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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