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혼밥&혼술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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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  발행일 2016-09-23 제41면   |  수정 2016-09-23
누가 혼밥·혼술을 두려워하랴
20160923
‘혼밥’ 중인 중년의 남자. 현대 사회에서는 집단의 가치가 힘을 잃고 대신 개인의 선택권이 커지면서 혼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혼밥·혼술이 일반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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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잘 몰랐는데, 어떤 말을 줄여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내게 좀 있는 것 같다. 대구 중구 수창동에 있는 예술발전소를 적잖은 사람들이 ‘예발’이라고 말하는데 듣기에 참 거북하다. 내가 왜 이런가 생각하는데, 아마도 줄임말을 쓰는 사람끼리만 뜻을 나누는 집단문화가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허균의 ‘한정록’에도 실린 혼자놀기
어찌보면 나도 그 방면 도통한 지 오래
그냥 혼자가 편해 골프·외식도 혼자
단체여행땐 틈나면 무리 이탈해 홀로

대인기피증으로 포장된 나의 이기심
자발적 혼밥·혼술‘폐쇄적 행복’만끽



아무튼 젊은 세대에서 부쩍 오가는 신조어 가운데 혼밥과 혼술이 있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술 마시기다. 이 말은 어떠냐고? 당연히 싫지. 비호감도 장르 구분이 있는데, 이건 싫다는 감정보다는 가소롭다는 느낌에 가까운 장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얘들아, 혼자가 편하단 걸 이제야 알았니? 나이 더 먹어 봐”라는 게 내 심정이다.

이렇게 내가 꼰대 근성으로 기울어진 건 맞는데, 그래도 혼자 놀고 혼자 일하는 쪽으로 내가 도통했다는 사실을 주변 가까운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혼자 만능주의가 멋스러움보다는 궁상맞음에 가깝다는 거다. 난 집에서도 종종 ‘혼밥’을 실천 중인데, 혼자 주방 싱크대에 서서 밥을 먹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멀쩡한 식탁을 두고 내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밥통에서 공기에 밥을 담고 내가 먹을 반찬통 하나만 꺼내서 편식하는데, 왠지 시간도 절약되는 것 같고 설거지는 확실히 간단하다. 사람들이 이런 청승을 혼밥이라고 부르진 않을 거다.

아마도 혼밥 혼술 열풍에 일정 부분 기여한 사람이 TV방송에 나오는 백종원일 건데, 그 혼밥과 내 혼밥이 다른 점이 있다.

백 선생은 많은 사람들이 식도락을 즐기게끔 미리 탐색전을 벌이는 것이지만, 난 누구를 우리 아파트 싱크대로 초대할 생각이 없다. 난 그냥 혼자가 편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었는데, 어른들끼리만 아는 사정이 있었을 거다. 친척 다섯 식구가 우리 집에 몇 년 동안 들어와서 같이 산 적이 있었다. 외조부모님과 이모, 사촌누이에 가정부까지 이미 살고 있는 우리 집의 식구가 열네 명으로 늘었다. 꽤나 넓고 방도 많은 집이었지만 난 내 방이 없이 늘 이 방 저 방을 떠돌며 잤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문일 거다. 난 지금도 조용히 집에 있으면 알싸한 희열 같은 게 올라온다.

혼자 반찬거리를 사고, 혼자 레코드 가게와 서점을 가는 게 내 일상이다. 내가 흘려보낸 인생 가운데 10의 1이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치면, 혼자 음반과 책을 고르던 시간은 그보다 더 되었을 거다. 아, 야구를 봐온 시간이 더 길었겠구나. 집에서도 혼자 중계를 보지만, 언젠가는 야구장에 갈 때마다 늘 혼자 앉는 우익수 뒤쪽 외야석에 있다가 TV에 잡힌 적도 있다. 등산도 혼자 하고, 골프도 혼자 친다. 혼자 노는 난이도로 높은 점수가 매겨지는 분야도 어지간히 섭렵했다. 놀이동산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혼자 타는 일은 여러 번 있었고, 안지랑 골목에 혼자 가서 곱창을 구워먹으며 술 마신 적이 한 번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 인생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영화들, ‘사랑의 블랙홀’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성난 황소’ 같은 작품도 혼자 극장에서 봤던 영화다. 반면, 여행 다니는 것을 즐기지 않는데 특히 정해진 일정과 경로에 따라 가야하는 명승지와 박물관, 미술관 순례는 정말이지 끔찍하다(내 직업이 뭐였더라, 실종된 프로 정신). 어쩔 수 없이 끼어 간 단체여행에서 틈이 나면 무리를 이탈해서 혼자 택시 타고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가서 작은 가게나 식당을 찾는다. 그런 건 나쁘지 않다. 딱히 근거 있는 예측은 못 되지만,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은 아닐 것이라서 혼자 그 도시의 평범한 동네를 떠돌아다니게끔, 완전한 자유여행보다는 더 믿을 만한 가이드라인만 잡아주는 여행상품이 늘어날 것 같다. 식당이나 카페는 어떤가. 혼자 오는 손님을 홀대하듯 볼품없는 테이블로 안내하는 가게에 미래는 없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품은 감성은 잘게 썰어져 각각의 상품으로 나뉜다. ‘나홀로족’을 겨냥한 산업의 규모나 항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무덤 속의 마르크스가 본다면, 만국의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국에 죄다 동떨어져 각자의 안위를 꿈꾸는 지금 모습을 기막혀 하겠지만, 시스템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다. 체계 속에 우리 개인은 저마다 자기 위주로 아웅다웅 살아간다.

이러한 패턴에 대해서 나도 한두 번 이런저런 매체에서 의뢰받고 의견을 낸 적이 있다. “현대 사회는 예전과 달리 신앙이나 풍습 같은 큰 가치가 점점 힘을 잃고, 입고 먹고 볼 거리들이 풍요롭게 공급되는 와중에 개인의 선택권이 그만큼 커졌다. 남들이 하는 선택을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낙오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전위(아방가르드)가 되는 셈이다”는 식의 해석.

이제 보니, 다 하나마나 한 이야기였다. 차라리 이 문제는 추상적인 현상 해석보다는 수리적인 모형 분석이 더 낫다. 이를테면 한 명이 모든 걸 결정한 후에 만족하는 편이 둘 또는 여럿이 선택권을 가지는 편보다 시간이나 화폐 비용이 덜 들어가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 여기에 전제되는 기본 상식이 기브 앤 테이크 원칙이다. 내가 사면 너도 사야 되는 당위론이 사실은 필요 이상의 절차를 만든다. 이 모든 순서를 감당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옛날은 그나마 남을 챙기는 체면치레가 있었다. 그게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혼자 놀기의 아방가르드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허균이 지은 ‘한정록(閑情錄)’을 읽으면 안다. 옛날에도 혼자 숨어서 시공을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글로 남으니까 그럴 듯해 보이지, 실은 궁상맞기도 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들 모두는 나완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급이다.

난 이렇게 원고를 쓰고 또 정신없이 주중을 보낸 다음, 1만원을 포켓에 넣고 동네에 가서 영화잡지 한 권과 라면 하나, 복숭아 통조림, 오징어땅콩 과자로 딱 그 돈만큼 쓰고 혼자 집에 파묻히는 게 일요일의 낙이다. 이보다 더 분에 넘치는 비용은 또 그만큼의 즐거움을 주겠지만 이쯤에서 멈추고 싶다. 이런 내 폐쇄적 행복을 방해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반성할 이유는 없다. 뭣보다 대인기피증으로 포장된 내 이기심이 잘못이니까 말이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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