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일본 규슈 사가현 가라쓰<하>-무지개 송림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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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07   |  발행일 2016-10-07 제36면   |  수정 2016-10-07
100만 海松, 솔바람 타고 내륙으로 내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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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쓰 만을 따라 약 5㎞의 무지개 송림이 이어진다. 모두 흑송이며 매미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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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가 솔밭 사이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차량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길이 좁아 길가를 걷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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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에서 바다로 향하는 오솔길. 좁은 문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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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맞은 나무들이 일제히 내륙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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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송림의 공터에 정차되어 있는 복고풍 푸드 버스. 지역 명물인 50년 전통의 가라쓰 버거를 판매한다.

해안 5㎞…日 3대 송림·국가명승지
에도 때 방풍·방사 위해 심기 시작

솔밭 동서 가로지르는 도로도 일품
50년 전통 명물 ‘가라쓰 버거’ 별미


가라쓰 성 아래에서 강이 바다가 된다. 강의 하구를 가로질러 마이즈루(舞鶴)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가라쓰의 동쪽, 동 가라쓰다. 긴 해변이 동쪽으로 둥글게 멀어지는데, 마침내는 후쿠오카에 닿을 것이다. 가늠되는 해안을 따라 길게 소나무 숲이 이어져 있다. 그 모습이 무지개 같아 니지노마쓰바라(虹の松原)라 부른다.

◆특별 명승, 무지개 송림

숙소는 동 가라쓰의 무지개 송림 초입이었다. 창을 열면 곧장 바다였고, 동쪽으로 멀어지는 송림이 절반쯤 보이는 곳이었다. 전날의 비 탓인지 바다 탓인지 숲은 촉촉했다. 수많은 소나무 사이로 길은 끝 모르게 이어졌다. 늪처럼 물컹이는 길이 있고, 떨어져 내린 솔잎에 뒤덮인 길 없는 길도 있었다. 말갛고 선명하지만 으스스한 길도 있고, 밝으나 미로 같은 길도 있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다가오면, 누군가가 걸어 놓은 분홍 리본을 따르면 되었다.

송림의 폭은 400~700m, 길이는 5㎞에 이른다. 총 면적 약 240㏊ 규모로 약 100만 그루의 해송(海松)이 숲을 이루고 있다. 에도시대 초기, 당시의 번주(藩主)였던 히로타카가 새로 논을 개간하기 위해 방풍, 방사, 방조의 목적으로 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가라쓰 성을 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 소나무 숲은 번(藩)의 보호 아래 엄격하게 관리되었고 당시는 니리마쓰바라(二里松原)라 불렸다 한다. 초기에는 1㎞가 채 안 되었던 모양이다. 이후 점점 넓고 길어졌으며 19세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에는 국유림으로 편입되었다. 지금은 일본의 3대 송림 중 하나로 국가 지정 특별명승지로 보호되고 있다.

모든 나무는 흑송이라 한다. 매미가 울지 않는 신비로운 숲이라고도 한다. 숲의 한가운데는 너무나 적막하다. 숲 속에는 군데군데 정글짐이나 미끄럼틀 같은 놀이기구가 조형물처럼 놓여 있다. 무대로 보이는 건축물도 있고 현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도 곳곳에 있다. 원숭이 형상의 그루터기, 문어처럼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도 있다.

◆숲을 달리는 것들

나무 사이로 달리는 차들이 보이는 길도 있다. 숲 속의 길이 굽어져 길과 가까워지면 씽씽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차 소리가 반갑다. 그럴 즈음엔 도로로 나가는 길이 열린다. 도로와 연결되는 길은 여러 곳이다. 어느 곳에서 숲으로 진입해도 좋다. 도롯가에 수도가 있다. 발 씻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발을 씻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도로는 무지개 송림을 동서로 통과한다. 이 길은 일본의 자연 100선, 일본의 명승 100선, 일본의 길 100선 등에 선정되어 있다. 양쪽에서 뻗어 나온 소나무 가지가 터널을 만들고 도로 위에 낮게 드리워진 가지마다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걸려 있다. 도로를 따라 걸어보려 했지만 너무 위험하다. 갓길은 없고 차들은 바쁘게 달린다. 다시 숲으로 진입하는 길을 찾아 잠시 위험을 감수한다.

도롯가 공터에 복고적인 자태의 버스가 정차해 있다. 무지개 송림의 명물 가라쓰 버거가게다. 50년 전통의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특제 빵에 햄, 치즈 등을 넣어 만든 버거로 종류는 총 다섯 가지.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의 수제 데미그라스 소스는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맛이라 한다. 젊은 청년이 혼자 버스를 지키고 있다.

다시 송림으로 들어가 바다를 향해 숲을 가로지른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불고, 바람과 함께 나무들이 나를 향해 질주해 온다. 오랜 시간 바람에 맞선 나무들이 내륙 쪽으로 모조리 기울어져 있다. 수천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전력으로 달리는 것 같다.

◆현해탄 또는 대한해협

소나무들 사이에 바다로 나가는 문이 열려 있다. 문 앞에 서자 물기 먹은 바람이 확 덮쳐와 몸이 휘청거린다. 카메라 렌즈에 물방울이 비처럼 부딪는다. 모래사장에 면한 송림 앞에 나무 울타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숲의 땅을 보호하는 듯하다. 모래사장은 좁다. 해초들이 엉킨 머리카락처럼 흩어져 있고 회반죽으로 찍어 놓은 듯 뽀얀 조개껍데기들이 많다. 무지개 송림의 끝이 저 먼 동쪽에 보이고, 서쪽 끄트머리에는 가라쓰 성이 자그마하게 보인다.

우리나라와 일본 규슈 사이의 바다를 대한해협이라 한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명칭이다. 대마도를 중심으로 부산해협과 쓰시마해협으로 나뉘고, 규슈와 이키 섬 사이의 좁은 해협을 다시 현해탄이라 부른다. 송림 앞바다, 가라쓰 만의 앞바다는 좁게는 현해탄이고 넓게는 대한해협이다. 눈앞의 현해(玄海)는 검지 않았다. 맑지도 푸르지도 않은 풀빛이었다. 이키 섬은 보이지 않았고,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가카라시마(加唐島)도 찾을 수 없었고, 복권에 당첨되게 해 준다는 다카시마(高島)만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가까이 떠 있었다.

한 가족이 해변에 있다. 엄마는 조개를 줍고, 아이는 뛰어다니고, 몸이 젖은 아빠는 아이를 쫓는다. 그들이 한국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확인을 한다. 가라쓰는 전남 여수와 제주 서귀포시와 자매 도시다. 2013년 12월에는 가라쓰 올레도 조성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1592년의 유재가 남아 있다. 멀고도 가까운 일본.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고, 한반도와 하나였다는데.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가라쓰 역에서 무지개 송림까지는 걸어서 40분 이상, 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JR니지노마쓰바라역이나 JR하마자키역에 내리면 바로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 두 역 사이를 달리는 동안 기차는 송림 속이다. 후쿠오카현에서 사가현에 이르는 바다는 모두 현해탄이다. 그 해안선 일대는 모두 현해국정공원(玄海國定公園)에 속해 있고 무지개 송림 외에 수많은 솔밭이 있다. 11월 초에 가라쓰 신사의 가을 축제인 가라쓰 쿤치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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