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진안 구봉산 단풍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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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1   |  발행일 2016-10-21 제37면   |  수정 2016-10-21
낙타 행렬 같은 아홉 봉우리, 가을 깊숙이 줄지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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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정이 있는 4봉과 아찔한 구름다리. 국내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로 100m에 이르며 아찔한 암벽과 수려한 산세를 직접 확인하며 건널 수 있는 스릴있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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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 본 구봉산 2봉에서 8봉까지의 전경. 웅장하고 자유로운 구봉산의 기백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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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게 데크계단이 설치돼 있다.

단풍이 곱기로는, 진안 구봉산도 몇 손가락에 꼽힌다. 하늘을 찌를 듯한 구봉산 아홉 봉은 첨예하고 수려하다. 지금 산문(山門)에 서서 올려다보는 구봉산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아직 가을이 어중간한데도 산은 소리 없이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우뚝우뚝한 아홉 봉이 아련하고 혼몽하다. 오늘은 혼자 가리라. 저 수많은 산객이 흘리는 울긋불긋한 감정에 젖지 않고, 혼자 가리라. 오늘만은 저 미려하고 황홀한 산봉과 단풍 속으로 혼자 걸어가며 자신의 말을 들어보고 몰입하리라. 그래서 저 하늘과 산봉과 단풍과 하나가 되리라.

1봉까지는 가파르다. 자연 몸이 앞으로 기울고,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곧 땀이 흐른다. 숨이 턱에 차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한 발 한 발 느린 걸음에도 이내 1봉에 닿는다. 볼에까지 흐른 땀을 훔친다. 몸을 낮추고 고통스럽게 걸어 온 첫 봉이, 감동으로 둥실 뜬다. 북에는 개마고원 남에는 진안고원이라 하지 않았나. 그 진안고원의 노른자위인 구봉산 1봉에서 보는, 산군의 파노라마는 관자놀이까지 떨리게 한다. 비록 큰 봉은 아니라 하더라도, 산을 오르는 것은 숭고하다. 경건한 자세 없이 어떻게 산을 오를 수 있겠는가. 가을 햇빛 내리는 운무의 허공, 가깝고 먼 산이 우려내는 산 빛깔의 자태는 신비한 수묵화다. 이러한 가을 산을 오르는 것은 마치 성지 순례라는 느낌이 든다.

山門서 1봉까지 가파른 길 헉헉 올라
사방 트인 4봉 정자서 잠시 숨고른 후
국내 最長 100m 구름다리 건널 때면
아찔한 암벽과 수려한 산세에 더 짜릿

5봉 난간전망대는 최적의 포토존 입지
6∼7봉 경사진 계단 올라 안부서 보면
길은 꽃뱀처럼 숲속으로 사라지고 헛헛
1002m 9봉선 지리산 등 山群 물결 경탄

◆4봉 5봉 사이 구름다리와 사방조망

2봉을, 3봉을, 4봉에 오른다. 이제 사방이 탁 터진 4봉의 정자, 구름정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4봉에서 바라보는 용담호의 물그림자가 아슴아슴하다. 그리고 지장산 적상산의 아스라한 산 그리메, 간헐적으로 산 아래를 가리는 운해는 몽환적이다. 자개 거울 앞에서 엄마와 누나가 딱분을 바르면 거울 속에 운해처럼 피어나던 두 얼굴. 저 운해는 무언가 가슴시린 그리움이다.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마을 재를 넘어 오일장 가던 엄마와 누나는 저런 신비의 구름이었다.

5봉으로 가기 위해 구름다리를 건넌다. 구봉산 구름다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무주 탑 보도 현수교 공법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다리다. 자연의 훼손을 가장 줄이며 기존 암반을 이용하여 4개의 앵커리지 구조물로 케이블을 지지하는 아주 독특한 다리다. 국내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로 100m에 이르며 폭은 1.2m이다. 한번에 150명까지 건널 수 있다. 바닥 가운데는 스틸그레이팅을 설치하여 아찔한 암벽과 수려한 산세를 직접 시야로 확인하며 건널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서 짜릿한 스릴감을 만끽한다. 어디선가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구름다리는 모험적인 긴장감을 팽팽하게 한다. 걸음을 뗄 때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경쾌함을 느낀다. 누가 인생을 구름에 비유하였나. 다리를 건너면 포토존의 최적 전망대인 난간전망대가 있다. 사방을 몇 번이고 둘러본다. 용담호 오른 쪽 멀리 백두대간 덕유산 산마루 금이 길게 내달리고 있다. 기후의 온난화로 백두대간의 침엽수림이 고사하고 있다는 뉴스의 자막이 겹쳐진다. 인간은 그 탐욕으로 인해 기어코 지구의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말 것인가. 5봉에서 내려다보는 구름다리는 멋지고 감탄스럽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저 구름다리는 이제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2015년 8월3일 개통하고 난 후 전국에서 몰려오는 탐방객들로, 상양명 주차장이 북새통을 이루고, 심지어 도로에까지 주차하는 주차수난을 겪고 있다. 구름다리는 이제 진안과 구봉산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6봉 7봉 8봉 9봉 트레킹과 비경

6봉에서 7봉까지는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르내리는 활력 넘치는 길이다. 안부에 내려와서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꽃뱀처럼 숲 속으로 사라지고, 형형색색으로 솟은 봉에 물린 하늘이 헛헛하다. 세상의 그 많은 눈물, 그 흔한 이별, 모든 아픔은 비쭉비쭉 솟은 웅장한 산봉에서 흩날린다. 산다는 거, 뭐 그렇게 소란스럽고 아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7봉에서 앙증맞은 다리를 또 건너고, 8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8봉을 내려서면 안부 돈내미재에 닿는다. 여기서 상양명으로 바로 가는 길과 9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8봉까지 경이로운 경치에 흠뻑 빠져, 그냥 젖 먹던 힘까지 용을 써가며 오른 산객은 9봉을 오르는 급경사를 보면서 휴식을 취한다. 만약 상양명으로 바로 간다면 길은 쉽고 천봉암을 보는 재미가 있지만, 호남의 지붕이라 부르는 장쾌한 산군을 다 조망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을 다잡아 9봉으로 오른다. 역시 급경사여서 불과 500m인 산길을 오르며 팥죽 같은 땀을 흘리고, 그냥 ‘헬게이트’ 맛이다. 그러나 고통을 지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없다. 길이 가파를수록 이마에 푸른 정맥은 뛴다. 호흡과 보폭을 맞춘다. 일정한 리듬으로 된 비알 길을 오른다. 부지런히 걷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이른다. 힘들게 보였던 정상이 하나의 큰 환희로 눈앞에 나타난다. 제9봉인 1천2m 천황봉(또는 장군봉)은 단연 우뚝하며, 걸림이 없는 뷰 포인트다. 둘러보면 사방팔방에 산군이 물결처럼 나부낀다.

시선이 서쪽 능선을 따라가면, 복두봉과 칼크미재 운장산이 아삼아삼하다. 북으로 운일암 반일암을 꼬리뼈에 달고 있는 명도봉, 명덕봉이 구름처럼 떠있다. 동으로 용담호와 지장산 적상산 덕유산의 파노라마가 거뭇한 줄 환상이다. 남으로 말의 두 귀를 닮은 마이산과 우측으로 부귀산, 좌측으로 덕태산, 선각산이 가을 후조처럼 날아간다. 더 멀리 지리산이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다. 과연 진안은 호남의 지붕임을 체험한다. 저 요동치는 산맥이 감춘 갖가지 소리가 하늘로 하염없이 날아가고, 내 속에서 활짝 핀 놀라움이 알록달록하게 뜀박질한다.

◆구봉산의 감동과 트레킹의 대미

구봉산은 웅장하고 기백과 자유로움이 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어디쯤 감춰 두었던 소싯적 동화가 있다. 하늘과 산맥이 가물가물 흘러가 자맥질하는 곳에, 영혼은 어슴푸레 실눈을 뜬다. 실크로드를 걷는 단봉낙타의 행렬처럼, 구봉산의 아홉 봉우리가 하늘과 구름 속 단풍로드를 줄지어 간다. 이렇게 산지사방이 훤히 보이는 천상의 언덕에서 나 자신을 훤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감동, 징하다고 해야 하나. 조망에 매료되어 다시 한 번 제자리서 맴돈다. 멀리 멀리서 구봉으로 밀려오는 아름다운 산야의 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누구라도 산정에 오래 머물진 못한다. 환영의 팡파르를 울리던 초목들이 술렁술렁 배웅을 한다. 바랑재로 내려간다. 모두를 저 봉들에 되돌려주고 살아 온 찌꺼기 다 토해버리고 바람의 박자 따라 내려간다. 볼수록 아름다운 구봉의 자태, 망막을 가득 채운 단풍과 산의 수묵화, 쾌락이고 신비다. 바랑재에서 바라보는 9봉의 깎아세운 듯한 암벽이 어지럽다. 가을 해는 눈 홉뜨고 넘어 가는데, 산 그림자 엉거주춤 바랑골에 앉는다. 속세로 가는 걸음은 빨라진다. 높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나는 얼마나 가파른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하늘까지 날아가 구름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러나 저 산정의 단풍 아래에서 긴 잠을 깨고, 지금 상양명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다.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하냐고….” 대체 가장 중한 것은 무엇일까 중얼거려 본다. 숨이 턱턱 막히는 전율의 경험이고, 생의 절정을 작두에서 뛰는 무당처럼 평생을 건너도 다 못 건너는 봉과 봉 사이의 무르녹은 영성을 경험한 하루였다.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모두투어 이사>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상양명 주차장~1·2·3·4봉~구름다리~5·6·7·8봉~돈내미재~9봉~바랑재~상양명 주차장(총 약 6㎞ 6시간 소요) *쉬운 코스: 돈내미재에서~천봉암~상양명 주차장

▶문의: 진안 문화 관광 (063) 430-2114

▶내비게이션 주소 : 전북 진안군 주천면 정주천로 597(진안구봉산 주차장)

▶주위 볼거리: 마이산 탐방코스(프랑스 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만점을 받은 대한민국 최고 명소), 운일암 반일암 탐방코스, 금강 상류 용담호 탐방코스, 진안고원길, 운장산 단풍, 진안홍삼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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