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멀티플렉스여, ‘자백’에 응답하라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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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1   |  발행일 2016-10-21 제43면   |  수정 201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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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액션 추적극’을 표방하며 지난 13일 개봉한 ‘자백’이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0월 극장가에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주말(14~16일) 3만770명의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17일 정오 기준으로 누적관객수 6만명을 돌파했다. 전체 박스오피스에서는 7위를, 다양성영화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배급사 측은 “동시기 개봉작과 비교해 스크린 수와 상영횟수에 있어 10배 이상의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 7위, 좌석 점유율 25.2%를 기록해 더욱 눈길을 끈다”며 “개봉 2주차인 이번 주에는 정치·사회 문제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가장 크게 흥행한 ‘두 개의 문’(7만3천541명)을 넘어 10만 관객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만 영화가 드물지 않게 나오는 요즘이지만 극장용 다큐멘터리가 이같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분명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더구나 상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내용을 담았기에 더욱 그렇다.

‘자백’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라 불리며 2013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정원(국가정보원) 간첩 조작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국정원 간첩 조작사건 다룬 다큐 영화
‘뉴스타파’ 최승호 PD의 감독 데뷔작
4國 넘나들며 40개월 추적 민낯 낱낱이

1만7천여 후원인 4억 스토리펀딩 모금
작품성 인정 불구 멀티플렉스들 외면
그럼에도 개봉 5일 만에 6만 돌파 기염



국정원은 2013년 1월 당시 탈북자 전형을 통해 서울시 공무원에 합격한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며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이런 내용은 당시 한 보수언론의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검찰 역시 그를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우성씨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던 이듬해 2월14일 상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당시 우성씨 변호인 측은 검찰과 법원 출입기자단에게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가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폭로했다. 이에 검찰은 이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진상조사팀을 꾸렸고, 이후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 협조자와 국정원 간부가 자살을 기도하는 등 잡음과 더 큰 의혹이 이어졌다. 조사결과 국정원이 우성씨에 대한 자료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검찰은 국정원 간부 일부만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성씨는 지난해 10월 간첩 혐의 무죄가 확정됐다. 영화는 한국, 중국, 일본, 태국 4개국을 넘나들며 무려 40개월간의 추적 끝에 이 간첩 조작 사건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준다.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하의 국가 정보기관’으로 알려진 국정원은 어떤 곳인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창설된 중앙정보부가 시작이었다. 이것이 1981년 전두환의 5공화국 출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999년 국정원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초대부장을 맡았던 중앙정보부는 ‘반혁명세력에 대한 효과적 대처’를 목적으로 삼았다. 이후 1979년 10·26 사태로 인해 안기부로 명칭이 바뀐 것인데, 당시 조직-인력-예산의 비공개 하에 ‘반인권기관’이라는 오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안기부는 1999년 국정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대국민 이미지 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부훈을 과거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 ‘자백’을 본 관객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할 것이다.

검사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에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관여하기도 했던 김기춘 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그는 유신 후반기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으로 있으면서 ‘학원 간첩단 침투 사건’ 같은 수많은 용공 간첩 조작 사건을 기획한 의혹을 받고 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집권 당시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그는 2009년부터 4년 넘게 국정원장으로 있으면서 제18대 대선 당시 국정원 소속 심리정보국 요원에게 인터넷 댓글을 달게 한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으로 검찰에 의해 전격 기소되었다. 이들이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 한국에 온 유우성·유가려씨 남매에게,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다 자살한 탈북자 한준식씨에게,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으로 지목받은 홍강철씨에게, 재일동포 간첩 사건으로 중앙정보국에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정신병까지 앓게 된 김승효씨에게 저지른 죄를 우리는 가만히 두고 봐야만 할까. 이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자백’을 연출한 최승호 감독은 대구와도 인연이 깊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구에서 성장한 그는 경북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MBC에 입사했다. 시사교양국 PD로 1995년 ‘PD수첩’에 합류했다. 2005년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과 2006년 ‘줄기세포 신화의 진실’을 잇따라 방송했다. 2010년 ‘검사와 스폰서’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2011년 ‘4대강, 수심 6m의 비밀’로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하지만 이 방송을 끝으로 ‘PD수첩’을 떠나야 했다. 2012년 7월 파업 참여를 이유로 MBC에서 해고되었고, 2013년 자신처럼 해고된 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자백’의 제작사이기도 한 ‘뉴스타파’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로 “정권의 눈치를 보는 기존 언론의 뉴스를 타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16년에는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 ‘참혹한 세월, 국가의 거짓말’로 시사다큐부문 한국PD대상을 받기도 했다.

‘자백’ 역시 멀티플렉스 개봉을 위해 1만7천261명의 후원인이 뜻을 모았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스토리펀딩을 오픈해 80일 동안 기존 목표의 2배가 넘는 4억3천427만6천원을 모금했다.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과 넷팩상을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흥행성도 검증받았다. 그런데 멀티플렉스들은 ‘자백’에 상영관을 내주지 않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인가.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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