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금봉농원 김성태·최순자씨

  • 황준오
  • |
  • 입력 2017-02-25 07:30  |  수정 2017-03-06 09:30  |  발행일 2017-02-25 제8면
GAP 관련 인증만 4가지…오지의 부부 ‘사과달인’
20170225
한겨울이지만 사과나무 가지솎기 작업을 하고 있는 김성태·최순자씨 부부.
조금만 힘들어도 견디지 못하고 작은 다툼에 쉽게 이별을 선택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부부가 산골 오지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봉화읍에서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차로 20여분을 달려 봉화군 봉성면 금봉리 사과밭에 도착했다. 한겨울이지만 2만3천여㎡ 드넓은 사과밭에서 한 부부가 구슬땀을 흘리며 가지솎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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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한결같이 사과농사
고품질생산 위해 발품팔며 공부
‘경북 능금증산’우수상도 받아
매출증가로 현재 2억원 판매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농사 지을 것”


금봉농원 대표 김성태(59)·최순자씨(54) 부부는 평생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농사만 지어온 ‘인생의 동반자’다. 김씨 부부는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어디 내세울 만한 게 하나 없는데 먼 길 오게 해서 송구스럽다”며 말을 건넸다. ‘삶이 다할 때까지 지금처럼 살아가리라’고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자리에서 지금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부부의 미소에서 향(香)이 났다.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번개 몇 개를 담아 비로소 빨갛게 익은 사과 같다고나 할까. 여느 부모처럼 오로지 아이들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산다는 김씨 부부가 지나온 세월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40여년 전 김씨는 아버지와 함께 사과농사를 시작했다. 가난했던 집안 형편으로 학교 공부보다 일을 더 많이 해야만 했던 김씨는 “그때 아버지 밑에서 사과를 심고 길렀던 것이 지금까지 천직이 되어버렸다”며 “일찍이 어머니의 병수발을 드느라 집안일을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장 아닌 가장이 됐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아내 최씨를 만난 이후 김씨는 더욱 열심히 사과농사에 매달렸지만,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초기 이들 부부는 고품질 사과 생산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마땅한 교육기관이 없어 애를 태웠다. 할 수 없이 오랫동안 농사를 지었거나 대규모로 농사짓는 곳을 찾아가 발품을 팔아가며 사과에 대해 배웠다. 하지만 빚만 늘어나고 삶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꼭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지만 참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아내가 남의 속옷을 기워가면서 푼돈을 벌고,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김씨가 갑자기 아내 최씨를 바라보더니 그때가 생각났는지 눈물을 훔쳤다.

사과농사를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지 30여년. 한결같이 좋은 사과 생산에 전념한 부부는 이제 ‘사과의 달인’이 됐다. 그동안 GAP인증과 글로벌GAP인증 등 네 가지 인증도 받았으며, 1994년에는 봉화에서 처음으로 경북능금 증산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매출증가로 이어지면서 현재는 연 2억여원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사과농사가 김씨 부부에게 부와 명예라는 두 가지 값진 훈장을 붙여준 것이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김씨 부부에게는 힘들고 고달픈 일들이 적지 않았지만 서로가 버팀목이 되면서 힘든 생활을 모두 이겨냈다. 이들에게 강한 정신력과 건강한 몸을 갖게 해준 것은 천직으로 알고 함께한 사과농사다. 그렇기에 부부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지금껏 그래왔듯이 사과와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김씨는 봉화사과가 전국적으로 좋은 품질로 인정받는 데에는 지리·기후 덕이 크다고 했다. 특히 봉성면은 해발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커서 타 지역 사과보다 맛과 색이 좋다고 자랑했다. 또 배수가 잘되는 토질을 갖고 있어 여름 홍로와 겨울 부사를 재배하기에 최적지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사과농사 기술은 잔기술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제는 살 만해졌다고 할 수 있는 이 부부에게 가장 미안하면서 고마운 존재는 아이들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기에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이들에게 생일잔치, 돌잔치 한 번 제대로 못해준 그 시절이 마음 아프고 미안하다”며 “이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밝고 맑게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자신들이 피땀 흘려 일궈온 과수원을 아이들이 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김씨는 “특별한 꿈은 없는데, 아들이 과수원을 이어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씨가 “그것도 자기가 싫으면 어쩔 수 없다”고 하자,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김씨는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은 모두 한가지라고 했다.

“땀 흘려 노력해 농사를 짓는 만큼만이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으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글·사진=봉화 황준오기자 joon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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