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네 (아)저씨네] 이기적인 엄마가 되라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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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4   |  발행일 2017-03-24 제37면   |  수정 2017-03-24
[(아)줌마네 (아)저씨네] 이기적인 엄마가 되라

지난번 칼럼에서 ‘맘충’이란 말을 들은 후배의 이야기를 썼다. 애를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데도 다른 이들로부터는 어린아이를 공공장소 등에 아무 생각없이 데리고 다니는 엄마라는 비하의 말을 들어야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물론 엄마가 된 이상 정성을 다해 자녀를 잘 키워야 한다. 남편이 육아에 도움을 주든지 안 주든지, 여기에 상관하지 않고 엄마로서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한다. 100% 동의한다.

하지만 엄마들이 육아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자녀에게만 매달리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의 말만 던지고 싶지는 않다. 엄마들은 흔히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아이에게만 매달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것이고, 이래야만 제대로 엄마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가며 적극적 사랑공세를 펴지만 과연 자녀는 이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

엄마의 넘치는 사랑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받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만족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애정공세를 편 엄마와 그 대상이 된 자녀 중 누가 더 만족감을 가질까. 엄마가 준 사랑의 크기만큼 과연 자녀는 만족감을 느낄까. 잘 생각해보면 만족스러운 기분을 가진 것은 자녀이기보다 엄마일 때가 오히려 더 많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가 잘 되라고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지극정성으로 돌봐준다. 그러면 엄마는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믿고 만족스러운 느낌을 가진다.

그렇다면 자녀는 어떨까. 엄마 입장에서는 철저히 자기 일을 잘한 훌륭한 엄마일 수 있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과도한 간섭과 부담이 될 수 있다. 스스로 공부하고 있는데 자꾸 잔소리 하는 엄마, 공부 말고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공부만 강요하는 엄마가 된다.

그래서 과도한 엄마의 사랑에 짜증을 내거나 항의를 하면 엄마는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데,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느냐”며 역공세를 편다. 이렇게 저렇게 서로 간의 투정과 불평이 이어지다보면 엄마에게 자녀는 ‘말 안 듣는 아이’가 되고 자녀에게 엄마는 ‘강압적인 엄마’가 되고 만다.

아들 둘을 둔 나는 큰애가 고3일 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을 당했다. 재수는 꿈도 안꿨는데 아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상상도 못한 점수를 받아온 것이었다. 나는 시험을 치고 나오며 얼굴이 일그러진 아들에게 시험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들이 바로 재수를 한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재수를 한 아이는 그 이듬해 자신이 목표한 대학에 들어갔다. 합격통지서를 받은 뒤 아이가 내게 말했다.

“어머니 감사해요. 다른 엄마들처럼 공부하라고 하지 않고, 새벽까지 제 뒤에 앉아서 지켜보지 않아서….”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았다. 늘 직장생활 때문에 바빠서 아들이 고3일 때 학교 앞에 데리러 간 적이 거의 없었으며 초저녁 잠이 많아 늘 아이보다 일찍 잤다. 그렇게 내가 편한 대로 한 것이 아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때로는 엄마도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과도한 사랑이 오히려 아이에게 부담이 되고 부모와 자녀 사이를 벌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애정은 충분히 가지되 그 표현은 때때로 자제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더 가슴 깊은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제부터는 때때로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보자. 봐도 못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해주면서 엄마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이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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