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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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5 08:28  |  수정 2017-05-15 08:28  |  발행일 2017-05-15 제24면
[문화산책] 깨달음
서승은 <한국화가>

나는 시골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볏짚으로 집을 지어 놀고, 밭에 있는 파를 구워 먹고, 앞산에 올라가 칡을 캐어 먹기도 했다. 논둑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잔잔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연을 날렸고, 봄에는 산나물을 캐어 먹었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못에서 동네 오빠들과 볼이 빨개지도록 썰매를 탔다. 물론 지금의 그곳은 대구에서 최고의 카페들과 공원이 들어선 땅값 비싼 도심 속 공간이 되었다.

그 시절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흥미로웠고,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지만, 유일하게 싫었던 것이 곤충이었다. 나와 다른 여러 개의 다리들, 외계인 같은 눈을 가진 얼굴, 수많은 개체들의 집단 속 버글거림. 자연에서 그들과 마주치면, 무의식적인 감각으로 즉각 반응하며 잔인하게 밟아 죽였던 기억이 난다. 미안하게도 생명과 죽음이란 것을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라 죄책감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자연 속 모든 것을 좋아하던 나인데, 그때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것은 곤충과의 첫 대면 때, 내면 속에서 싹튼 막연한 공포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격이었던 것 같다. 나와 다름이 가져다준 그 괴기한 외모의 동물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면 속 그 공포심을 깨뜨려 준 것 역시 곤충이다. 어느 날, 나의 손등에 날아든 무당벌레 한 마리. 빨간 바탕색에 검은 물방울 무늬를 가진 무당벌레의 등은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 그 세련된 색감 때문에 첫눈에 반하게 된 곤충. 손 위에서 한참 동안을 노니는 모습에 처음으로 곤충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후로 모든 곤충이 더는 무섭지 않게 되었다.

사랑하는 곤충이 생긴 후, 나는 무서워했던 곤충들 앞에서도 비로소 당당해질 수 있었고, 오히려 그들을 더욱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훗날 나의 작업에 소중한 기반이 될 수 있었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상대를 이해하게 만들고, 이해하게 되면 선입견과 함께 두려움이나 경계심처럼 나를 스스로 가둬버리는 벽이 사라진다는 것을 작은 무당벌레 한 마리가 알게 해줬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깨달음이라는 것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처럼, 학창 시절의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그런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이다. 참된 스승이란 사랑의 마음으로 작은 깨달음 하나 전해줄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하며, 그런 고마운 스승이 이 사회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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