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박열’ 타이틀롤 이제훈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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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7   |  발행일 2017-07-07 제43면   |  수정 2017-09-05
“극중 단식투쟁 과정 찍은 한달 내내 실제로 안 먹었다”
20170707

이제훈만큼 야누스적 매력을 지닌 이도 드물다. 어둠과 밝음, 기쁨과 슬픔, 선악, 부드러움과 거친 남성미, 능숙함과 어리숙함, 소년과 남성적 매력을 한데 끌어안고 있다. 말갛고 하얀 피부와 날선 콧날과 눈빛에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지닌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장기를 매 작품 십분 활용해 왔다.

돌이켜 보면 독립영화 ‘파수꾼’(감독 윤성현)부터 그러했다. 이제훈이란 배우의 등장은 충무로에 강렬한 충격을 안겼다. 자신에게 등 돌린 친구에게 상처받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고등학생 기태를 연기한 이 27세의 배우는 미세한 상처가 불러일으킨 균열과 파국을 서서히, 그리고 섬세하게 그렸다. 새로운 피의 수혈이 시급했던 충무로에 비주얼과 연기력을 두루 갖춘 이제훈의 등장은 단비와 같았다.

‘파수꾼’을 시작으로 한 이제훈의 발견은 영화 ‘고지전’과 ‘건축학개론’에 접어들며 흥행성까지 담보했다. ‘파수꾼’과 ‘고지전’이 이제훈의 거친 면모를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이라면, ‘건축학개론’은 자연인 이제훈의 모습을 포착한 경우다. 첫사랑 서연에게 제대로 된 고백 한 번 못하는 순진한 대학생 승민은 평범하고 재미없는 이제훈의 실제 모습과 제법 닮아 있다. 이 영화는 전국 관객 410만명을 동원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제훈의 몸값도 덩달아 올랐다.


제대 후 한층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
“내 연기에 내가 동의하느냐가 중요
감독·스태프와 소통하며 해답 찾아”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서 주연
“일본어 대사 압박에 악몽 꾸기 일쑤
격정적 법정 장면 다 찍고 나선 오열”

매 작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연기
“‘박열’은 온 마음 담아 선택한 작품
日語 대사 자동으로 나올 정도로 연습”



전성기 이후 그는 ‘점쟁이들’ ‘패션왕’ ‘분노의 윤리학’ ‘파파로티’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그야말로 ‘열일’했지만 대중과 평단의 평가 모두 가혹했다. 충무로의 샛별은 어디 가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해 보이는 이제훈의 모습만 남았다. 그는 아쉬운 성적표를 뒤로하고 2010년 군에 입대했다. 입대 며칠 전까지 촬영했다.

전역 후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드라마 ‘비밀의 문’ ‘시그널’ ‘내일 그대와’ 등 장르면에서도 다채롭다. 종종 때아닌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연기할 때 납득이 안 되면 어색해요. 스스로 동의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감독, 스태프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해답을 찾습니다. 내 연기는 내 생각 안에서 움직이는 건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 생각의 영역이 확장됩니다. 전 스태프들에게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연기 고민을 털어놔요. 언제든 지적해달라고 하죠.”

이제훈은 지난 6월29일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박열’(감독 이준익)로 다시 한 번 재평가받고 있다. ‘박열’은 일본에 맞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후미코(최희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왕의 남자’ ‘사도’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화젯거리로 항일운동하던 박열을 대역사건 배후로 지목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일본제국을 뒤흔든 불량 청년 박열 역을 맡아 거칠면서도 여유 넘치는 인물을 소화했다. 말 안 듣는 조선인 중 가장 말 안 듣는 골 때리는 인물을 날것 그대로 표현했다. 대사 대부분을 일본어로 소화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파수꾼’ ‘고지전’에서 보여준 바 있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반항심을 오랜만에 스크린에 풀어냈다. 어디 그뿐인가. 촬영 기간 내내 단식 투혼을 하며 영화의 진정성에 한걸음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그의 영화를 향한 열정은 꺾을 수 없었다. 얼굴은 점점 퀭해지고, 일본어 대사의 압박에 자다가 악몽 꾸기 일쑤. 영화적 에너지가 들끓는 법정 장면을 다 찍고 나서는 오열하기도 했단다.

“극중 박열이 단식 투쟁하는 과정도 실제로 안 먹고 촬영했어요. 촬영 기간이 한달이었는데, 그동안 쌀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밥차는 배우들에게 엄청난 위로인데, 저에겐 오히려 괴로운 존재였죠. 한달간 밥을 안 먹으니 얼굴이 퀭해졌습니다. 6㎏ 정도 빠졌습니다. 막판엔 제 얼굴을 보며 스스로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주변에선 충분히 말랐다고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박열이라는 인물에 최대한 가까이 도달하고자 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아예 없어지고 박열이 겪은 고통과 삶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22년2개월간 박열이 겪은 감옥생활을 생각하니 죄송하고 숙연했습니다.”

박열이 일본 제국주의에 목숨까지 내놓았던 나이는 불과 22세. 이제훈은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으로 들끓던 시기다. 이제훈은 2003년 고려대 생명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연기를 향한 열정을 저버리지 못했다.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휴학을 한 후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걸었다.

어릴 때부터 조용했지만 끼는 있는 아이였다. 학창시절 댄스 동아리 회원이었고, 수련회 장기자랑 시간이 되면 무대 위에 곧잘 섰다.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자연스럽게 연기에도 관심을 갖게 했다. 25세, 그는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입학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슬럼프와 인생 전환점을 동시에 맞이했다.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죠. 친구나 주변 친척 중에 연예계 쪽에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죠. 25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을 때 또래들은 모두 군대 전역해서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였죠. 불안했습니다. 연기를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효도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죠.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도 컸습니다. 불안했기에 더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 한 것 같아요. 힘든 시기였지만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후회 없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시기가 지금도 제 연기의 뿌리가 된 것 같습니다.”

만약 이제훈이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어떤 청년이었을까. 그는 “적어도 일제 앞잡이가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중과 공감하며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배우로서의 기질이 식민지 시대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박열의 성격과 닮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주입식으로 배운 일제 사상에도, 박열은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생각과 꿈을 펼쳤으니 대단하죠. 제가 만약 그 시대에 살았으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의문이 들어요. 다만, 박열을 연기하는 입장에서 저와 비슷한 점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가진 기질적인 부분과 닮아 있는 면이 있긴 해요.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안기고 싶은 마음으로 활동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제의 비위와 입맛에 맞춰 나를 표현하거나 활용하게 두진 않았을 거예요. 일본 앞잡이가 되진 않았을 거예요. 항일운동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제훈은 스스로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취미도 조용히 음악 듣는 일. 최근엔 비와이, 볼빨간사춘기, 재지팩트에게 빠졌다며 스마트폰 속 음악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저는 재미없는 편이에요. 오죽하면 친구들이 ‘진지충’(매사 진지한 사람을 놀리는 인터넷 은어)이라고 놀린다니까요. 실없는 농담을 하다가도 어느새 진지해지니까. 예전엔 정말 심했는데 요즘엔 조금 나아졌습니다. 특히 인터뷰나 기자회견 같은 자리에서는 여유 없고 경직되는 편이에요. 땀도 삐질삐질 나고. 이제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기대감도 생겨났고요. 내 안에만 나를 가둬두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려고 노력 중이에요. 진지충 좀 탈피하고 싶습니다.”

배우와 연기를 향한 열정 탓에 연애도 장기 휴업 중인 이제훈이다. 마지막 썸은 5년 전.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간절했어요. 기회비용으로 써왔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연기에만 집중했습니다. 군대 전역하고 나서는 자리잡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요. 연애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죠. 연애 안 한 지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어요. 이제 와 소개팅을 부탁하기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만나 달라 하기도 부담스러운 입장이 됐어요. 첫눈에 반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천천히 알아가며 발전할 수 있는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 같은 사람이 좋아요.”

“저는 매 작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연기를 합니다. 벼랑 끝에 있단 기분으로 말이에요. 이 작품으로 소명을 다하지 않으면 외면 받을 수 있고, 내 위치가 대체될 수 있단 걱정이 들어요. 그래서 더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게 되죠. ‘박열’은 온 마음을 담아 선택하고 만든 작품이에요. 캐릭터의 무게 때문에 괴롭고 힘들고 두려운 순간이 있었지만 자부심은 큽니다. 하루는 일본어 대사를 까먹는 악몽에 울면서 깬 적이 있어요. 스위치만 누르면 일본어 대사가 자동으로 나올 정도로 연습했죠. 실제 주인공처럼 촬영 한 달 반 가까이 밥을 먹지 않았고요. 이렇게라도 해야 실제 인물의 진심,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나 감독님, 스태프 모두 진심을 다해 찍은 영화입니다.”

글=TV리포트 김수정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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