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블라인드 채용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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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7   |  발행일 2017-07-17 제31면   |  수정 2017-07-17

정부가 모든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전격 도입했다. 공공기관 입사지원서에 출신지역, 신체조건, 학력을 기재하거나 사진을 부착하는 것이 금지된다. 면접단계에서는 면접관이 응시자의 인적사항에 대해 물어서는 안되고, 직무 관련 질문만 허용하도록 했다. 이달 중 332개 모든 공공기관에 가이드라인 배포 뒤 전면 시행하고, 149개 지방공기업도 다음달부터 시행한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지만 외국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제도다. 서구 많은 국가에서는 입사지원서에 얼굴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부모 직업이 뭐고,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같은 개인 가족사항란도 없다. 키가 얼마며, 몸무게가 얼마며 같은 것도 없다. 결혼 유무, 성(性)적 취향도 당연히 물어보지 않는다.

이런 블라인드 채용 배경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차별금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재를 채용하면서 잘생긴 사람을 선호하고, 뚱뚱한 사람보다 날씬하고 키가 훤칠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사회의 기본틀을 흔드는 매우 불공정한 처사라는 인식이 서구사회에 깔려 있다. 마찬가지로 부모나 친인척이 국가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채용 시 우대하고, 이혼가정보다는 정상가정의 자녀를 우대하고, 유색인보다는 금발의 백인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면 아마 그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는 서구사회의 중요한 가치체계인 개인주의, 개인평등사상에 어긋나고, 혈통이나 가계(家系), 즉 1차적이고 태생적인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민주사회의 가치신념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미(美)의 기준이 하나일 수 없고, 피부색에 따른 우열은 없으며, 부모와 관계없이 자신이 가진 능력이 중요하고, 동성애든 아니든 업무수행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방침은 늦은 감이 있지만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 생각된다. 고질적인 대학 서열화로 서러움을 받아온 지방대 출신들이 유리할 거라 내다보는 전망이 많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다.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키다 작다고, 이혼가정의 자녀라서, 자랑할 만한 부모를 두지 못해서 남들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기(氣)도 펴 보지도 못하고 눈치만 봐온 많은 사람이 당당히 공공기관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기를 기대한다. 박종문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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