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연극과 술문화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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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9 07:51  |  수정 2017-09-05 11:39  |  발행일 2017-07-19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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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극단 에테르의 꿈 대표>

누군가가 연극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술’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대단하더라”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렇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술을 좋아한다. 연극은 그리스 시대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는 축제에서 비롯되었는데, 디오니소스 신은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이며, 다산과 풍요, 기쁨과 광란, 황홀경의 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연극하는 사람들은 술을 참 좋아한다’는 말이 따라다닌다.

우리나라 사람들 또한 유독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케이블 채널에서 술을 마시며 토크하는 프로그램까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술은 이미 우리 생활에 와닿은 지 오래다. 가족들 간의 술자리, 회식·친목 도모를 위한 술자리, 여행을 떠나 마시는 술자리.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술자리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다. 작품을 하기 위해 모인 배우들과 스태프가 함께하는 시파티부터 연습이 진행되면서 각자의 캐릭터나 이야기에 대한 소통이 잘 안 풀릴 때 가지는 술자리들(중간파티라고도 한다), 공연을 마치고 진행하는 쫑파티까지. 그 자리에서는 여러 대화들이 오간다. 연습은 어땠으며, 그 공연 땐 어땠고, 작업 중 서로 어떤 오해를 하고 있었으며, 그 오해는 왜 빚어진 것인가 등에 대한 얘기들. 스스로 생각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얘기들. 이렇게 보면 그런 얘기들이 오가는 자리 자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때로는 술이 정도를 넘어서면서 함께하는 그 자리에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감정에 취해 서로 간의 오해가 더욱 짙어지거나, 서로 간의 소통 자체가 매우 힘들어질 정도의 상태가 된다. 사실 전반적으로 술자리는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돌이켜 보면 흐지부지한 마무리, 문제가 되는 마무리를 겪고 다음 날이 되면 일말의 추억거리만 남겨놓게 되는 일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연극 현장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보이기도 한다.

술이 있지 않아도 자리만 충분히 마련된다면 서로 간의 진지한 얘기와 토론은 충분히 나눌 수 있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는 목적을 잃지 않고 마무리 또한 보람차게 이루어낼 수 있다. 실제 내가 겪은 일부 모임들은 그 자리에 술이 없는데도 소통의 힘이 충분히 발현되고, 함께하는 즐거움 또한 느껴졌다. 이렇듯 연극 작업 현장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필요한 것은 진정한 소통을 위한 ‘자리’다. 개인적으로 술을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나 ‘술자리’라는 단어에서 ‘술’보다 ‘자리’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되도록 우리 모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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