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모던걸은 왜 ‘못된 걸’이 되었나

  • 최미애
  • |
  • 입력 2017-08-19   |  발행일 2017-08-19 제16면   |  수정 2017-08-19
불량 소녀들
경성 모던걸은 왜 ‘못된 걸’이 되었나
한민주 지음/ 휴머니스트/492쪽/ 2만4천원

단발머리에 양장을 입고, 짙은 립스틱에 여우털 목도리를 두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이 있었다. 1930년대 경성에 등장했던 ‘모던걸’이다. 모던걸은 ‘못된껄’ ‘뺏껄’, 즉 ‘불량 소녀’로 번역됐다. 식민지 조선에서 당시 근대의 산물을 고스란히 흡수했던 이들을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일탈적인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직업을 가질 때도 불량소녀, 쇼핑을 해도 불량소녀, 여가를 즐겨도 불량소녀였다. 아니,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뭘 해도 불량 소녀로 봤다.

근대 문화사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경성의 모던걸을 다룬다. 저자는 큰 변화를 맞이했던 경성에서 매체들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살핀다. 그는 근대여성을 설명하는 ‘불량소녀’라는 이미지를 결국 미디어가 만들어낸 산물로 봤다. 부제도 ‘스펙터클 경성에서 모던걸은 왜 못된 걸이 되었나’이다. 저자는 “미디어에 등장하는 모던걸은 유행의 선도자로서 늘 사치품으로 몸을 치장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모던걸이 살았고, 여성을 모던걸로 바뀌게 했던 ‘스펙터클’ 경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1920~30년대 경성은 당시로선 시각 문화의 최정점을 찍는다. 전등과 네온등이 거리를 메웠고,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며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고층 백화점이 등장했다. 대규모 박람회도 열리면서 경성은 늘 볼거리가 많은 도시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는 도시의 볼거리에 주목했고, 그중 가장 관심이 쏟아졌던 볼거리는 모던걸이었다.

경성 모던걸은 왜 ‘못된 걸’이 되었나
거리로 나온 모던걸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1927년 ‘별건곤’ 1월호의 학생만화는 남학교 담장 너머로 자신에게 쏠린 남학생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휴머니스트 제공>

이들을 ‘골칫거리’로 바라보는 데는 기존의 가부장적인 사회를 옹호하는 이들의 불편한 마음이 반영됐다. 매체에서도 모던걸에 대한 고발이 쏟아져 나왔다. 저자는 “가부장적 질서에 반발하거나 가출 여성 자신이 충동에 못 이기거나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려는 등의 다양한 요인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가출의 요인을 가출 여성 개인의 유약한 심리에서 찾으려 하면서 그녀들을 유혹에 약한 존재로 형상화했다”고 지적한다.

모던걸의 등장으로 시작된 논의는 당시 신여성상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레뷰걸, 마네킹걸, 애활(愛活) 소녀, 스포츠걸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디어가 ‘불량성’이라는 단어로 이들을 설명했던 방식을 서술한다. 이들은 대중을 위한 ‘장식’으로 치부됐다. 미디어는 ‘여학교 순례’ ‘기숙사 순례’ ‘운동부 순례’ ‘직업여성 순례’와 같은 순례기를 보여주며, 신여성을 구경꾼의 시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들도 동참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물산장려운동은 결국 모던걸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신여성들이 유행을 따라 소비하는 사치를 한다고 보고, 이들을 물산장려운동의 주요 대상이자 혁신 주체로 간주한 것이다. 식민지시기 여학교나 여학교 동창회의 연중행사 중 하나였던 바자회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1928년 조선일보에서 바자회를 취재한 기사를 언급하며 “여학생은 사치와 실용 사이에서 계속 비난과 관리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신문기사, 광고와 같은 다양한 시각 자료는 흥미롭다. 구체적으로 당시 여성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시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좀 더 객관적으로 모던걸을 바라본 자료가 없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저자도 “신문과 잡지 대부분이 남성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진 기사가 많고, 실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명확히 짚어낼 만한 자료는 사실 많지 않다”고 말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