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쏙쏙 인성쑥쑥] 나라의 말소리(國之語音)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0-09 07:43  |  수정 2017-10-09 07:43  |  발행일 2017-10-09 제18면
[고전쏙쏙 인성쑥쑥] 나라의 말소리(國之語音)

유치원 다니는 손자가 “할아버지 끝말잇기 놀이를 해요” 합니다. ‘티셔츠’ 하고는 그냥 막 웃습니다. ‘츠’로 시작하는 한글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손자의 “제가 이겼어요” 하고 깔깔거리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세종대왕은 어린 시절에 시구 잇기(聯句)를 잘하였다고 합니다. 태종실록엔 충녕대군(세종)이 시구 잇기 시합에서 어려운 경전의 구절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서 자주 데리고 다녔다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연려실기술에도 ‘아버지(태종)는 연회를 할 때면 나를 불러 손님들과 시구 잇기를 시키셨다. 아버지는 “내가 손님과 더불어 즐거웠는데 너(충녕대군)의 힘이 컸다”며 칭찬하시곤 했다’고 합니다.

서재 책꽂이에 있는 국어대사전을 펼쳤습니다. 사전에는 타동사 ‘츠기너기다’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섭섭히 여기다. 원망스럽게 생각하다’로 의미 해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시언해, 월인석보 등에 나오는 예문이 함께 있었습니다. 아마 훈민정음 창제 당시엔 사용이 많았던 듯합니다. ‘츠다’‘츠르르’도 있었습니다.

인터넷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서 ‘츠기너기다’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나오지 않았습니다. ‘츠르르’는 부사 ‘주르르’로 해석되어 있었습니다. ‘츠르르’가 사전에 방언이라는 해석과는 다릅니다. 사전별로 다른 내용이라 헷갈립니다. 어린 손자는 ‘츠’로 시작하는 낱말들을 소리 내어 외웠습니다.

국어기본법에는 ‘정부는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매년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1926년에 국어학자와 문학자들이 훈민정음 반포 8주갑(480년)을 맞아 음력 9월29일을 ‘가갸날’로 정하였습니다. 학자들은 이 날을 계기로 ‘자기를 찾고, 자기정신에 돌아가자’는 강력한 운동을 펼쳤습니다. 가갸날이 훗날 한글날로 된 것입니다. 오늘은 571돌 한글날입니다.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인 한국어를 말하며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합니다. 세종어제훈민정음에는 ‘나랏말ㅆ`미…’로 시작합니다. ‘나랏말ㅆ`미’는 ‘나라의 말소리’입니다. ‘나라의 말소리’를 한자로는 국지어음(國之語音), 국지음, 국음, 아국어음, 본국어음, 국어 등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 서문에는 세종이 한글을 만든 동기와 목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말에 꼭 맞는 나라의 말소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자주정신, 백성들이 글자를 모르는 고통을 생각하는 애민정신,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한다는 실용정신입니다. 세종실록에도 ‘글 배우는 사람은 문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옥사 다스리는 사람도 그 곡절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에겐 오직 백성만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 생각이 모든 언어가 꿈꾸는 세계 최고의 글자를 만든 것입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훈민정음’인 나라의 말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윤슬처럼 빛나기를 한글날에 채쳐봅니다. 박동규<전 중리초등교장·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