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역 커피를 아시나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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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34면   |  수정 2017-10-13
왜관역 옆 6·25때 지어진 집의 커피숍
광주서 문화운동한 50대 방극만 사장
사랑 찾아 7년前 정착 후 커피쟁이 삶
20171013
2011년 취임, 종일 커피를 내리는 방극만 하루역장.

분도식품을 나오자마자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왜관역 옆 오른쪽 구석에 노숙인처럼 앉아 있는 빈티지 커피집 ‘하루역’으로 갔다. 주인은 역장으로 불린다. 그는 50대 초반의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방극만. 이젠 커피만큼이나 명물로 불린다. 단골들은 딱히 커피 때문에 이 집에 오지 않는다. 빠름공화국에서 ‘느림’을 낚기 위해서 온다.

방 역장은 광주 지역의 유명 문화운동가였다. 그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오보에 주자였다. 2000년에는 크로스오버 앙상블 ‘허브’를 통해 포엠콘서트, 태교음악회 등을 기획했다. 2006년에는 <사>문화터미날을 만든다. 광주 지역의 첫 예술가를 위한 사회적기업이었다. 2016년 문 닫기까지 그는 거기 이사장으로 있었다.

문화사업이란 원래 ‘빚만 남는 블랙비즈니스’라 했다. 그도 결국 빚쟁이로 전락한다. 우연히 광주비엔날레를 보러온 포항 출신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새로운 삶을 위해 전라도를 등지고 경상도로 온다. 아내는 미군부대에서 일을 한다.

한때는 음악이 자신의 존재이유였는데 이제는 커피다. 대구로 가서 2년간 이론과 실기를 배웠다. 커피는 정년이 없을 것 같았다. 5년 정도 시달리면서 커피도 맛있는 하루역이 된다. 그는 참 수더분하다. 웬만한 건 다 받아준다. 왜관 토박이들도 외계인 같은 이 커피쟁이한테 매력을 느낀단다. 속아볼 만큼, 아파볼 만큼 아파본 세월이라 대충 다 품을 수 있었다.

왜관에 정착한 그는 사랑방이 될 만한 공간을 찾았다. 왜관역에서 한 공간을 발견한다. 자장면집, 여관, 국밥집, 구이집 등 무려 17번이나 주인이 바뀐 곳이었다. 그 집은 6·25전쟁 때 지어졌다. 무수한 손때가 지나간 층층 벽지에 눈길이 고정됐다. 그때부터 1주일간 그 공간에 멍하니 앉아 인테리어 구상을 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빈티지 인테리어를 했다. 비용을 줄여야만 했다. 재활용이 답이었다. 일단 하루역 간판을 만들기 위해 주위 상인들에게 하루역이란 글자를 메모지에 쓰도록 했다. 그중 괜찮은 글자를 쪽자해서 아크릴로 파냈다. 고물 영사기, 일제강점기 때 태극기, 바닷가 폐목, 침대 프레임, 버려진 전화기, 주전자 등을 작품으로 반죽했다. 버려진 파라볼라 안테나도 간판으로 만들어 지붕에 박처럼 올려놓았다. 군부대에 놀고 있던 빨간 전화부스도 갖다 놓았다. 핸드드립할 때 사용한 드립페이퍼를 갖고 종이고기도 만들어 주방 앞에 매달아놓았다.

그의 메뉴판은 ‘웃음’을 피워낸다. 그리고 나름 철학도 있다. 미국을 싫어하는 듯 아메리카노도 ‘america NO’라 적어놓았다. 에스프레소는 ‘독한놈’, 아메리카노는 ‘순한놈’, 카페라테는 ‘부드러운놈’, 마키아토는 ‘달달한놈’, 카페모카는 ‘복잡한놈’, 더치커피는 ‘천사의눈물’, 가격대도 좋은놈·더좋은놈·무지좋은놈으로 해학적으로 분류해 놓았다. 그의 집은 아직도 다이얼식 구식 전화기를 사용한다. 실제 거기로 전화가 걸려온다. (054)920-206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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