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캐럴·한국食문화의 만남…‘꿩부대찌개’로 부대찌개사에 한 획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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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35면   |  수정 2017-10-13
■ 푸드로드 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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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쭉하고 매콤한 의정부부대찌개를 새롭게 바꾼 칠곡5미 중 대표격인 꿩부대찌개. 지리처럼 맑으면서도 매콤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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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식보다 조금 거친 식감이 느껴지는 ‘장독대’의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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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과 동고동락한 순대전문점 ‘고궁’의 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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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식당’의 3인방 메뉴인 ‘코돈블루’ ‘시내소’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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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은 산채류, 견과류 등을 축으로 한 ‘신개념 기능성 주먹밥’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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떫으면서 달콤하고 구수한 등겨장. 이젠 일반 식당에서 보기 힘든 추억의 된장을 ‘장독대’에서는 반찬으로 낸다.

캠프캐럴 정문 앞에는 식당가가 없다. 상가는 후문 앞에만 몰려있다. 한미식당을 비롯해 ‘국제식당’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컨츄리’, 치킨집인 ‘써니’ 등이 있고 최근에 ‘후문부대찌개’란 백반집도 가세했다.

한미식당. 실제 상호는‘빅 존스(Big john’s) 레스토랑’. 충남 홍성 출신인 유건동 사장(68)의 매제였던 존 매스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상호다. 독일에서 미군생활을 하다 1979년 대구로 온, 요리감각이 탁월했던 매제는 남구 봉덕동에 식당을 차렸다. 1년 뒤 왜관으로 이전했다. 유 사장이 2대 사장으로 기반을 잡았고 2013년부터 유 사장의 딸 경미씨가 3대 사장으로 가업을 잇고 있다. 아직 초창기 메뉴 그대로다. 한국 기지촌 식당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식당의 대표적 메뉴는 ‘코돈블루(Cordon blue)’와 치즈가 들어간 ‘시내소’. 다들 시내소가 한국말인지 외국말인지 궁금해한다. ‘슈니첼(Schntizel)’을 한국식으로 부르기 좋게 작명한 것. 이 메뉴는 유럽·미국·한국 절충식이고 이게 이 식당의 정체성이다.

코돈블루는 프랑스의 유명한 요리학교 코르동블루가 주최한 요리경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한 독일 셰프의 출품작이다. 워낙 인기가 좋아 체코,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고기를 얇게 두들겨 스모크햄과 모차렐라치즈를 넣어 말아서 튀긴 유럽식 스테이크다. 두툼한 정육을 굽는 미국식과 사뭇 다른 스테이크. 본토에선 송아지 고기를 베이스로 만드는데 여기선 돼지·소고기를 사용한다. 언뜻 치아바타 모양의 함박스테이크 같다. 옆에는 드레싱샐러드와 볶음밥, 완두콩과 콘 등이 깔린다. 84년쯤 볶음밥을 내기 전에는 미국식인 으깬 감자와 케첩이 들어간 통조림콩을 매치시켰다. 빠져선 안 되는 화룡점정 향신료가 있다. 수입 샐러리 씨앗이다. 이게 들어가야 고기와 채소의 맛이 하나로 묶인다.

둘째로 유명한 시내소. 독일식 돈가스인 ‘슈니첼’을 변형한 것. 샌드위치와 돈가스의 융복합 스타일이다. 수제 돈가스 패티를 통째로 샌드위치빵 사이에 넣어 치즈와 양파를 곁들인다. 이런 스타일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수제 햄버거는 이제 미군보다 한국 손님이 더 좋아한다. 한 개 3천500원, 참 넉넉하다.

왜관수도원도 이 식당의 메뉴에 반응했다. 신부는 물론 한국에 온 독일 수사들도 심심찮게 여기 음식을 접했다. 평소 먹던 수도원 소시지와 다른 새로운 맛의 연대기가 수사들의 혀에 기록됐을 것이다. 독일식 음식이 한국의 미군부대 앞에서 새로운 형태로 팔리고 그걸 수사들이 사 먹는다는 사실. 참 푸근한 앙상블 같다.

한미식당도 90년대까지는 김치, 라면, 소시지, 체다치즈 등이 들어간 캠프캐럴식 부대찌개를 팔았다. 치킨치즈라면, 비프치즈라면, 핫도그라면…. 미군들은 라면을 ‘코리안 스파게티’로 이해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 국물, 그들은 외면한다. 국물은 버리고 남은 사리만 먹는다. 어떤 이는 냉장고 등에 넣어뒀다가 다음 날 아침에 스타게티처럼 먹기도 한다.

캠프캐럴 후문 앞에 몰려 있는 맛집들
37년前 초창기 메뉴 그대로인 한미식당
고기에 햄·치즈 넣어 말아 튀긴 코돈블루
샌드위치와 돈가스의 환상조합 시내소
독일 수사들도 심심찮게 찾아와 먹어

주먹밥·돈가스·탕수육·호이빵과 함께
호이푸드축제서 칠곡5味 꼽힌 부대찌개
꿩 맑은 부대찌개로 의정부와 차별화
주먹밥도 산채 등 다양한 재료·맛 선봬
장독대의 추어탕·고궁의 순대도 별미


◆꿩부대찌개를 찾아서

올해 한국 부대찌개사에 한 획을 긋는 신개념 부대찌개가 동명면 기성리 팔공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지난 6월1일 왜관 호국의다리 근처 호국공원에서 열린 호이푸드페스티벌에서 전격 공개된 ‘호이(칠곡 대표 캐릭터)부대찌개’다. 호이부대찌개는 부대찌개 역사의 후미를 차지하는 막내.

50년대 꿀꿀이죽은 63년에 삼양라면, 80년대 초에 국산 소시지와 햄이 생산되면서 ‘부대찌개’로 변화된다. 많은 이들은 꿀꿀이죽과 부대찌개의 차이를 잘 모른다. 라면의 유무로 판별된다. 라면이 없으면 그건 꿀꿀이죽. 대신 거기엔 미국산 정통 소시지류가 들어갔다. 훗날 의정부와 송탄 등 경기도권 부대찌개에는 라면, 민찌(갈아낸 소고기), 고염의 수입 가공육이 들어갔다. 초창기에는 ‘부대고기’로 불렸다. 소시지류는 너무 짰고 너무 느끼했다. 미국의 맛이 한국 맛이 되는 과정에 잦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고추장, 양파, 파 등 이 양념 저 재료를 하나씩 가감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표준스타일이 된다. 부대찌개가 지금처럼 롱런할 수 있었던 건 미국산 소시지류가 ‘고염’인 때문이다. 끓는 과정에 짠 소시지류가 기본간이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짠 국내산 소시지류로는 그게 어렵다. 별도의 양념장으로 간을 맞춰야 된다. 지금도 의정부 토박이 식당은 수입 소시지류는 물론 묵은지와 보리고추장을 꼭 넣는다. 그래서 더 얼큰하고 걸쭉하다. 반면 송탄식은 이와 다르다. 묵은지 대신 양배추를 넣는다. 심지어 치즈까지 고명으로 올려준다. 요즘 젊은 층이 좋아할 달달한 프랜차이즈 스타일이다. 당연히 어르신은 의정부, 신세대는 송탄식이 될 수밖에. 부대찌개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화 되지 않았다. 한국산 소시지류가 등장하면서 전국음식으로 등극한다. 98년 의정부에 부대찌개골목이 생긴다.

부대찌개도 별명이 있다. 존슨탕, 유엔탕 등이다. 서울 이태원에 가면 ‘바다식당’이란 유명한 부대찌개집이 있다. 여기선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 한다. 66년 방한한 존슨 미 대통령이 의정부에서 부대찌개를 맛보았다. 그 이후 의정부에선 부대찌개를 존슨탕으로 부른다.

현재 팔공산 동명면에는 송림사와 한티재로, 가산산성 주변에 업소 150여 개가 모여있다. 85년 팔공산순환도로가 개통되고 92년 군위로 넘어가는 한티재가 개통되면서 동명은 전국구 모텔로드, 라이브카페존, 국내 최고의 오리·닭·꿩요리 특화거리로 발돋움한다. ‘하늘천따지’로 인해 송림사 옆에서 황토오리구이와 곤드레밥이 등장한다. 또한 96년에는 ‘시인과 농부’가 송림사 바로 옆에서 통기타라이브카페 신드롬을 일으킨다. 이어 연화정, 지리산 등은 산채전문점으로 자릴 잡는다.

97년 이 언저리에 나타난 최옥란 ‘선녀와 나무꾼’ 사장. 그녀는 지난 호이푸드페스티벌에서 ‘꿩맑은 부대찌개’를 내놓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들 고급육인 꿩에 부대찌개를 매치시킨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맛을 본 사람들은 엄지 척 했다.

콩나물, 쑥갓, 부추, 양파, 6가지 버섯, 국내산 비엔나소시지와 프랑크소시지를 120g씩 결합시켰다. 하지만 묵은지와 고추장은 넣지 않았다. 방금 발라낸 꿩뼈에 무와 파만 넣고 40분 정도 끓여낸 물을 육수로 배합했다. 마지막엔 다진 청양고추 투입. 처음 볼 때는 맑은 국물요리인 일본 나베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시식하면서 그런 선입견이 모두 사라졌다. 의정부 스타일과 확연히 구별되는 부대찌개였다.

현재 ‘팔공산가산산성상가번영회’(회장 추재권)가 주도적으로 여러 버전의 부대찌개를 선보인다. ‘부촌가든’은 꿩부대찌개, ‘천유원’은 동태부대찌개, ‘대경식당’과 ‘비원정’은 오리능이부대찌개를 내밀었다.

이 밖에 칠곡군은 부대찌개와 함께 주먹밥, 돈가스, 탕수육, 호이빵 등을 ‘칠곡5미’로 개발했다. 특히 콩보리밥으로 만든 ‘6·25주먹밥’을 비롯해 참나물 등 각종 산채로 만든 산채주먹밥도 행사식으로 개발해놓았다.

◆칠곡의 별미산책

전국에 별별 추어탕이 다 있다. 그런데 미꾸라지 맛이 그대로 전해지는 건 대구·경북식 추어탕이다. 영남화물기지 IC와 왜관 IC 사이 4번국도 변에 있는 삼청리 ‘장독대’. 여긴 칠곡식 추어탕의 원조다. 대구식보다 좀 더 거친 식감을 준다.

올해 여든의 김용순씨. 호구지책으로 추어탕을 끓였다. 이젠 물러앉았다. 장독대 역사는 캠프캐럴의 역사와 함께했다. 60년대 초 장독대 옆에는 캠프캐럴 물품 경매장이 있었다. 경매 관계자를 위한 밥집으로 출발했다. 나중엔 ‘연화기사식당’, 94년에 장독대란 상호를 갖게 된다. 골퍼에겐 여기가 파미힐스 골프장 ‘19번홀’로 불린다.

작고한 남편(이희영)은 미꾸라지와 동고동락하다가 갔다. 근처 낙동강 지천을 손금처럼 읽어냈다. 겨울에는 땅을 파서 동면 중인 고기를 잡았다. 가업은 장남(경노)를 거쳐 이젠 차남(성노)으로 이어졌다. 곁반찬으로 나온 ‘등겨장’이 너무 반가웠다. 보리 등겨를 이겨 구운 뒤 구멍을 내 4~6개월 짚을 꿰어 걸어뒀다가 나중에 갈아서 양념해 낸 건데 이런 시절에 등겨장이라니! 그런데도 한 그릇 7천원.

장독대 옆에 전국적 순대국밥 전문점인 ‘고궁’이 있다. 처음엔 왜관역 바로 앞에서 테이블 5개로 시작했다. 제주도식 피순대인 ‘수애’처럼 피가 80% 정도를 차지하는 유달리 두꺼운 순대였다. 그런데 이젠 당면, 채소류 비율이 높다. 돼지 껍질을 첨가하는 게 특징이다.

수시로 그릇 든 이웃이 찾아왔다. 이곳 국밥을 안 먹은 왜관 사람이 있을까 싶다. 대를 이은 며느리 장애경의 시아버지는 6·25전쟁 때 미군 따라 북진도 했다. 일본인 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에 입주해 고궁의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2007년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한때 미군들은 여기 순대를 ‘블랙소시지’로 불렀다. 130㎏ 넘는 모돈(母豚)의 머릿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정육은 꼭 소고기 같다. 지금도 가스 대신 연탄불을 고집한다.

느끼하면서도 한가로운 맘이다. 그걸 다스리기 좋은 두 곳을 찾았다. 낙동강 바람과 전시실을 휘감는 낙동강물. 그걸 실내에서 만끽할 수 있는 왜관읍 ‘구상문학관’. 해 질 녘 시집 한 권 품고 문학관 2층 난간에 서보라. 쓸쓸히 앉은 관수재를 바라보면 생의 완급 조절이 더 유려해질 것 같다. 그리고 칠곡군에도 이런 별천지가 있나 싶은 석적읍 망정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블루 닷(Blue dot)’이다.

블루닷이란 ‘우주에서 본 푸른 점 같은 지구’란 의미. 폐교된 망정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것인데 요즘 진가를 발휘한다. 2005년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주>동양산업의 연수원으로 출발, 현재는 게스트하우스, 천연잔디구장, 족구장, 찜질방, 바비큐장 등까지 갖췄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지붕 뚫고 나온 소나무 테이블에 앉았다. 사진작가 최계복의 작품과 화가 이우환의 단색화 위에 잠시 내 맘을 걸어놓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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