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버리며 사는 일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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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30 07:59  |  수정 2017-10-30 07:59  |  발행일 2017-10-30 제18면
“나무처럼 가진 것을 버려야 찬란한 봄 기약할 수 있다”
“추워지면 뿌리에서 수분 흡수 못해
겨울나기 위해 무성한 잎 떨어뜨려
욕심·집착 커질수록 괴로움도 커져
내 마음 비워야 남의 마음 살 수 있어”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버리며 사는 일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가을이다. 여름철 무성하던 잎들이 후두두 떨어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른빛을 자랑하며 하늘을 풍성하게 뒤덮고 있었는데, 어느새 누렇게 색이 바래 일제히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으니 ‘쓸쓸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계절이다. 올해도 나뭇잎은 이미 떨어질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삶을 마감하고 쓸쓸히 퇴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날씨가 추워지면 뿌리에서 더 이상 수분을 흡수하지 못한다. 수분을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성한 푸른 잎을 그대로 달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빨아 당기는 수분이 없는데 무슨 수로 푸른 잎에서 증산작용을 하며 빠져나가는 수분을 감당할 것인가? 나무는 지금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지금 잎들을 탈탈 털어 떨어뜨리지 않으면 겨울 동안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욕심을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나무는 제가 가진 것들을 버려야 찬란하게 다가올 다음 봄을 기약할 수 있다. 버리는 것은 곧 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올 봄을 위해 새 희망을 몸속으로 품는 일이다. 바람에 후두두 떨어지는 낙엽을 보니 떠오르는 글이 있다. 예전에 가볍게 주머니 속에 넣어 들고 다니던 문고판 ‘무소유’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무소유’, 법정, 범우사)

사람이 사는 일도 나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욕심내어 무언가를 가지려 하면 오히려 그것들은 더 멀리 달아나는 일이 다반사다. 또는 내가 운 좋게 그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내 삶이 얽매이고 불편해지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자꾸만 비어 있는 자리에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 반대로 자신이 애써 얻어 가득 채운 것을 쉬 비우려 하지 않는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임에도 막상 내 것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옷장 가득 채워진 옷들, 책장에 켜켜이 먼지와 함께 쌓여 있는 책, 그것이 언제부터 내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물건이 집안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살 때는 쉽게 결정을 내렸는데, 막상 버리려니 아깝다. 그렇다고 내가 가지고 있어봐야 쓸 것 같지도, 쓸모도 없을 것 같은 것인데 말이다. 쌓여있는 물건을 보며 내가 너무 욕심의 힘을 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낙엽에 부끄러워지는 가을이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물건뿐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 또한 그렇다. 어느 정도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 편’을 많이 만들어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권위를 높여나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그런데 권위와 존경은 내가 힘을 써서 욕심을 낸다고 생기는 건 아니다.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오히려 적당히 버리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맑은 약수를 내 것으로 하려면 물을 힘껏 움켜쥐어서는 안 된다. 가만히 손을 모아 담아야 비로소 달고 시원한 물이 내 입으로 들어올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은 주먹을 움켜쥐는 게 아니라 양손을 가만히 모으고 기다리는 일이다. 자신이 욕심을 버리고, 힘을 적당히 풀 때 남의 마음을 살 수 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집착은 괴로움을 낳는다. 크게 버리는 사람은 크게 얻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진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을 가질 수 있다. 꼭 쥐었던 주먹을 펴고, 잎들을 툴툴 털어낼 준비를 하는 나무를 보니 꼭 쥔 내 주먹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가 보다.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니 참 희한한 계절이다.

김대조<대구 화원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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