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 ‘파브리코’ 박운석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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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9   |  발행일 2017-12-29 제41면   |  수정 2017-12-29
맛집 記事 대신 착한 ‘소·맥’을 빚어내다
늘 셰프의 삶을 동경하던 22년차 기자
오랜 맛집 취재 경상도 여행책도 출간
“하고 싶은 걸 하라” 아내의 말에 용기
꿈 이루려 관련 CEO과정 공부 후 창업
흑돼지전문 ‘정행돈’으로 외식업 첫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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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서 수제맥주와 수제소시지 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펍레스토랑 ‘파브리코’의 박운석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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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쇼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독일식 족발인 슈바인학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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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의 새로운 변신을 즐길 수 있는 짬뽕파스타.

‘파티(Party)’. 이제는 외식보다 이게 더 핫 트렌드. 파티와 토크. 거기에 딱 맞는 음식은 뭘까. 단연 수제소시지와 수제맥주 아닐까.

지난주 대구 달서구 본리주민센터 맞은편에 자릴 잡은 ‘파브리코(FABRIKO)’가 포착됐다.

계단을 올라가 2층 문을 열었다. 별실 통유리창 너머 테라스 벽에 ‘7無’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착한 소시지’를 위해 발색제 아질산나트륨, 방부제 소르빈산칼륨, 산화방지제 에리소르빈산나트륨, 향미증진제 엘글루타민산나트륨, 무게를 늘려주는 증량제 대두단백이나 전분, 식용색소인 합성착색료를 넣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인터넷 판매를 시작하면서 인산염을 정부 권장량의 절반 정도 첨가한다. 인산염은 소시지 식감을 쫄깃하게 해주는 결착제.

늘 셰프의 삶을 동경하던 22년차 기자
오랜 맛집 취재 경상도 여행책도 출간
“하고 싶은 걸 하라” 아내의 말에 용기
꿈 이루려 관련 CEO과정 공부 후 창업

흑돼지전문 ‘정행돈’으로 외식업 첫발
2014년엔 수제맥주 ‘비기트레인’ 선회
지역 첫 맥주공방으로 소시지교육까지
이어 펍레스토랑 ‘파브리코’로 맛집 등극


박운석 사장. 식당 사장치곤 너무 말이 없다. 얼마전 왜관 수도원에서 만났던 소시지 만드는 수사의 진지함이 연상됐다. 그는 22년간 기자였다. 늘 셰프의 삶을 더 동경했다. 신문사를 나와 대구문화재단 창립멤버로 2년 정도 소일했다. 외식업을 해야겠다 싶어 사표를 냈다. “해보고 싶은 걸 하세요!” 역시 아내가 일조했다. 대구가톨릭대 외식산업 CEO과정에 들어갔다.

궁금한 게 늘어났다. 그걸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너셰프가 됐다. 소시지 만드는 게 너무 재밌었다. 작업장에서 밤새워가며 새로운 소시지를 만들어보고 다른 재료를 넣어 비교해 보고, 고객에게 내밀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고…. 툭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제대로 된 소시지 레시피를 찾기 위해서다. 아직 한글로 제대로 된 레시피가 별로 없다. 대부분 구글사이트 혹은 잘 짜인 음식 정보 등을 공개하는 미국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핀터레스트(Pinterest)’에 들어가서 영문 레시피를 찾아 메모하고 다음날 만들어봤다. 의도대로 나오지 않아 적잖은 소시지를 버렸다. 고비마다 마인드컨트롤로 버텼다.

그는 ‘파브리코소시지’에 자부심을 갖는다. 소시지는 청양고추, 불고기, 마늘, 피자 등 4종이 있다. 불고기소시지의 경우 가정에서 불고기를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 그대로 들어간다. 다진 파, 다진 마늘, 풋고추, 참기름, 간장, 맛술 조금. 이 외에 향을 첨가하는 다른 재료는 없다. 피자소시지에는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청홍 피망과 모차렐라치즈, 체다치즈, 양파, 마늘, 케첩 등 모든 피자 재료가 투입된다. 먹어보면 피자향이 듬뿍 나는 것도 이런 천연재료 때문이다.

여기 소시지의 가장 큰 특징은 돼지고기 목전지 부위만 사용하는 것. 시중의 대부분 소시지는 후지(뒷다리살)로 만든다. 단가 때문이다. 따로 지방을 첨가하지 않는다. 목전지 지방 함량은 15% 정도. 시중 유통 소시지 지방 함량은 30%를 넘어선다. 안데스호수 호염(湖鹽)을 고기양의 1.1%만 넣어 독일식 소시지보다 훨씬 덜 짜다. 유럽은 우리처럼 소시지만 먹는 게 아니라 빵과 함께 먹기 때문에 더 짜게 만든다.

◆ 한때 돼지고깃집 사장

오래 전국의 유명맛집을 취재했다. 그 여정을 담아 ‘스무색깔 스무느낌 경상도’라는 여행책을 펴냈다. 맛집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레 ‘식당창업욕’으로 이어졌다.

‘정행돈(正行豚)’이란 흑돼지전문점을 오픈했다. 늘 “오너셰프가 재료에서 밀리면 단골한테 할 말이 없다”면서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녔다. 그때 바비큐에 푹 빠져있었다. 직화구이의 부작용을 염려하던 터라 돌판을 이용한 간접구이 방식을 택한다. 전북 익산의 장수곱돌 가공공장을 찾아가 가로 62㎝ 세로 50㎝ 크기의 꽤 비싼 대형돌판을 주문제작했다. 종업원들은 늘 온도계를 지니고 있다. 150℃ 이상에서 고기를 얹어주기 위해서다. 육즙보호와 보여주기쇼를 겸한 일석이조 마케팅이었다. 제주멜젓 소스가 유행했지만 소금 외에는 일절 내지 않았다.

2014년 주세법이 개정된다. 하우스 수제맥주붐이 일어났다. 관심 때문에 자주 상경했다. 이태원 옆 녹사평에 있는 ‘맥파이’에서 번쩍 눈을 뜬다. 대구에서 수제맥주 붐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해 봄, 중구 삼덕동에 수제맥주전문점인 ‘비기트레인’을 오픈했다. 정행돈은 접고 수제맥주에 올인했다. 아쉽게도 그때까지 대구엔 이렇다 할 만한 맥주 공방이 없었다. 소시지 교육과 맥주 교육을 진행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장을 구해야 되겠다 싶어서 비교적 넓은 매장을 차렸는데 그게 지금의 파브리코다. 맥주와 소시지가 원스톱으로 연결되는 멀티플렉스 식당이다.

파브리코는 ‘펍레스토랑’ 계열이다. 카페, 레스토랑, 주점, 커피숍 등의 분위기가 공존한다. 주력은 소시지와 수제바비큐. 이 밖에 햄, 베이컨, 폭립 등도 부속 육가공공장인 ‘육육공방’에서 만든다. 피클은 물론 자몽차와 레몬차도 직접 청으로 만들어 낸다.

주 요리법 중 하나인 ‘수비드’. 이는 진공포장한 음식물을 미지근한 물 속에 넣어 장시간 익혀내는 조리법이다. 음식물의 겉과 속을 골고루 가열하고 수분유지가 목적이다. 대표 파티메뉴 중 하나인 ‘수비드 폭립바비큐’. 핏물을 빼고 냄새를 잡기 위해 마늘, 생강 등 여러 천연향신료로 양념해 하루 정도 재워둔다. 이걸 수비드방식으로 익혀내고 다시 바비큐러브(Rub·양념)을 바른 다음 오븐에 넣어 구워낸다.

‘수제소시지 & 수비드감자’도 비기트레인 오픈 때부터 4년째 이어오는 장수 메뉴. 감자와 당근은 진공포장해서 83℃ 물속에 25분간 넣어 익혀낸다.

‘짬뽕파스타’는 틈새메뉴. 파브리코만의 희귀 아이템이다. 매콤한 짬뽕 스타일의 파스타지만 재료는 판이하다. 바질페스토와 토마토를 많이 넣어 맛 자체가 중국음식점의 짬뽕과는 다르다. 홍합 대신 가격이 훨씬 비싼 그린홍합을 사용한다. 식사 같고 안주 같다.

보는 재미를 주는 슈바인학센은 일명 ‘독일식 족발’. 여느 집에선 만나기 힘들다. 돼지앞다리 정강이부분을 햄을 만드는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구워내는 메뉴인데 처음에는 직접 만들다가 지금은 재료를 받아서 낸다. 이 메뉴를 낼 땐 ‘불쇼’가 백미.

◆ 자체 브랜드 수제맥주 출시

현재 전국 수제맥주 양조장은 100여곳. 파브리코 맥주는 수제맥주페스티벌, 수제맥주행사장 등을 다니며 직접 마셔보고 맥주라인업을 짰다.

판매 중인 수제맥주는 모두 14가지. 그 중에서 벨기에 스타일의 수제맥주 4종류는 와인병처럼 750㎜의 큰 병에 담아 코르크마개를 한 상태로 판매한다. 그 중 대표주자는 파브리코 블론드에일과 파브리코 브라운에일.

이곳 맥주는 충북 제천의 뱅크크릭브루잉과 콜라보형식으로 만들고 있다. 파브리코와 뱅크크릭브루잉이 레시피를 공동개발·작업·판매·마케팅한다. 여긴 일반적인 맥주잔이 아니라 와인잔에 따라 마시게 한다. 향을 보호하고 와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마개도 코르크라서 샴페인처럼 소리나게 딸 수 있다.

수제맥주는 특히 관리가 어렵다. 냉장보관하지 않으면 금방 상해버린다. 맥주를 받아내는 탭도 주기적으로 청소해준다. 여긴 홀 중앙에 수제맥주 전용 냉장고가 있다.

또 ‘맥덕’(맥주를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맥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이 찾아 다니며 마시는 프리미엄 맥주인 ‘더블IPA(8도)’도 맛볼 수 있다. 조만간 알코올도수 12도인 고도주 맥주도 병맥주로 판매할 계획이다.

이젠 맥주와 음식의 마리아주(어울임)도 무척 중요하다. 맥주의 맛과 향의 강약에 따라 음식을 매칭시켜주는 게 기본. 가벼운 맛의 일반 라거맥주엔 맛이 강하지 않은 음식, 무게감 있고 향이 진한 에일맥주에는 맛과 향이 강한 음식이 어울린다. 가장 부드러우면서 여성적인 맥주인 바이젠은 불고기소시지와 어울린다. 맛과 향이 색다른 파브리코 블론드에일은 피자소시지, 향이 강한 페일에일과 IPA는 청양고추소시지와 어울린다. 더블IPA는 파브리코에서 직접 만드는 수비드폭립과 짝이 맞는 맥주.

술에 더 깊게 빠지고 있다. 특히 그는 요즘 막걸리와 밀애 중이다. 특히 ‘삼양주(三釀酎)’에 도전했다. 밑술 과정을 거친 후 두 번의 덧술 과정을 거치는 술이 삼양주. 일반적으로 가게에서 사마시는 막걸리는 단양주이고, 소곡주·벽향주 등이 이양주이며, 호산춘이 삼양주다. 그는 자기버전을 중시한다. 왕창 베끼는 걸 꺼린다. 그래서 삼양주에 강황, 하수오 등 한약재 등을 첨가해서 반주스타일인 ‘약주막걸리’로 만드는 중이다.

부속 수제맥주공방인 ‘맥도가’.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하루 만에 맥주와 소시지 세상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물론 6주 과정의 전문가 과정도 있다.

달서구 대명천로 148. 2층. (053)567-8188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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