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 北선수들 보니 고향생각 더 사무쳐”

  • 권혁준,황인무
  • |
  • 입력 2018-02-15 07:06  |  수정 2018-02-15 09:42  |  발행일 2018-02-15 제1면
■ 91세 실향민 진병룡 할아버지의 남다른 평창올림픽
“남북관계 화해 무드 조성 때마다
정부 이산가족 상봉에만 매달려
만나면 좋지만 그리움은 더 커져
서신 등 지속적 왕래 이뤄졌으면”
20180215
지난 13일 대구에 사는 실향민 진병룡씨 가족이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청하고 있다. 진씨는 “설을 앞두고 북한이 참가한 올림픽을 보니 고향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설을 앞두고 북한 선수들이 방남해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니 고향생각이 더욱 절실하네요.” 지난 13일 오전 10시 대구 북구 침산동에서 만난 실향민 진병룡씨(91)가 가족과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건넨 첫 마디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남북이 공동 입장하고, 단일팀까지 구성되면서 그동안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잠시나마 풀리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어서다. 혹시나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

진씨는 올림픽 개회식 때 남북한 공동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를 놓치지 않고 시청했다. 이날도 아들 원철씨(66), 손자 성진씨(33), 증손자 홍준군(2)과 함께 4대가 동계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었다. 진씨는 “꿈에나 생시나 잊을 수 없는 게 고향이다. 벌써 70년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한없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장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설을 앞둔 데다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올림픽에 북한선수단이 참가하게 돼 애끓는 마음이 더 커졌다”고 토로했다.

실향민 1세대인 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4일 부모와 여동생을 고향인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현 평양특별시 상원군)에 둔 채 남동생과 함께 황해도로 피란을 떠났다.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피란 행렬에 떠밀려 서울까지 오게 됐다. 이후 1·4후퇴 때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진씨는 “당시 중공군 개입으로 고향 땅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원폭이 투하되는 일주일간만 집 밖으로 50~60리 떠나 피신해 있으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부모님께 ‘다녀오겠다’고 남긴 짧은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은…”이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진씨는 꿈에 그리던 가족과 연락이 닿길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한 차례 상봉으로 끝나는 이벤트성 만남이 아닌, 지속적인 교류를 꿈꾸고 있다. 진씨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에 매달렸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가족·친지를 만나는 것은 좋지만 만났다가 헤어지고 나면 그리움만 더욱 사무친다”면서 “올림픽 이후 이산가족 상봉에만 애쓰지 말고, 서신왕래처럼 쉽고 효과적인 교류부터 이뤄질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권혁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