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자신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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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42면   |  수정 2018-02-23
‘코러스’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감독 (2005 프랑스. 2010·2017. 재개봉)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자신만의 길

1895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열차의 도착’이란 짤막한 영상을 상영한 이래 영화는 눈부신 발전을 이어왔다. 그때는 사람들이 열차가 자기를 향해 돌진하는 줄 알고 놀라 뛰쳐나오는 소동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움직이는 영상이 준 충격은 실로 대단했던 것이다. 백년이 조금 넘는 세월 동안 영화의 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했고, 최근 할리우드에는 배우 빼고는 다 CG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가능한 표현이 없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영화를 왜 보는 걸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단지 재미나 오락을 위해서라면 대체가능한 것이 얼마든지 있다. 영화는 많고 많지만,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에너지를 얻게 하는 ‘좋은 영화’는 드물다. 흥행작들을 보면 얄퍅한 상술에 기댄 오락물이거나, 잔인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삭막하기에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따뜻한 영화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영화 ‘코러스’는 보고 나면 마음이 행복해지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자신만의 길

2차 대전 직후, 열악한 환경의 기숙학교에 ‘실패한 음악가’라 자처하는 교사 마티유가 부임해온다. 말이 기숙학교지 최저 수준의 고아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마티유는 자신의 처지에 꼭 어울리는 곳이라 여기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낸다. 이곳은 오직 체벌과 훈육으로만 교육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끊임없이 문제가 생긴다. 그러던 어느 날, 마티유는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의 말에 곡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이들을 위한 합창단을 조직하기로 한다. 다시는 작곡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곡을 쓰고 노래를 가르친다. 말썽꾸러기 소년들, 마음 둘 곳 없던 아이들은 함께 노래를 하며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고 회복되어간다. 그 중 가장 말썽꾸러기이던 모항쥬에게서 탁월한 재능을 발견한다. 모항쥬가 솔로로 부르는 ‘오 밤이여’는 천상의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마티유의 따뜻한 관심과 음악 덕분에 아이들은 마음의 안정과 활기를 찾게 된다. 하지만 뜻밖의 사건과 자신의 출세밖에 모르던 교장으로 인해 결국 마티유는 파면을 당하게 된다. 작별인사조차 못하고 떠나는 마티유를 향해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그를 위해 노래하는 엔딩은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킨다. 아이들이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 위로 올라가던 명장면 말이다. 사실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는 그렇게 아이들이 반드시 알아주는 법이다. 마티유가 재능을 발견한 덕에, 뒷날 유명 지휘자가 된 성인 모항쥬 역은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의 성인 역을 맡은 자크 페렝이 나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토요일마다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던 페피노 역의 귀여운 꼬마는 자크 페렝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성인 모항쥬의 목소리로 “그 뒤에도 마티유 선생님은 아무런 명예도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갔다”라는 해설이 흘러나온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인생의 시금석으로 들린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 있든 자신의 리듬으로 살 것이고, 마티유처럼 주변에도 유익을 끼칠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갔지만,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을까?’라는 대사가 표현해주듯이. 마티유는 떠나는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아이들에게서 크나큰 기쁨과 힘을 얻었고, 자신이 실패한 인생이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그 힘으로 자신만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일 거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 냉정한 현실 속에서 넘어지고 좌절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겠지만, 마티유처럼 자신이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힘을 얻는 순간 역시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것. 새해가 되어 유독 생각나는 명제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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