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목포 고하도 용오름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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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37면   |  수정 2018-03-09
생명 가득한 길에서 보는 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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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임에도 초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고하도의 풍경.

섬과 별은 영혼을 돌리는 바람개비다. 언제나 그러하듯 섬과 별은 꿈과 미래다. 섬과 별을 추적하는 것은 꿈과 미래를 현실에 당겨 영혼을 경험하는 일이다. 목포 유달산에서 보면, 고하도는 대낮의 반달이 바다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달산보다 더 낮은 곳, 감청색 바다에 떠 있는 섬을 고하도라 불렀다. 고하도로 가는 목포대교가 2012년 6월29일 개통되어 섬은 육지와 다름이 없다. 버스가 목포대교를 건너간다. 마치 현악기 하프를 연상케 하는 교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한다. 이제 다리도 예술의 한 분야가 되었다.

고하도에 들어서자 우측에 세월호가 보인다. 박무에 서서히 드러나는 세월호의 선체는 비스듬히 누워 아직도 바로서지 못하고 있다. 어디서 온 누가 붙였는지, 부두를 경계 짓는 철망에 무수한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노란 리본은 위험한 상황에 부딪힌 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인식리본이다. 세월호 사건은 전대미문의 선박침몰사건이다. 세월호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한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2014년 4월15일 밤 9시 인천을 출발, 제주도로 항해했다. 원래 출발시각은 오후 6시30분이었으나 기후가 나빠 시간이 늦춰졌다. 다음 날 16일 오전 8시49분 진도군 앞바다 조류가 거센 맹골수도에서 급격하게 변침했고, 세월호는 곧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침몰하기 시작했다. 단원고 학생이 119에 구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선체 안에서는 “이동하지 마라”고 연신 방송이 흘러 나왔다.

오전 9시35분 해경 123함정과 부근 어선 등이 도착하여 침몰 전까지 172명을 구조하였으나, 10시30분께 침몰 이후는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끔직한 대형사고에 대처하는 구조대는 우왕좌왕하여 혼선을 빚었고, 세월호를 책임져야 하는 이준석 선장과 선원 15명은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하였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동하지 마라”는 방송을 하지나 말지. 참으로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할 불행한 사건이었다. 누구라도 다 귀중한 것이 생명이지만 고 2학년, 채 피지도 못한 봄의 꽃 몽우리 같은 학생들이 한을 머금고 이승을 떠났다. 그 흰 쌀밥 같은 영혼들, 하느님께서 거두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무슨 말로 나타낼 수 있으랴. 초봄의 한숨 같은 바닷바람이 분다. 노란 리본이 물결치듯이 일렁인다. 노란 리본의 펄럭이는 소리가 수장당한 영혼들의 울부짖음처럼 들린다. 나도 모르게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물질만능, 인명경시, 안전 불감증 등 타락한 윤리, 무책임한 사회국가가 악마였다. 여기에 오래 있기가 참담하여 용오름 길로 떠난다. 이 아픔 , 이 슬픔 모두가 세월이 약이겠지요.

박무에 드러난 세월호·노란 리본에 눈물 그렁
늠름한 자태의 솔숲 지나 만난 충무공 모충각
13척으로 日 함대 133척 격파 명량해전 경외심
바다를 눈에 담아 걷는 용오름 길 감동 이어져
용머리 올라 소유의 욕망 벗어나 우주와 소통


◆이충무공을 기념하는 모충각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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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에 있는 이순신 장군을 모신 모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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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에 있는 이충무공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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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미국 전함을 요격하기 위해 판 인간어뢰동굴.

고하도 모충각으로 걸음을 뗀다. 해풍에 시달리면서도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솔숲은 정갈하고 범치 못할 위엄이 있다. 이충무공을 기리는 비각에 선다. 명량해전의 승리 후 이곳에 통제영을 설치했다는 내용이다. 명량해전은 어떠한 해전이었을까. 1597년 9월16일은 조선의 해전사에 기적을 이룬 날이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13척의 보잘것없는 조선함대가 명량해전에서 133척의 일본 함대를 격파했다. 이순신은 명량대첩 후 “이것은 실로 천행이다(此實天幸)”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10배의 일본 함대를 대적한 힘겨운 해전이었다. 그 승리 요인을 무엇이었을까. 첫째, 이순신 함대의 13척 전선은 수적으로 보잘것없었으나, 전투력이 우위에 있었고 조선 수군은 정예병이었다. 그에 비해 일본 함대는 명량의 협수로 때문에 주력함인 아다케는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고 세키부네만으로 해전을 치렀다. 둘째, 이순신 장군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장소에서 싸운다. 즉 명량의 지형지물과 조류를 이용하고 해로를 차단하는 뛰어난 전략전술로 승리를 하였다. 셋째, 바다의 의병과 주변 피난선들의 역동적인 협조와 전투참여가 이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명량해전에서 조선군은 전사자가 한 명도 없었으나 13척 전선 모두 선체가 손상되었다. 이제 이순신 함대는 적당한 군항에 정박하여 휴식을 취하고 전선을 수리하고 군량을 확보하여 전력을 재정비해야만 했다. 그러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이후 이순신 함대는 암태도, 법성포, 위도, 고군산 열도까지 북상했다가 다시 남하, 전략적 요충지인 고하도에 통제영을 설치했다. 1597년 10월29일이었다. 이순신은 1598년 2월17일, 새로운 근거지인 고금도로 떠날 때까지 근 107일 동안 이 섬에서 조선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하였다.

명량대첩 이후 약 1천명에 불과하던 수군을 8천명으로 증강했고, 40척의 군선을 건조하여 53척의 대함대로 재편했다. 그리고 인근 바다를 지나는 어선을 대상으로 해로 통행 첩을 발행하여 군량미를 마련했다. 그야말로 수군, 전선, 군량까지 여기 고하도에서 확충했고 임진왜란의 대미인 노량해전의 전투력을 고하도에서 비축하였다. 그중 이순신의 조선 능력은 경이로웠다. 조선소별로 분업과 협업으로 1척 건조에 40일이 소요되었는데, 이 전선 건조능력은 매우 놀랄 만한 것이었다. 모충각 아랫길을 거쳐 바닷가로 나간다. 봄 바다는 희뿌연 연무를 토하며 굽이굽이 휘돌아 흘러온 영산강의 신비를 껴안으며, 잔잔하게 파도치고 있다. 일제강점기 대동아 전쟁 말기 미군함의 상륙에 대비해 수병이 직접 어뢰를 조종해 미 군함에 돌진하고자 하는 어뢰가미카제를 숨긴 동굴을 관람한다. 약 50개의 동굴이 있었다고 한다. 해안을 떠나 본격적인 용오름 길로 접어든다.

◆용오름 길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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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고하도로 옮긴 세월호와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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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름 길 중 가장 스릴이 넘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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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목포대교와 고하도.

이른 봄임에도 푸른 잎을 가진 나무들이 길손을 반긴다. 이렇게 수려하고 편안한 길이 있을 수 있을까. 기우제를 지내던 탕건바위에서 사방을 조망한다. 천사의 섬으로 부르는 신안 쪽의 작은 섬들이 낮별처럼 선명하다. 트레킹 로드는 가슴에 희열을 분출시킨다. 청정한 공기는 머리까지 맑게 하고,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나지막한 숲은 연이어지고, 바다를 눈에 담아 걷는 능선 길, 즉 용오름 길은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렁저렁 뫼막개를 지난다. 목포대교가 점점 가까워진다. ‘아 이렇게 감성적인 길이, 꿈을 헤집어 꺼내드는 보석 같은 길이 있다니.’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오솔길은 환상의 푸른 나무들 사이에서 감동으로 계속된다. 숲길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능선 아랫길을 선택하면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 길이 다할 때까지 걸을 수밖에 없다.

길에서 보는 봄 바다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겠는가. 자연의 생명이 넘치는 이 길은, 나의 내면으로 걷는 길이다. 바다와 섬, 육지와 하늘이 하나의 그림을 그리며, 닫힌 자아를 열어준다.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왜 섬이 착각을 깨트리는 거울이 되는지 알 것 같다. 국기봉을 통과하고 더 나아가 드디어 용머리에 도착한다. 길의 마침인 여기서 용의 여의주가 되어 하나의 전설을 완성하고 싶다. 그 환희와 생명으로 가득 찬 길을 걸어오면서 자신을 다시 만나고,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 우주와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세월호 선창 - 모충각 - 어뢰동굴 - 등산로 입구 - 말바우 - 뫼막개 - 용머리 돌아나옴 - 숲길 삼거리 - 대숲 삼거리 - 둘레숲길 입구 - 등산로 입구

▶ㅋ문의: 목포시 종합관광 안내소 (061)270-8598

▶내비 주소: 전남 목포시 고하도 달동 780-18

▶주위 볼거리: 갓바위권, 목포근대 역사관1관, 목포근대역사관 2관, 삼학도, 목포문학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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