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그녀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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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2   |  발행일 2018-04-12 제30면   |  수정 2018-04-12
4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 위해 무보수로 헌신한
여성 선교사 마르타 스위츠
‘마르타 스위처’가 바른표기
이제라도 제대로 불러줘야
[여성칼럼] 그녀의 이름은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시작은 사소했다. 우리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여성탐방로 ‘반지길’ 안내 책자의 1차 교정본을 수정하다가 여성 선교사 ‘마르타 스위츠’(1880~1929)에 대한 소개를 보게 되었고 외국 선교사의 경우 영문을 병기해볼까 하고 영문명을 찾아본 것이 발단이 되었다.

‘마르타 스위츠’는 1911년 한국에 들어와 1929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8년간 아무런 보수를 받지 않은 채, 오히려 자비(自費)로 선교활동과 여성교육에 앞장섰던 선교사다. 사후에도 남은 재산을 모두 이 땅의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선교활동과 교육 사업에 내놓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스위츠’의 영문 이름을 찾아보니 ‘Martha Switzer’. 놀랍게도(!)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부르던 ‘마르타 스위츠’가 아닌 ‘마르타 스위처’였던 것이다. 영문 성(姓)이 ‘스위스 사람’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니 조상이 스위스에서 건너온 사람일 수도 있겠다. 처음엔 오기(誤記)인가 싶어서 담당 연구원을 불러 물어보았다. 발음상으로는 ‘스위처’가 맞지만 많은 경우 ‘스위츠’로 표기하고 있고, 심지어 한글로는 ‘스위츠’라 쓰고 괄호 속 영문명은 ‘Switzer’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단다. 중학생만 되어도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스위처’가 어떻게 ‘스위츠’로 통용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대구시 유형문화재 24호로 지정된 ‘선교사 스윗즈 주택’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의료선교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는 동산 청라언덕의 ‘스윗즈 주택’은 벽체는 서양식 붉은 벽돌집이지만 지붕은 한식 기와를 얹어 근대 대구 건축물 중 가장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가옥의 기초가 되는 주춧돌은 1907년 철거되어 뒹굴던 대구읍성의 성돌을 주워 조성했다니 이 집의 주인만큼이나 사연이 많은 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집을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집주인의 이름이 ‘스위츠’도 ‘스위처’도 아닌 ‘스윗즈’로 소개되어 있다. 이 주택이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연도가 1989년이니 스위처 선교사의 이름은 30년 가까이 공식적으로 ‘스윗즈’로 불리어 온 셈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스위처 선교사의 영문명과 한글명 표기가 다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없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이름이 구전으로 전해지다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관행으로 굳어져 바로잡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주변에 이 이야기를 하니 그런 정도의 일이라면 대구 곳곳에서 자주 발견된단다. 하지만 문화재라 섣불리 이름 바꾸기가 어렵지 않을까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런데 문화재라 이름 변경이 어렵다는 건 어쩌면 예단일지 모른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살피지 못했다는 게 정답일 게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실제 많은 시·도에서 문화재 명칭을 시민편의와 역사적 문제제기에 따른 고증에 근거해 변경하고 있으며, 문화재 명칭 변경은 시(市)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보에 일정기간 고시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구시도 시(市) 지정 문화재의 명칭에 대한 일제 점검을 통해 각계의 의견수렴, 전문가의 자문과 고증을 거쳐 변경할 것들을 일괄 처리하면 어떨지 제안해본다. 예전과 다른 한글맞춤법 표기, 로마자 표기방식 등을 현대적으로 반영하고 한자식 이름을 쉬운 한글 표현으로 바꾼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봄이다. 변덕스럽던 꽃샘추위도 지나가고 햇볕과 바람이 좋다보니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요즘이다. 봄바람과 함께 근대골목에도 탐방객이 삼삼오오 몰려들 것이다. ‘스윗즈 주택’이 빨리 ‘스위처 주택’으로 이름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백년 전 조선 땅 대구라는 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 홀로 잠들어 있는 여성 선교사 스위처의 이름을 이제라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늦었지만 그녀의 헌신적인 삶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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