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색연필-감성을 움직이는 色의 마법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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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0   |  발행일 2018-04-20 제39면   |  수정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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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백지에 연필로 인형을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종이에다 예쁜 공주를 그리곤 그것을 오리고 그 위에다 종이옷을 만들어 입히고 놀았다. 만화 주인공 같은 예쁜 공주를 잘 그리는 친구는 인기가 많았다. 노는 시간이면 그 친구에게 서로 그려달라고 졸랐다. 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내가 그린 공주는 예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려 달라거나 나보다 잘 그리는 동생에게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에는 종이로 다양한 옷을 만들어 입혔다. 그때 색연필이 필요했다. 다양한 색상의 아름다운 색연필은 귀했다. 외제 색연필 세트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색연필로 화려하고 예쁜 종이 인형 옷을 여러 벌 만들어 입힐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예쁜 색상의 색연필이 무척 가지고 싶었다.

어릴적 유행한 종이인형 옷 만들기
예쁜 옷 만들기 필요한 색연필세트
가지고 있는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
나이들어 우연히 다시 접한 색연필
색칠하며 즐겁게 놀았던 기억 새록
아들이 150색 선물, 아이처럼 기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 느껴



요즈음 학생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할지 모른다. 종이인형 도안을 문방구에서 살 수 있으며, 인터넷에서는 클릭만 하면 자신의 이모티콘에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갈아입힐 수 있으니 말이다. 그땐 종이 인형의 옷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롱드레스며 원피스, 바지, 코트 등을 그려 만들었으며 이것을 종이 인형에 입히며 놀았다. 그래도 그 시절 그 놀이가 꽤 재미있었다. 문방구에서 파는 획일화된 요즘의 도안보다 그 시절 추억의 종이인형은 자기만의 개성과 창의성이 있었다.

나는 색연필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줄 알았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시외의 찻집에 갔다. 옆자리에 듬성듬성 색연필과 컬러링북이 놓여 있었다. 손님들이 심심하지 않게 놀다 가라고 놓아둔 것이었다. “어머! 이런 게 있네”하며 컬러링북과 색연필 케이스를 열었다. 예전에 내가 가지고 싶었던 색연필이 들어 있었다. 36색도 있고 84색도 있었다. 난 조금 흥분해서 컬러링북에 열심히 칠해 보았다. 느낌이 좋았다. 집에 오자마자 우선 색연필을 장만하고 컬러링북도 샀다. 며칠 동안은 집에 나뒹구는 몽당 색연필 몇 자루를 가지고 컬러링북에 색칠했다. 새로 산 색연필은 아까워서 손도 못 대고 바라만 보았다.

내가 색연필을 사서 컬러링북에 색칠을 한다는 말을 들은 큰아들은 그 말을 건성으로 듣지 않았는지 집에 다니러 올 때 150색 색연필을 선물로 사다주었다. 다양한 색상의 뾰족하게 날선 예쁜 색연필을 보니 어린아이처럼 좋았다. 난 색연필이 행여 부러지고 닳을까봐 조심하면서 케이스를 열어만 보고 그대로 닫았다. 보물처럼 아끼며 서랍에 넣어두었다. 색연필이 여기 서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는 내가 산 36색 색연필을 그제야 열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기에 영 소질이 없어 색칠을 잘 못하지만 같은 계열의 색을 가지고 색칠을 하니 그런대로 봐 줄만 했다. 예쁜 색연필로 색칠하니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가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색연필의 아름다운 색을 들여다본다.

컬러링북을 잘 칠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더니 여러 요령이 있었다. 나는 또 놀랐다. 나만 색연필을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색연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디지털 시대에 색연필을 몇백만원씩 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독일의 어느 제품은 수채 색연필과 유성 색연필, 크레용까지 350여 종류로 색연필 상자를 조립하는 데 12시간이나 걸린단다.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한정판 제품이라 비싸지만 구입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색연필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소장하려는 이들이다.

사람들은 이제 연필을 쓰려고 사는 게 아니라 바라보려고 산다. 나부터도 선물 받은 150색 색연필을 감상하며 즐기고 있지 않은가. 다들 그 색연필 상자를 바라보는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사는가 보다.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이유가 한몫하지만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면 나무 냄새와 사각거리는 소리, 은은한 색채가 내뿜는 분위기에 긴장이 풀린다. 컬러링북에 색칠을 하고 있으면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집중하게 되어 자기만의 은밀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색연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되고 행복감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심리치료가 어디 있겠는가. 어떤 물건은 필요보다 감성으로 존재한다.

괴테, 베토벤, 고흐, 에디슨도 생전에 연필을 즐겨 사용했다. 괴테의 노트에도, 베토벤의 오선지에도, 반 고흐의 화폭에도 연필로 쓴 기록이 있고, 발명가 에디슨의 손에도 연필이 들려있었다. 14세기경에는 이탈리아에서 납과 주석을 섞은 심을 나무판에 끼워 사용하였으며, 1564년 영국에서 흑연이 발견되고 2년 뒤에 이것을 나뭇조각 사이에 끼워 쓰기 시작한 것이 흑연 연필의 시초다. 그 후 1795년에 프랑스의 콩테가 흑연과 진흙으로 만든 심을 고온에서 굽는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실용화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의 연필은 콩테의 제조법을 개량한 것이다. 연필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세기 후반이며, 1946년 대전에서 국산 연필이 처음 생산되었다. 색연필은 안료를 심으로 만들어 연필처럼 가공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안료의 품질과 순도, 심의 밀도와 접합제의 종류에 따라 유성 색연필과 수성 색연필로 분류한다.

색연필을 활용한 예술기법도 많다. 색연필 일러스트, 보태니컬 아트, 색연필 공예, 색칠하기가 있다. 컬러링북 종류도 ‘비밀의 정원’을 시작으로 현재 2천종에 이른다고 한다.

컬러링북을 칠할 때도 요령이 있다. 같은 계열의 색을 사용해서 풍부한 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서로 다른 색을 혼합해서 제3의 색을 만들어내야 한다. 모든 색을 커버할 수 없으므로 색을 이해해야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봄꽃이 다투어 피었다. 이 봄에 피는 야생화를 그려 색연필로 아름답게 채색해야겠다.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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