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택시에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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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7 07:49  |  수정 2018-04-27 07:49  |  발행일 2018-04-27 제16면
[문화산책] 택시에서의 대화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어쩌다보니 퇴근길에 3일 연속 택시를 탔다. 신기하게도 모든 기사님은 내게 연극하는 사람인지를 물어보셨다. 차 안에서 했던 통화 내용에서 내가 하는 일이 드러났던 것 같다. 기사님들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며 사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곧 다가올 무언의 잔소리며 동정어린 시선이 예상되어서였다. 나보다 높은 연배의 분들은 내가 연극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을 때, 십중팔구 ‘차마 남의 자식에게 심한 말은 못하겠다’라는 마음의 소리를 거의 그대로 얼굴에 드러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그분들에게 돈 안 되는 일, 고생스러운 일,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나와 상관없는 일일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사님들의 이어지는 이야기가 내 예상과는 참 많이 달랐다. 기사님들의 말씀 중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옛날에는 예술한다는 사람 보면 돈도 안 되는 거 쓸데없이 왜 하나 싶었는데, 요새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일 하는 대단한 분들이구나 싶어요. 좋은 일 하시네요.”

“참 재미있는 일 하시네요.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웃어주고 울어주고 하면 세상에 그것보다 신나는 게 어디 있을까? 뭐 돈까지 많이 벌면 물론 금상첨화겠지만!”

“대구가 옛날에 비하면 경제적으로야 많이 밀려났지. 돈 벌 게 없잖아요. 그렇더라도 요즘에는 나 대구 산다 카기가 덜 민망하지. 돈은 좀 덜 벌더라도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고 그렇거든요. 외지에서 오신 손님들하고도 얘기를 해보면, 이제 그게 우리 대구 색깔이 된 거 같아. 여기도 봐요. 이렇게 차 타고 지나가면서 그림도 볼 수 있고. 참 좋잖아요?”

사흘 연속으로 기사님들이 들려주신 이야기에, 시민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동인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생 끝에 성공한 스타들의 성공담이 방송매체에 많이 노출된 까닭일 수도 있다. 절대빈곤의 시대가 끝난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기에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뛰어온 문화예술분야 정책, 행정, 기획, 창작자들의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예술에 대한 거리감 불식, 시민 삶의 질 향상, 자긍심 고취’와 같이 문서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았던 이상들이 조금씩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 같아 참 즐거운 3일간의 귀갓길이었다.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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