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세상읽기] 어버이날을 맞아…

  • 천윤자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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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9   |  발행일 2018-05-09 제14면   |  수정 2018-05-09
[시민기자 세상읽기] 어버이날을 맞아…

지난해 시아버지를 떠나보냈다. 늦둥이로 태어나 20대에 아버지를 여읜 내게는 친정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어쩌다 부부 갈등이 생길 때에도 당신 아들보다 내편이 되어주셨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힘든 시기를 살아냈고, 6·25전쟁에 참전해 죽을 고비도 넘기셨다.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이태 전 생신날 집 근처 식당에서 식구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데 시아버지는 평소와는 다르게 말쑥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 대신 큼지막한 메달을 목에 걸고 나오셨다. 우리 모두의 시선은 메달에 고정됐다. 시선을 의식하셨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메달을 들어 보이며 국가유공자 메달이라고 하시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유언에 따라 호국원에 모셨다.

생전에 시아버지는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이었다. 여든을 넘기고도 농사일을 할 만큼 부지런했고, 알뜰하게 모아 저축을 하셨다. 3대독자로 부모님과 여동생 다섯, 당신의 오남매를 거느린 가장으로 손톱이 자랄 틈도 없이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덕분에 시골에서 제법 농토를 일궈가며 식구들을 건사했고, 그런 당신의 삶에 자부심도 강했다.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노후걱정을 시키지 않겠다며 투병하는 동안 병원비도 꼬박꼬박 당신의 통장에서 지불했다.

주변에서 유산상속 문제로 자녀들 간 불화가 일어나는 게 볼썽사납다며 일찌감치 나름대로 정리를 해두셨다. 그랬기에 자녀들 중 누구도 유산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시아버지의 미처리 유산상속을 집행한다며 모이라는 시숙의 호출을 받았다.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미처리 상속분이 공개됐다. 시숙은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임종 전 폐결핵에 감염됐다고 했다. 전염성이 있는 병이라 국민건강관리 차원에서 간병한 식구들 모두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단다. 폐렴인 줄 알았는데 결핵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돌아가신 후 밝혀졌다고 했다.

시숙은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이라 생각하고 병원에 가서 모두 검진을 받자고 했다. 온 집안 식구가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다. 시누이와 시숙·시동생이 잠복결핵환자라는 통보를 받았다. 잠복결핵환자는 발병은 되지 않았지만 이후 몸이 쇠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발병 위험이 있어 수개월 동안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실제 몸 안에 적은 수의 결핵균이 들어와 있지만 소수의 균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 잠복한 상태로만 있기 때문에 남에게 전파되지는 않는다며 놀란 우리를 안심시켰다.

시누이와 시숙·시동생은 검사 결과에 따라 열심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 독한 약 복용으로 어지럽기도 하고 간혹 구토 증세까지 경험하지만 덕분에 술과 담배는 생각도 할 수 없고 건강을 더 챙기게 됐다며 아버지가 주신 유산에 감사한다고 했다. 가장 가까이서 시아버지를 모셨던 효자·효녀에게 유산이 돌아간 셈이다. 나 자신이 자꾸 부끄러워지는 어버이날이다.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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