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과 정안인이 함께 책 읽고 사유를 나누다

  • 글·사진=천윤자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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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5   |  발행일 2018-07-25 제12면   |  수정 2019-01-16
18년 역사 빛소리독서회
매달 수성도서관서 열려
20180725
빛소리독서회 회원들이 지난 7일 대구 수성도서관 시각장애인실에서 안소영 작가의 ‘시인 동주’를 주제로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눈으로 책을 읽는 사람과 귀로 책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해의 폭을 넓히며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 합니다.”

시각장애인과 정안인(正眼人·눈이 정상인 사람)이 함께하는 ‘빛소리독서회’는 매달 첫째 토요일 대구 수성도서관 시각장애인실에서 독서토론회를 열고 있다.

토론회마다 정연원 회장, 이위경 총무를 비롯해 김상환·이태호·김세돌·이경희·맹영숙·황진이·이경숙·박재형·김진섭·박지평 회원 등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시각장애인과 정안인이 각각 절반을 차지한다. 18년이란 짧지 않은 역사를 이어오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책을 통해 함께 생각을 나누면서 결혼으로 이어진 커플도 생겼다.

지난 7일 모임에서 토론한 책은 안소영 작가의 ‘시인 동주’. 이 총무의 진행으로 시작된 토론은 자못 진지했다. 대구 출신인 작가 소개와 책 내용 요약 발표가 있었고, 한 회원이 윤동주 시를 낭송했다. 시인이자 문학박사인 김상환 회원은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 윤동주 시인의 평전에 가깝다. 한 인간의 내면 풍경과 상처를 탁월한 문장력으로 잘 묘사했다. 책을 읽는 동안 부재와 죽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이경희 회원은 “일제 강점기 우리 언어로 아름다운 시를 쓰다 이국의 감옥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젊은 시인,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달 독서할 책도 정했다. 회원들은 ‘정약용의 여인들’(최문희)로 토론할 예정이다.

1급 시각장애인인 정 회장은 “수성도서관은 대구에서 유일하게 시각장애인실이 있는 도서관이다. 녹음도서가 많이 구비돼 있고, 자원봉사자들이 녹음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춰져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독서회에 정안인들이 함께 참여해 진행을 맡고 간식준비도 해줘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정안인이 도움만 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맹영숙 회원은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읽는 시각장애인 회원으로부터 깊은 사유의 세계를 배운다. 회원 가운데 시인도 있고 문학, 철학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 있어 수준 높은 토론회가 되고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박영미 수성도서관 시각장애인실 담당 주무관은 “독서회가 자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정안인도 많이 참여한다. 관심 있는 시민에게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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