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性역할 거부한다 ‘탈코르셋’‘탈갑옷’ 확산

  • 유승진,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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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2 07:56  |  수정 2018-08-02 08:05  |  발행일 2018-08-02 제20면
2016년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나체 사진 유출,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 성추행 의혹사건까지 남녀의 성대결이 사회문제로 커지고 있다. 워마드·일베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넘어 이제는 오프라인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남녀의 갈등은 ‘탈코르셋’과 ‘탈갑옷’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탈(脫)코르셋’은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 운동을 말한다. ‘탈(脫)갑옷’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남성에게 강요되는 남성성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는 “‘탈코르셋’과 ‘탈갑옷’이 특정 행위를 하지 말자는 지엽적인 것으로 갈 것이 아니라 성차별에 대한 개념과 가치, 규범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은 획일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탈코르셋

20180802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의 반라 시위가 있었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로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 여성의 나체 사진을 자유롭게 게시할 권리를 주장하는 누드시위 현장이었다. 이들은 ‘여자가 더우면 웃통 좀 깔 수 있지’ ‘브라 없는 맨 가슴을 꿈꾼다’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탈코르셋 운동의 시작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1968년 9월 미국 애틀랜틱시티 미스아메리카 대회에서 벌어진 퍼포먼스는 지금의 탈코르셋 운동과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회장 밖에서는 이 대회를 반대하는 200여 명의 여성이 ‘자유의 쓰레기통(Freedom Trash Can)’이라고 적힌 쓰레기통에 치마와 속옷, 가짜 속눈썹 등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탈코르셋 운동이 2018년 한국에서, 그것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확대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탈코르셋’을 검색하면 6천500여개의 ‘탈코르셋’인증샷이 올라온다. 일부러 부러뜨린 립스틱, 자른 머리카락이 있는 바닥 등 다양하다.

주로 20대 젊은 여성들이 ‘탈코르셋 인증’ 게시글을 올린다. 취재진은 이들에게 이런 게시글을 올린 이유를 메시지를 통해 물었고, 몇몇이 답변을 보냈다. 인스타그램에 안경을 끼고 숏커트로 자른 머리를 올린 20대 중반의 대학생 A씨는 “어느 날 렌즈를 빼고 안경을 쓰고 학교를 갔다. 머리는 정리하지 않고 모자를 썼다. 근데 주변 사람들에게 ‘시험 기간도 아닌데 왜 그렇게 왔느냐’는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동기 남학생들은 편하게 잘 다니는데 왜 자신의 편한 모습이 지적을 받는지 의아했다. 그래서 며칠 고민하다가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게 됐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다니기로 결심했다는 B씨는 “꽉 조이는 속옷으로 인해 불편했다. 속옷도 아름다움이라는 그런 인식도 싫고, 무엇보다도 나도 남자들처럼 편하고 싶었다”고 탈코르셋 운동을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김민정 나쁜 페미니스트 대표는 “‘여자라면 이런 것들을 했어야지’라고 했던 사회에 ‘왜 여자라면 그것을 해야 하는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유의미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자유로운 나를 찾아가는 시작과 과정”이라며 “‘무엇을 하지 말자’를 넘어 나라는 존재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지의 그 범위를 더욱 넓혀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녀 성대결 사회문제로 확산
  남의시선 의식하지 않는 여성
  통념적 남성성 거부하는 남성
  탈코르셋·탈갑옷 운동에 동참
  인스타그램 게시물 6천500개

  “특정행위 거부 지엽성 벗어나
    다양성 인정하는 과정 되어야”


◆탈갑옷

여성들의 ‘탈코르셋’이 확대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선 ‘맨 박스(Manbox)’를 부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작가 토니 포터의 책 제목이기도 한 ‘맨 박스’는 최근 남성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탈갑옷’과 같은 개념이다. ‘탈갑옷’은 웹툰 ‘남자는 갑옷을 입는다’에서 나온 표현으로 웹툰에서 갑옷은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강요를 뜻한다.

직장인 남성 이모씨(33)은 최근 탈갑옷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씨는 “여성들이 여성성을 강요받는다고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남성들도 남성성을 강요받는다. 회사에서 이동 시 운전은 항상 남자의 몫이고, 회식을 할 때도 고기는 항상 남자가 굽고, 2차를 잡는 것도 항상 남자의 몫”이라며 “남녀평등 시대에 여성에게는 강요하지 않으면서 남자에게는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이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남성성을 거부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박모씨(25) 역시 “학교에서도 남자에 대한 역할이 있다.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은 항상 남자의 몫이다. 불만을 이야기하면 ‘남자가 소심하게’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학교에서도 여학생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왜 남성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송혁 대구여성가족재단 연구원은 “탈코르셋과 탈갑옷이 대결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갑옷과 코르셋은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성차별이라는 공통의 지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남성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갑옷을 벗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여성다움을 탈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여성이 불편한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남성도 갑옷을 입고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이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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