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더위에…직장인 ‘배달 점심’ 바캉스 대신 ‘百캉스’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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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8 07:28  |  수정 2018-08-18 09:15  |  발행일 2018-08-18 제6면
[토요일&] 폭염, 경제 패턴도 바꿨다
20180818
기록적인 폭염으로 여름철 대구 경제의 패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는 폭염을 잘 활용해 축제 등을 만들거나 관련 문제 해결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낼 경우 혁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청에서 마련한 폭염축제의 한 장면. <영남일보 DB>

올여름 폭염은 ‘111년만’이란 표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처음이라는 이야기다. 1907년 여름은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고 순종이 즉위한 때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중에 이보다 더 무더운 여름을 보낸 기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될 정도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무더위는 생산·유통·소비구조 모두 변화를 주면서 경제에도 큰 변화를 줬고, 앞으로 이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숙제도 던졌다. 다행히 대구의 경우 ‘대프리카’‘대구=전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포지셔닝된 상태인 만큼 폭염을 또 다른 기회로 활용하면 경제문제를 넘어서 폭염에 따른 향후 국가적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폭염으로 녹아내린 경제 패턴

17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의 폭염일수는 27.0일로 평년(8.2일)보다 3배 이상 많았다. 특히 1901년 이래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기상재해로 기록된 1994년의 폭염일수보다도 0.8일이 더 많았다. 셋째로 폭염일수가 많았던 2004년(15.4일)과 비교하면 2배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 열대야 일수는 14.8일로 평년(4.1일)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더욱이 대구의 폭염일수는 34일로 광주(35일)에 이어 전국에서 둘째로 많았다.


사무실 나가면 더워 안에서 식사해결
배달대행업체 이용건수 크게 늘어
백화점 식품·전자제품 매출도 신장
전통시장은 작년보다 손님 발길 줄어

“대구‘대프리카’이미지 기회로 활용
의료·건축 등 관광상품 개발해야”



이 같은 무더위 탓에 여름철이면 반복되던 경제 패턴은 올 들어 끊겼다.

당장 직장인의 점심 풍경이 달라졌다.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을 떠나기 싫어서, 정확히 표현해서는 밖에 나가는 자체가 두려워진 탓에 ‘배달음식’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배달대행업체 바로고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점심시간(오전 11시~오후 1시) 식사 배달요청 건수는 32만4천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9.0% 급증했다.

이런 탓에 불을 사용하는 식당에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3산단 인근에서 돼지찌개 전문점을 운영하는 박모씨(47)는 “손님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라며 “6월 말부터 2명이던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모두 내보내고, 주방장 1명만 일하는 데도 손님이 없어 집에 돈 한 푼 가져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름철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줄면서 백화점과 홈쇼핑의 매출도 늘어났다.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까지 동해안 93개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 수는 658만3천99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1만8천여 명(14.5%)이나 감소했다.

이 때문에 대구백화점의 지난달 영업실적은 2%대로 신장했다. 2016년 12월 대구신세계백화점 오픈 이후 전년 대비 감소세를 이어가던 대백이 폭염 덕에 신장세로 돌아선 것. 특히 폭염으로 바캉스를 가지 않은 이들이 백화점 식당을 찾거나 간편식을 구매해 집에서 먹는 경우가 늘면서 식품판매가 10%가량 증가했다. 또 무더위로 에어컨 등의 판매가 늘면서 생활가전 매출도 15%가량 신장했다. 롯데백화점 상인점 식품관 푸드코트의 지난달 1일부터 25일까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이상, 방문 고객 수도 15%가량 늘었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통상 바캉스 시즌이 되면 고객들이 휴가지로 떠나면서 매출이 크게 줄어드는데 올해는 손님들이 늘면서 영업실적이 늘었다”면서 “통상 8월 중순이면 여름옷은 빠지고 가을 옷이 팔리기 시작하는데 무더위가 길어지면서 이런 패턴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가을 매출이 오히려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등은 특수를 누렸지만 서문시장 등은 매출 감소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케이드 공사 등으로 비는 피할 수 있지만 무더위는 피하기 힘든 구조 탓이다.

서문시장상가연합회 김영오 회장은 “서문시장에서만 40년가량 일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더위 때문에 고생했을 정도로 무더웠다”면서 “손님들이 줄다보니 서문시장의 경우 매출이 전년 대비 10%가량 줄었다”고 했다. 건설현장의 경우 근무 시간을 앞당기는 것으로 더위를 피했다.

일반 민간건설 기업은 37℃ 이상이면 건설현장 공사 전면 중단, 35℃ 이상은 45분 작업 후 15분 휴식 규정을 새롭게 만들었고, 일부는 공사장 근로자들의 점심시간을 1시간 연장하기도 했다.

대구지역 건설업체인 <주>태왕은 출근시간을 오전 7시에서 6시로 한 시간 앞당기는 대신 오후 4시까지 하던 현장 업무는 오후 1시에 마치도록 했다.

석용택 태왕 건설본부장은 “대구의 무더위는 예전부터 유명했던 탓에 여름철이 되면 출근 시간은 당기고, 전체 작업 시간은 줄이는 식으로 현장 근로자의 건강과 업무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프리카, 폭염을 경제적으로 활용해야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1994년 폭염으로 인한 초과사망자 수(하루 평균 사망자 수를 초과한 실제 사망자 수)는 3천384명이다. 1901년 이래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기상재해로 기록됐다. 올해 전국 곳곳의 최고기온은 이미 1994년을 넘어섰다. 가히 재해 수준이다. 올 들어 직접적인 온열질환 사망자로 집계된 인원은 지난 8일 기준 44명에 이른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온열질환 때문에 사망했다고 규명된 사망자 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폭염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사망한 수는 평년보다 3천188명이나 늘어난 상황이다. 올해 폭염 인명피해가 1994년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폭염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은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으로 2030년에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2조달러(약 2천235조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고, 미국 UCLA대는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노동생산성은 2%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런던정치경제대학 자료에 따르면 기온이 적정한 수준을 벗어날 경우 실내에서 일하는 사무직 근로자도 실수가 잦아지고 행동이 느려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연간 19억~23억유로(약 2조9천819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폭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대구는 이런 폭염을 잘 활용하면 혁신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가 폭염 문제에 먼저 대처하고 그 결과를 각종 연구나 기업 유치에 활용할 경우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극에 가서도 에어컨을 팔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처럼 “대구 폭염도 이겨냈다”는 식으로 활용하자는 것.

특히 단순히 폭염 자체를 관광상품화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대구의 의료인프라를 활용, 폭염에 강한 체질을 가진 대구사람을 분석해 폭염질환 예방에 나서거나 전기차 활성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소시킬 수 있을지 등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즉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를 폭염 관련 산업의 테스트베드, 다시 말해 대구시 전체를 실증단지로 만들어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내면 대기업 투자는 물론 중앙정부 차원의 사업 확보도 가능하다는 것.

건축산업을 예를 들면, 무더위에 견딜 수 있는 건축방식, 그리고 유리창·단열재·창호·벽돌 등 건축에 필요한 기초 자재 모두를 폭염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런 방식과 자재로 대구지역에 건축물을 세운 뒤 실제 사람들이 살면서 그 효과를 검증해보자는 것이다.

김영철 계명대 교수는 “이상 기후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다. 특히 폭염 관련 문제는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가 그 문제를 해결할 경우 확장성도 가장 크게 될 것”이라면서 “거기다 전기차 활성화를 통해 대기오염 문제까지 해결할 경우 전기차 선도도시의 명분은 물론 환경문제 해결에 필요한 다양한 해결방안을 대구에서 찾게 된다. 기업은 물론 정부도 여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호 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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