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중국 베이징 루쉰박물관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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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1   |  발행일 2018-09-21 제38면   |  수정 2019-03-20
우리말과 전통 사랑한 ‘한창기’와 중국인이 사랑한 작가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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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박물관의 상설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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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루쉰박물관 로비에 있는 루쉰육필원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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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루쉰출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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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 창간호·폐간호와 ‘샘이깊은물’ 창간호 (왼쪽부터)
진심 어린 말과 글이 줄어들고, 의무감 없는 무심한 메시지만 비선형(非線型)으로 흐르는 시대에 박물관을 찾아 나서는 까닭은 ‘박물’의 의미가 물건이 아니라 이야기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부터였다. 그래서일까, 감동이 귀한 이 시대에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느끼고, 침잠하는 곳’으로, 역사와 이념의 총화(總和)인 박물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각별하다. 특히 지난 10년간 열심히 찾아다닌 나에게는 그랬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창기 선생 유물
76년 한글전용 가로쓰기 잡지 첫 창간
한자말에서 순우리말·토박이말 탄생
책 역사 한획‘민중자서전’등 기획물
소장품 6500여점 박물관에서 살아나
우리 문화 볼거리…방문객에 큰 울림

‘아Q정전’‘광인일기’ 루쉰
신문화운동 전설…국내 오랜세월 인기
책 속에서 뽑아낸 문구로 빼곡한 로비
사용한 책상과 의자·작품 새긴 목판화
느리게 지나가는 풍경처럼 스치는 생애
곳곳에서 루쉰이 내게 말 걸어 오는 듯


◆우리 문화 한 획 그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

새벽같이 출발해서 순천으로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순천만 IC를 나와 2번 국도를 오르다가 연동삼거리에서 민속마을길로 접어든다. 쌍지삼거리를 거쳐 17㎞ 남짓,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찾아간다.

최고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일즈맨에서 우리 토박이 문화를 애써 지키고 되살리는 파수꾼이 되었던 한창기 선생(1936~97)의 치열한 생애가 녹아 있는 곳, 뿌리깊은나무박물관. 뿌리 깊은 인간을 찾아간다면 쉽게 이해가 될까. 그 길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용비어천가’의 한 대목을 떠올리면서 인기드라마 촬영현장이 박물관으로 변했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마 없었으면 좋겠다.

5년의 연구 끝에 마침내 1976년 3월 창간된 최초 한글전용 가로쓰기 잡지 ‘뿌리 깊은 나무’. 어려운 한자말이 순우리말, 어떤 때는 당대인에게도 잊혔던 토박이말로 다시 태어났다. 그 지면의 글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고 싶을 만큼 바르고도 유려했다. 이후 ‘뿌리 깊은 나무’는 한국의 잡지역사를 나누는 분수령이 되었다. 기라성같은 필진에서부터 우리 삶의 구석구석 생각지도 못했던 글감을 찾는 기획력, 단어 하나, 사진 한 장에도 심혈을 기울인 단아한 편집, 그건 감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센 바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나무는 1980년 8월, 신군부에 의해 강제폐간되고 말았다.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문화판을 배우고, 그 길을 푯대삼아 가고자 했던 청춘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망하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고집한 잡지의 발행인 한창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1984년 11월, 결이 비슷한 여성지 ‘샘이 깊은 물’을 창간하고 버티었다. (1997년 그는 유명을 달리했지만 ‘샘이 깊은 물’은 2001년 11월 창간 17주년 기념호를 끝으로 아직 휴간 중이다.)

그 사이 펴낸 기획물 또한 우리 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전통사회의 황혼에 선 사람들을 찾아 그 삶의 궤적을 기록한 ‘숨어사는 외톨박이’, 생생한 토박이 입말로 살려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 ‘민중자서전’ 시리즈 20권은 지금도 책 좀 본다는 이들의 애장서 목록 맨 앞을 차지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인문지리지라 할 ‘한국의 발견’ 시리즈 11권은 당시 기자와 PD들이 늘상 옆에 끼고 보던 책이었다. 그는 또 사라져가는 판소리 보급과 보존을 위해 판소리 감상회를 100회 넘게 마련했으며, ‘뿌리깊은나무 판소리전집’을 냈다. 이를 통해 우리 판소리에 대한 인식을 바꾼 지식인이 어디 한둘이랴. 이 땅에 뿌리를 둔 모든 것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갖고, 전통과 문화를 선별해 다듬어가며 새로운 전통을 발명하려 애썼던 한창기. 너무나 일렀던 그의 죽음에 비해 그를 기억하는 공간의 설립은 무척 더뎠다. 순천시에 기증한 그의 분신 같은 6천500여 점의 소장품은 그의 유지를 받든 주변 사람들의 노력으로 2011년 뿌리깊은나무박물관으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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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작심하고 모은 듯 하나같이 정겨운 유물들이 빼곡하다. 우리 문화를 사랑했던 마음의 끝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거리는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책장마다 그의 호흡이 갈피갈피 끼워져 있고, 판소리 대목마다 그의 호방한 추임새가 숨어있다. 또 전통옹기에는 번득이는 유약의 흔적처럼 그의 애정 어린 눈빛이 가득 묻어있다. 그가 쓴 ‘뿌리 깊은 나무’ 창간사에서 그 핵심을 읽는다.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맞을 슬기를 주는 저력 그것은 곧 문화입니다’.

어떤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무엇 하나 돈 될 것 같지 않은 유물들만 모여 있는 이곳에서 저녁 무렵 수오당의 긴 그림자를 밟고 서서 ‘널리 알리지 않았어도 알고 찾아 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우리 땅 낯선 이들에게 ‘가당찮은 생떼’를 써본다.

◆루쉰의 생애

베이징 판자위엔 새벽시장에서 루쉰의 미니어처 하나를 100위안에 샀다. 이건 득템이야! 한족 청년의 꾀죄죄한 손에서 넘겨받은 루쉰을 호텔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어 말려두고 기분 좋게 박물관으로 향했다.

‘광인일기’ ‘아Q정전’의 작가 루쉰(魯迅, 1881~1936)을 모르기는 쉽지 않다. 열병처럼 청춘을 앓던 사람들이 읽고 기운을 차렸던 중국작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그러기에 중국 어느 도시든 쑨원을 기억하는 중산대로가 있듯 루쉰이 머문 곳마다 박물관이나 공원이 있다. 그렇다면 베이징의 루쉰박물관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루쉰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그가 12년간 지냈던 베이징에서 그를 만날 수 있는 루쉰박물관은 그의 사합원 옛집(魯迅故居)과 붙어 있다. 로비에는 그의 책 속에서 뽑아낸 문구들이 빼곡하고, 구겼다가 펴진 듯한 ‘광인일기’ 육필원고를 이미지화한 석조조형물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전시장 입구 큰 벽에는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길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밟고 나온, 오직 가시덤불만 있는 곳에서 헤쳐 나온 것이다’(‘수감록-생명의 길’ 중에서)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생애의 길을 함께 걷게 한다.

박물관에서는 느리게 가는 버스의 차창 밖 풍경처럼 그의 한 생애가 지나간다. 태어난 곳, 치열한 생각을 벼렸던 곳. 그리고 되돌아온 자리. 그는 도처에 순간의 기억으로 살아있었다. 전시실은 모두 그가 생활했던 지역별로 시기를 나누고, 그가 사용한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두었다. 샤오싱(紹興) 1881~1898, 난징(南京) 1898~1902, 일본유학 1902~1909, 베이징(北京) 1912~1926, 샤먼(廈門) 1926~1927, 광저우(廣州) 1927, 상하이(上海) 1927~1936.

유명인의 이름을 단 기념관이 유물이나 저작, 사진자료 등을 통해 한 인물의 생애를 보여준다면 루쉰박물관은 대단히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방식으로 그를 보여준다. 주인 잃은 의자와 책상, 그를 ‘사상적인 스승’으로 여기는 중국의 유명 판화작가들이 루쉰의 작품을 새긴 목판화 작품들, 그의 데드마스크는 그가 지상에 더 이상 없음을 자꾸만 상기시켜준다. 설명적이지 않음에도 곳곳에서 루쉰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그의 얘기를 들려준다.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된 그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전시장 서가. 한국출판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루쉰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출판물이 없음을 나는 여러 사람에게 오랫동안 투덜거렸다. 하지만 최근 이를 알게 된 베이징의 한국문화원 원장이 서둘러 챙겨 기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안도했다. 한국의 청년들이 루쉰을 기억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만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루쉰의 작품은 오랫동안 읽혔고, 지금도 인터넷서점 검색창에 ‘루쉰’이라 치면 300여 종의 책이 솟구쳐 오른다. 게다가 루쉰작품의 완역본이, 1만3천쪽이 넘는 20권 전집으로 11년 만에 최근 발간된 것은 그의 현대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발간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루쉰을 읽는다. 이 말에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는 실존적 울림이 담겨있다’고. ‘루쉰은 일찍부터 나의 문학적 본보기’라 고백했던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중국정부가 ‘문화외교’의 일환으로 자국의 대표작가 루쉰의 이름을 걸고 외국작가에게 주는 제1회 루쉰문학상(1988)을 받은 바 있다. 그의 데드마스크와 그의 관을 덮었던 ‘민족혼’이라는 글씨가 적힌 명정(銘旌), 그리고 ‘아Q정전’의 판화집을 끝으로 전시는 끝난다. 몇 년 전부터 그곳이 베이징신문화운동기념관과 합병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문화운동의 전설격인 그를 생각하면 관람의 시너지효과는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대구교육박물관장)

▨순천시립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 :전남 순천시 낙안면 평촌3길 45. (061)749-8855

▨ 베이징 루쉰박물관: www.luxun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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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규 생가인 ‘수오당’.
한창기 선생이 매료된 거문고 명인 백경 김무규 고택 ‘수오당’
구례 절골마을서 옮겨와 복원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전남 구례 절골마을에서 옮겨와 복원된 단소와 거문고 명인 백경 김무규 선생(1908~94)의 고택과 부속건물 여덟 채가 있다. 한낱 미물인 까마귀의 효행을 보고 ‘까마귀 보기에도 부끄럽다’는   의미의  당호,   수오당(羞烏堂). 1980년 한창기는 이 고택을 보고 한순간에 매료되었고, 그 인연으로 26년 후인 2006년 뿌리깊은나무재단에서 매입, 이곳으로 이건되었다. 영화 ‘서편제’에서 백경 선생의 거문고 연주 촬영지였던 수오당 사랑채 누마루와 맞은편의 뿌리깊은나무 전시관은 두 사람의 전통문화사랑으로 오래전부터 한 몸인 듯 조화롭다. 서로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듯 완벽한 모양새를 갖추고 방문자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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