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학교밖 세상 택했어요”

  • 이효설,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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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1 07:48  |  수정 2018-10-01 08:59  |  발행일 2018-10-01 제15면
■ ‘학교밖 청소년’ 윤태경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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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경양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것을 배우기 위해 고교 진학을 하지 않고 대안학교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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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국제청소년평화세미나에서 찍은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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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즈커피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함께 받는 친구들과 찍은 기념사진.(맨왼쪽) <윤태경양 제공>

‘코이의 법칙’(Koi’s law). 코이라는 잉어는 어항에 넣어두면 5~8㎝밖에 자라지 않지만, 연못에서는 15~25㎝ 자라며, 바다로 보내면 90~120㎝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환경에 따라서 작은 물고기로 살기도 하고 대어가 되기도 하는 신기한 물고기다. 노는 물에 따라 물고기의 크기가 달라지듯, 사람도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아가느냐 그저 순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 코이의 법칙이다.

지난달 21일 오후 2시, 동성로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친 학교 밖 청소년 윤태경양(18)을 만났다. 윤양은 “학교 안, 대한민국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에서 즐겁게 성장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2년 前 일반고-외국어고 진학 갈림길서
“학교안보다 더 넓고 다양하게 배우고 싶어”
대안학교 선택해 국토대장정 등 각종 도전

올해는 검정고시 합격 이어 시민단체 활동
청소년센터 ‘바리스타과정’ 직장체험까지

“‘자퇴자’ ‘학교 안다니는 애’ 낙인 아쉬워
하고픈 것 맘껏 해보고 국제기구 활동 꿈꿔”


◆스스로 미진학 결정해 대안학교로

“윤태경, 넌 미진학이지?”

2년 전 대구의 한 중3 교실, 담임 선생님이 반 학생 전원을 세워 놓고 진학 고교를 체크했다. 일반고, 자사고, 특목고 순으로 학생들이 자리에 앉자, 마지막에 윤양이 혼자 서 있었다. 윤양이 “네”라고 대답하자 선생님이 나갔고, 반 친구들의 관심이 일제히 윤양에게 쏠렸다. “태경아, 너 학교 안가? 외고 가고 싶다 했잖아!”

윤양은 고교 진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시 윤양도 다른 친구들처럼 진학 고민이 많았다. 일반고를 갈 것인지, 대구외고를 갈 것인지를 놓고 마지막까지 갈등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면 그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윤양은 성적이 제법 좋았고, 외국어에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외국어 공부 말고도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그때 어머니가 “대안학교는 어떠니”라고 물었다. 파격적(?)이었지만 솔깃했다. 그는 “우리 엄마는 선택의 폭이 다른 엄마보다 매우 크다. 그리고 수용능력이 남다른 분”이라며 “그런 엄마의 제안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결국 대안학교에 갔다. 그 이유에 대해 “더 넓게 보고, 다양한 것을 배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입시교육뿐인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나와 맞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도 했다. 1년 과정의 대안학교에서는 지구시민교육, 국학, 국토대장정 같은 프로젝트 수업에 참여했다. 올해는 여행, 아르바이트, 시민단체 활동, 일본어 공부 등을 하며 미래를 준비 중이다. 지난 4월에는 고교 검정고시를 고득점으로 합격했다. 한달 반 정도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 결과다.

◆“학교 밖에는 기회가 더 많았다”

윤양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실천한다. YMCA 청소년 기자단으로 활동 중인 그는 얼마 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청구고를 찾아 독립유공자 후손을 인터뷰했다. 앞서 지난 8월 초에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국제청소년평화세미나에 참여해 대만, 일본, 하와이 등에서 온 친구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알게 된 일본 친구들과 매일 SNS로 수다를 떨며 안부를 전했으며, 얼마 전엔 함께 일본 후쿠오카, 구마모토 여행도 하는 사이가 됐다. 덕분에 더듬더듬 하던 일본어 실력이 확 늘었다. “라인(line·글로벌 모바일 메신저)으로 수다를 떨려면 기본적 표현을 일일이 번역기로 찾아 올려야 한다. 매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말문이 터졌다”고 했다.

유튜브에 있는 명강사들의 강연은 윤양에게 건강한 자극제다.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학교 안 가고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희망을 얻을 때가 많다고 했다. 김미경TV채널, 명견만리, 웹드라마 등을 좋아한다. 일본어 회화도 일본 인기 아이돌인 ‘아라시’의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익힐 때가 많다. 그는 “영상과 소리를 통해 익히니까 어학도 암기공부가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수성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서 바리스타 과정 훈련에 참여하며 용돈을 번다. 직장 체험을 하며 협업을 배우고, 해외 여행 경비도 마련한다. 아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지난 여름엔 키즈 카페에서 일했고, 부모님 지인 아들의 과외도 했다.

◆아쉬움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배움 더 의미있어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윤양은 “교복, 급식, 친구들…. 학교 밖에서 생활하면 이런 좋은 것들을 못 누린다. 얼마 전 대구공항에서 수련회를 떠나는 고교생들을 보며 부러웠다. 하지만 난 그날, 국제선 타고 혼자 일본여행을 갔다. 학교 밖 청소년의 특권”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정말 많지만, 그래도 학교 밖에서 스스로 헤쳐나가고 선택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학교 밖 청소년들을 ‘자퇴자’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고도 했다. 자신을 그저 ‘학교 안 다니는 애’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낙인도 피할 수 없단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또래와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어느 대학에 갈까’를 걱정하기보다 ‘지금 당장 대학에 가야 할까’를 고민한다는 것. 아직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게 고민의 이유다. 그는 “영어, 일어를 열심히 해서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다.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 아직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또래 친구들에게 한마디를 더했다. “자기 자신을 불신하지 말 것, 무서워도 한번 도전해 봐!”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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