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대구 자영업자, 탈출구 없나] (중) 베이비붐 세대 창업시장 지속 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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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호기자 손선우기자
  •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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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대 은퇴자 창업 내몰려…10명 중 6명이 실패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건너편 골목에는 11일 현재 8개의 커피전문점이 늘어서 있다. 이들 커피전문점은 가격 경쟁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1천500~2천5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다른 커피점보다 가격을 낮춰야 고객에게 외면받지 않는다. 경쟁 과열로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된다”고 토로했다.
국내 자영업자는 지난해 568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1.3%(가족 종사자 포함 25.4%)를 차지한다. 자영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최근 자영업은 과당경쟁, 경기악화, 최저임금 상승, 온라인 쇼핑 등 복합 요인으로 인해 역대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자영업의 부진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된 만큼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창업전선으로 내몰려

대구에서 작은 규모의 유통업을 하는 김모씨(60). 그는 15년째 ‘영세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1982년 지역 금융기관에 입사해 연봉 4천800만원을 받으며 22년간 근무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안정된 평생직장’을 잃었다. 남은 재산은 퇴직금 5천만원과 시가 1억원짜리 집 한 채가 전부였다. 거리로 나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창업’밖에 없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안정된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정리해고’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해고된 많은 이들이 다시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자영업에 뛰어들었으며, 자연스레 자영업의 과당경쟁이 시작됐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수는 1997년 590만1천명에서 이듬해 561만6천명으로 4.8% 줄었지만, 1999년(570만3천명)부터 다시 늘어나 2001년에는 역대 최대 수치인 621만2천명으로 증가했다. 이후 600만명대에서 증감을 반복하다가 2009년 들어 574만9천명으로 줄었다.


정리해고 후 재취업 못하고 자영업 가세
불황에 동종업종 간 경쟁까지 치열해져
온라인 쇼핑 성장도 위기요인으로 한몫
소비트렌드 못읽어 휴·폐업 사례 수두룩



김씨는 한달간 버스를 타고 도심을 돌며 창업 분야를 찾았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창업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그는 지인의 권유로 화훼 관련 유통업을 선택했다. 대구 도심 한복판에 33㎡(10평) 남짓한 크기의 사무실을 냈다. 수완이 없어 창업 첫해와 이듬해는 적자가 났지만 이후부터는 전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연매출 5천만원을 올렸다.

2007~2008년 2년간은 종업원도 뒀다. 사고로 몸을 다친 탓에 대신 일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저임금은 3천480원(월 90만~100만원)에 불과했지만 월급 주기가 빠듯했다. 경기침체로 매출이 전보다 1천만원가량 줄어든 데다 연평균 인건비가 1천200만원 정도 빠져나간 탓에 수익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2016년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뒤 주문은 한달 평균 50건에서 10건으로 줄었다. 현재 그의 한달 수익은 150만~200만원이다. 그럼에도 그의 사업장 주변에 같은 업종의 가게만 20곳이 넘는다.

◆경기악화에 온라인 공세

자영업 경기의 둔화세는 2000년대 들어 이미 본격화됐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이 조사한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 증가율’ 자료에 따르면 1988∼1997년 10년간 영업잉여 연평균 증가율은 12.0%에 달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1998∼2007년에는 2.8%로 뚝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영업 경기는 더 나빠졌다. 2008∼2017년 영업 잉여 연평균 증가율은 1.7%로 떨어졌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는 주로 영세 자영업자의 수익을 의미한다.

자영업자들의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히는 음식·숙박업, 도소매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하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을 보면 음식·숙박업의 영업이익률은 2006년 25.1%에서 2016년 11.4%로 10년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도소매업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7.5%에서 4.2%로 둔화했다.

골목상권을 잠식하는 대형마트에 대한 의무휴업 규제가 도입된 이후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식자재 마트와 같은 대형 슈퍼마켓도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시행된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24개 대형마트 주변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3년 이후 24개 점포 반경 3㎞ 이내 소규모 점포의 매출액 비중은 감소한 반면, 50억원 이상의 슈퍼마켓 매출액 비중은 7.07% 증가했다. 이 같은 대형 슈퍼마켓의 점포 수는 크게 증가했다. 매출액 50억원 이상의 점포 수는 2013년 68개에서 올해 152개로 84개 늘어났다. 5억~50억원 규모의 점포 수도 2013년 대비 모두 늘었지만, 5억원 미만 점포수는 27.93% 감소했다.

반면 대형마트 주변 음식점과 의류 점포의 폐업률은 지난 5년간 130%에 달했다. 연간 폐업률이 모든 지역에서 10%가 넘었고, 음식점은 1년에 4개 중 1개가 폐업했다. 반면 지난 5년 동안 대형마트 주변에는 편의점 점포수가 1.4배 증가했고, 이·미용, 음식점 등의 순으로 많이 늘었다. 기존 점포는 모두 문을 닫고 새로운 상권이 만들어진 것이다.

배달이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한 온라인 쇼핑도 영세 자영업자의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 6월 펴낸 ‘온라인쇼핑 성장이 택배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 보고서를 보면,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의 거래액은 2005년 10조6천억원에서 지난해 78조2천억원으로 7.3배나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온라인 쇼핑 시장이 생겨난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30~80% 급성장을 이뤘다. 2007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로 15% 내외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2022년이면 전체 규모는 189조8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비부머 창업 급증

본격화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의 은퇴는 이미 불붙은 자영업 과당경쟁에 기름을 붓는 셈이 됐다. 70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이들이 대거 창업시장에 유입됐고, 이로 인한 과당경쟁과 불황이 악순환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공개한 전국사업체조사 잠정결과 보고서를 보면 2017년 말 기준 전국 사업체는 402만477개로 1년 전보다 7만285개(1.8%)가 늘었다. 이 가운데 대표자의 연령이 60세 이상인 사업체는 87만5천299개로 1년 사이에 5만1천998개(6.3%) 증가했다. 1년간 늘어난 사업체 수의 약 74%에 해당한다. 은퇴한 고령자들이 소득을 확보하려 창업을 많이 했기 때문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자영업자 수가 빠르게 늘면서 대량 폐업 등 사회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나왔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12년 8월 내놓은 ‘베이비붐 세대 창업 급증: 우려와 대책’ 보고서에는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 급증의 후유증이 지속되는데도 50대는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자영업 창업에 내몰리고 있다. 자영업의 구조적 문제와 내수침체 장기화를 고려할 때 사회적 문제 야기는 불가피하다. 특히 생계형 서비스 부문은 과잉진입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사업을 지속하기 점점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50대의 본격적인 은퇴는 자영업자 증가의 주원인으로 이어졌다. 2011년 50~59세 경제활동인구 수는 519만여명으로, 전체의 20.7%를 차지했다. 2005년에 비해 5.2%포인트 높아진 수치였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자영업자의 비율은 7.5%포인트나 올라갔다. 2011년 50대 자영업자 수는 168만여명으로 전체 자영업자의 30.1%에 달했다. 2005년 이후 처음으로 40대를 앞질러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베이비부머가 자영업 창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향후 5년 뒤인 2023년까지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들 역시 생계와 일자리 때문에 대표적인 자영업 분야인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령층일수록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50·60대 은퇴자 중 창업한 사람의 65.1%가 휴업이나 폐업을 했고 평균 7천만원의 손실을 봤다. 고령층은 투자금액이 큰 반면, 소비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글·사진=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 국내 자영업자 증감 현황 (단위:천명)
연도199719981999200020012002200320042005200620072008200920102011201220132014201520162017
자영업자 수5,9015,6165,7035,8766,0716,2126,0666,1616,1416,1096,0486,0055,7495,6435,6575,7685,7035,7205,6225,6145,682
 <통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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