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러브 인 프로방스’ (로셀린 보스크·2014·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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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30   |  발행일 2018-11-30 제42면   |  수정 2018-11-30
가장 행복한 순간은 평범한 하루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러브 인 프로방스’ (로셀린 보스크·2014·프랑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러브 인 프로방스’ (로셀린 보스크·2014·프랑스)

프로방스의 햇빛과 바람은 얼어붙은 마음도 녹인다는 말이 있다. 프랑스 남동부의 옛 지명인 프로방스는 햇빛, 바람, 라벤더, 올리브 나무 등을 연상시키는 힐링의 장소로 세잔, 고흐, 샤갈, 마티스와 같은 화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곳이기도 하다. 영화 ‘러브 인 프로방스’는 파리지앵 삼남매가 아름다운 프로방스에서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여름을 지내며, 서로가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리브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갑자기 프로방스에 내려온 삼남매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세대 차이의 간격이 너무 커서 할머니의 중재도 소용이 없다. 삼남매의 엄마와 할아버지는 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만난 남매는 ‘꼰대’ 노릇만 하는 할아버지를 못견뎌한다. 10대인 아이들의 관심은 컴퓨터, 그리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느냐 하는 것, 할아버지의 관심은 오직 올리브 농사다. 이들은 매사에 티격태격하지만, 청각장애를 앓는 막내 테오만은 할아버지의 진심을 알고 먼저 손을 내민다. 행동과 말 이전에 숨어 있는, 속 깊은 사랑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의 단절과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조금씩 소통해 나가며 프로방스에서의 추억을 쌓아간다.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는 따뜻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추억의 팝송, 사이먼과 가펑클의 ‘Sound Of Silence’가 흘러나온다. 가족 간의 사랑을 말하는 영화지만, 노래 제목처럼 ‘침묵의 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는 말과 행동에 갇혀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막내 테오를 청각 장애로 설정한 의도가 충분히 느껴진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이 언어는 아닌 것이다. 말 이전의 침묵의 언어에도 귀 기울일 줄 안다면, 관계에 있어 많은 문제가 해결됨을 시사한다. ‘레옹’의 주인공 장 르노가 할아버지 역을 맡아 손주들과 티격태격하지만, 속 깊은 사랑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실제로 프로방스에 살고 있다는 그는 올해 나이 70세로, 투박한 할아버지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프로방스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스페인의 문화와 축제가 그 지역에 공존하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구경거리다.

손자가 만들어준 페이스북 계정으로, 옛 친구들이 할아버지 집으로 몰려오는 장면이 재미있다. 왕년에 히피처럼 살던 그들의 차림새는 여전히 히피 행색이다. 그들은 함께 와인을 마시고, 밥 딜런의 노래들을 부르며 옛 추억에 잠긴다. 나이든 이들이 둘러앉아 ‘Forever Young’을 부르는 장면이 각별하다. 사실 누구나 한때는 청춘이었다. 도무지 어린 시절이 상상되지 않는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도 환희의 순간들, 그리고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청춘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 곳곳을 탐험했던, 이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아이들은 놀란다. 세대 간의 차이로 인해 소통이 전혀 되지 않을 것 같은 노부부와 손주들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오랜만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러브 인 프로방스’를 보고나서 평범함,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관람 열풍을 몰고 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처럼 재능이 특별해서(혹은 상처나 결핍이 커서) 남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보며, 과연 행복한 삶이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능, 특별함보다 평범함, 일상 등의 단어가 더 소중하게 와 닿는 요즘이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러브 인 프로방스’에는 특별함이 없다.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이야기, 사랑으로 서로를 다독여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여름방학의 추억과 정겨운 시골의 풍경이 담긴 따뜻한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장 평범한 일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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