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아파트 시대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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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7   |  발행일 2018-12-27 제31면   |  수정 2018-12-27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방정맞지 않으면서도 살짝 흥을 돋우는 가락 때문이었을까. 1982년 가수 윤수일이 직접 작사·작곡해 부른 ‘아파트’는 노래방에서 ‘18번’으로 인기가 높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파트’ 가사를 흥얼거리던 그 때만 해도 아파트가 그리 많진 않았다. 한데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 비중은 60.6%. ‘아파트 공화국’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1995년 37.7%에서 불과 23년 새 22.9%포인트나 늘었다. 단독주택 비중은 2000년 37.2%에서 2017년 23.1%로 낮아졌다.

아파트가 선호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편리함, 환금성, 투자 효율성은 현대인이 떨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아파트는 14.26% 오른 데 비해 단독주택은 5.3% 상승에 그쳤다. 시세 차익의 비교우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아파트는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는 도시의 바람길을 막고 미관을 해친다. 사위(四圍)에 아파트만 빼곡히 들어선 대도시 풍경은 삭막한 콘크리트 문명을 웅변하는 듯해 왠지 씁쓸하다.

아파트의 기원(起源)을 찾으려면 기원전 3~4세기로 거슬러 가야 한다. 고대 로마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수도 로마엔 많은 인구가 유입됐고 주택난을 겪어야 했다. 주택 부족의 해법이 오늘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인수라(Insura)였다. 초기엔 주로 2·3층짜리 인수라를 지었지만 갈수록 높이가 치솟았다.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 시절엔 20m 이상의 인수라를 허가해주지 않을 정도였다. 로마 대화재 후엔 무려 5만채의 인수라가 로마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로마의 인수라는 서민용이었고 귀족은 넓은 정원이 있는 대저택에 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56년 서울 주교동에 세워진 마포아파트였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69년 지어진 동인아파트. 재건축이 확정된 동인아파트는 내년 말이면 철거된다. 낡은 아파트는 순차적으로 사라지겠지만 훨씬 더 많은 고층 아파트가 신축될 것이다. 아파트 비중이 얼마만큼 확대될지 고층 아파트의 높이는 어디까지 올라갈지 자못 궁금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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