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당선작 심사평]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담담히 말하는 시선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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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2 08:56  |  수정 2019-01-02 09:05  |  발행일 2019-01-02 제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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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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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예비 시인 17명의 시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몇 가지 읽을 수 있었다. 실험적인 시보다 서정적인 시가 우세했으며,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시보다 일상을 포착하거나 가족, 가난 등 서정시의 전통적인 주제를 다룬 시가 많았다. 비정규직, 청년 실업, 성폭력 및 미투 운동 등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고 뜨거운데, 오늘의 시가 시대 현실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시단에 이슈가 별로 없는 현상이 응모작에도 투영된 듯하다.

17명의 작품 중 7명의 작품을 먼저 추렸고, 그 중에서 비교적 고른 완성도를 보인 3명의 작품을 두고 본격적으로 토론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하현’ ‘새가 하는 일’ ‘이름’이었다.

‘하현’은 달이 차고 이우는 것과 만두를 빚는 한 여자의 노동을 겹쳐 놓는 상상력이 흥미로웠다. 달을 보며 “한 여자의 붉은 생애”를 떠올리는 시상의 전개가 설득력이 있기는 했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새가 하는 일’은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 중 가장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였다. “나무는 새가 펴는 우산”이라는 이미지와 나무에서 새와 매니큐어와 우산으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전개가 역동적이었지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부모의 기대치와 어긋난 자신의 생을 들여다본 ‘이름’은 자신의 몸과 헛도는 큰 옷,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담담히 말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가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로 유전되는 가족의 삶과 상처에서 빠져나와 그로부터 달아나는 상상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름’을 호명하기로 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미처 호명하지 못한 예비 시인들에게는 꼭 다음을 기약하자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눈 밝은 선자가 당신의 시를 호명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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