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항거:유관순 이야기’ 고아성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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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8   |  발행일 2019-03-08 제43면   |  수정 2019-03-20
“비범·평범함 공존하는 열일곱 유관순 연기적 욕심보다 진심 다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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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항거:유관순 이야기’로 관객을 찾은 고아성은 여전히 극중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했다. 인터뷰 내내 촬영 당시의 벅찬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인물(유관순)을 연기한다는 건 사실 배우에게 큰 도전이다. 상업영화로 다뤄진 적 없는 가슴 아픈 역사 속 실존 인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그 점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작품이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로 누구보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유관순 열사에 대한 무지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간과했으니 말이다. 유관순 열사를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접해왔다는 고아성 역시 뒤늦은 반성의 의미로 기도하듯 진심을 다해 캐릭터에 접근했다. 100년 전 유관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실제 그가 느꼈을 고민과 번뇌를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유관순을 만들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5일간의 단식도 감행했다. 고아성은 “고흐가 남긴 말 중에 ‘나는 나 이상으로 실재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고 표현하기 위해 내 남은 삶을 다 써도 좋다’는 말이 있는데 내 심정이 그랬다”고 술회했다. 영화는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감옥에 투옥됐던 1년여의 시간에 포커스를 맞췄다. 일제의 갖은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은 강단있는 모습은 물론 그의 인간적인 매력도 담겼다.

서대문 감옥 투옥된 1년여간 포커스
8호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에 부담감
촬영후 숙소에서 열사 생각하며 기도

책 속 짓궂을 정도로 장난기 많기도
소녀가 느낀 보편적 감정으로 풀어내
좁은 옥사 세트, 실제 같아 연기 도움
체중변화 모습위해 5일간 단식하기도
배우들과 3·1 만세 외치는 신에서 울컥

함께 커피마시며 얘기하는 것 좋아해
관객들에게도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


▷상업영화로는 처음 다뤄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상당했을 텐데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뭔가.

“일단 고민을 많이 했다. 혼자서 결정하기 힘들어서 친한 동료배우와 이 고민을 공유했다. 시나리오 줄거리부터 내가 느낀 감정까지 상세히 다 들려줬다. 그랬더니 ‘8호실 이야기는 유관순이라는 인물보다 더 몰랐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였다’며 ‘네가 이 사실을 제대로 부각시켜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출연을 결정했을 때도 연기적 욕심보다는 진심을 갖고 접근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크게 고민됐던 부분이라면.

“방향성은 있었지만 그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우연히 고흐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담은 ‘러빙 빈센트’ 메이킹을 봤다. 이 영화의 제작과 연출을 담당한 분이 10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가장 어려웠던 게 고흐의 그림을 영화 프레임에 맞추는 작업이라고 했다. 가로 그림은 프레임에 맞게 트리밍을 하면 되지만 세로 그림을 프레임에 맞추려면 양 옆의 공백을 다른 뭔가로 채워야 한다. 즉 새롭게 뭔가를 창조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는 거다. 그는 인터뷰에서 ‘고흐 작품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내가 창조해도 될지 엄청 고민되고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나 역시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을 오롯이 내가 만들어야 했기에 느껴지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 부담감을 어떻게 해소해 나갔나.

“기도하듯이 연기했다. 촬영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며 기도를 했다.”

▷평소 생각했던 유관순 열사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을 텐데 영화를 찍으면서 다르게 느껴졌다거나 표현된 게 있나.

“내가 정말 피상적으로만 그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감독이 배우와 스태프에게 쓴 편지가 서문처럼 담겨 있었는데, 나에겐 리더에 관해 언급을 해주었다. 국내외를 통틀어 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손꼽히는 리더들, 예를 들어 체 게바라 같은 인물의 공통점이 주변인들에게 늘 불안한 감정을 표출하며 ‘나 지금 잘하고 있나’고 물어봤다는 거다. 쉽게 규정지을 수 없었던 리더에 대한 방향성이 처음 생기는 순간이었다. 평소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굉장히 신념이 강하고 뚝심있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분 역시 비범함과 평범함이 공존하는 보통사람이었다.”

▷강단 있는 독립운동가의 모습뿐 아니라 17살 소녀의 모습도 담아야 했다. 그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 나갔나.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이 책 한권을 주었다. 열사님의 생애가 자세히 기록된 것은 물론 8호실에 함께 있었던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이 담겨져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열사님이 짓궂을 정도로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대목이었다. 그 책을 읽고 장난도 치고, 눈물도 보이며, 다른 사람들과 고민을 공유하는 그런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의도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17살 소녀가 충분히 느끼고 품었을 보편적 감정으로 접근해 나갔다.”

▷협소한 세트에서 촬영을 하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수용인원이 8명인 옥사에 25명의 배우가 함께 모여 연기를 펼쳐야 했다.

“8호실을 실제보다 3cm 더 작게 만들었다. 좁은 공간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인데 스태프들의 고생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세트 운이 좋은 편이다. 공간이 주는 기운이 연기에 도움이 될 때가 정말 많은데 ‘설국열차’를 찍을 때도 기차 세트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실제 같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정말 모든 조건과 풍경들이 완벽했다.”

▷단식도 감행했다.

“미팅자리에서 감독님이 체중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기존 체중보다 약간 증량한 상태에서 점차 감량을 해나갔다. 단식을 하려면 서서히 음식을 줄여야 한다고 하더라. 촬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서서히 식사량을 줄이는 과정을 준비했고, 그 정점에서 5일 동안 단식을 했다. 물도 안 마셨다. 물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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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물에 대한 탐구와 관찰을 유독 즐겨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역할은 부담감과 책임감, 한편으로 나름 인물을 탐구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진실된 호기심을 가졌던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마음가짐이 전과는 달랐는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내가 출발해야 한다는 흥분된 감정과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까지의 접근이 힘들었고 내가 감히 상상해서 이를 표현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생겼다. 그 때 ‘인간사에 완전한 진지함이란 없다’는 플라톤의 말이 생각났다. 촬영하면서도 그 말에 많이 기댔던 것 같다. 이번에도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출발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역사적 의미로서의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뒤늦게 8호실에 혼자 투옥됐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과 낯섦이다. 이미 8호실에는 수용인원을 훌쩍 넘어선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 나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유 열사가 그들과의 적응이 채 되기도 전에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친 건 감시와 억압을 싫어하는 개인적인 성향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후 원을 그리면서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그도 소속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로 고문을 받고 다시 왔을 때 그는 다시 원을 이탈해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리더라는 개념을 대입해 접근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인상에 남았던 장면이라면.

“개인적으로 너무 부담이 됐던 장면이 있는데, 3·1 만세운동 1주년에 다시 감옥에서 만세를 외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찍을 때는 디데이 나흘 전부터 카운트를 세면서 촬영에 임했다. 너무나 생생했다. 카메라가 내 얼굴을 클로즈업한 상태에서 그 긴 대사를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대사가 끝날 때쯤에는 8호실 사람들 한 분 한 분과 아이컨택을 했다. 나를 제외한 24명의 배우분들이 카메라를 등지고 모두 나를 보고 있었는데 마치 당시에 실재했던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울컥했다. 당시 그분들의 표정에선 나에게 정말 뭔가를 주고 싶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 혼자 왜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려고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게 뜨겁게 가슴에 와닿은 장면이었다.”

▷영화가 흑백으로 촬영됐다. 관객과 마찬가지로 그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다.

“처음 경험해보는 거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실 연기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촬영 역시 기본적으로는 컬러 영화의 완성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선지 촬영 이후에 흑백과 컬러 양쪽으로 모니터링을 했는데 컬러 버전과 흑백 버전 중 어떤 것을 선택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고문으로 생긴 파란 멍자국과 붉은 피가 흑백으로 전환이 되니 잔인함은 많이 덜어진 것 같다. 예전 내가 취미로 사진을 찍을 때 흑백필름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유는 색감보다 질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다양한 결을 드러낼 수 있는 게 흑백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연기 외적으로 개인의 관심사는 뭔가.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주로 많이 본 것 같다. 책 읽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인데 내가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많이 거론하다보니 출판사에서 책을 많이 보내준다. 요즘도 틈틈이 그 책들을 읽고 있다.”

▷이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우리가 몰랐던 인간적인 유관순 열사의 모습뿐만 아니라 8호실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항거’를 단지 아픈 영화라고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기에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했고, 그 진심이 관객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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